기사입력시간 15.12.15 06:39최종 업데이트 16.01.2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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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제적…의사 면허정지 99일

자신도 모르게 의료법을 위반한 군의관



"근무지 무단이탈로 입건하더니 나중에는 진료기록부 미작성,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까지 엮어 넣었다. 기가 막히고, 억울하다."
 
서울행정법원은 군의관으로 근무한 H씨가 보건복지부의 의사면허 자격정지 3개월 7일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청구를 최근 기각했다.
 
이보다 앞서 군사법원은 지난해 12월 H씨에게 700만원 벌금형을 선고했고, 이 판결은 H씨가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그로부터 얼마 후 군 당국은 H씨가 장교로서 결격사유가 있다며 군인사법에 따라 제적 처분을 했고, 그는 불명예를 떠안고 군 생활을 마감했다.
 
H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2013년 4월 군의관으로 임관해 A지역 대대에서 1년을 보낸 뒤 다음해 다른 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런데 근무지를 옮긴 직후 헌병대가 들이닥치더니 근무지 무단이탈 혐의가 있다며 입건했다.
 
H씨가 1년 전 A지역에서 근무할 때 대대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순회진료를 나갔다는 게 입건 사유였다.
 
이 때부터 H씨에게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H씨는 14일 메디게이트뉴스의 전화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근무지 이탈이란 게 어떤 건가?

대대 산하 여러 초소가 있는데 장교로 임관했더니 대대장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순회진료를 나가라고 하더라.
 
그래서 의무병과 함께 앰뷸런스를 타고 하루종일 순회진료를 하는 게 일과였다.
 
그런 와중에 군대 밖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바람을 쐬기도 했는데 헌병대는 1년 뒤 뜬금없이 대대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순회진료 간 것은 무단이탈이라고 몰아갔다.
 

A지역에 근무할 당시 무단이탈을 조사하지 않고 1년이 지나 사건화한 게 이상하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다만 증거 수집을 막기 위해 근무지를 옮기자마자 입건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어쨌던 1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보니 세세하게 무혐의를 입증하기가 어려웠다.
 

근무지 무단이탈 외에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아닌 무자격자인 의무병에게 주사행위를 지시한 의료법 위반교사, 진료기록부 미기재 혐의가 추가됐다. 어떤 사건인가?

헌병대는 무단이탈 조사과정에서 이런 걸 하나씩 끼워 넣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군병원에는 간호장교, 간호사가 근무하지만 대대급 전방부대 80~90%는 간호 자격이 없는 의무병 밖에 없다.
 
이게 현실인데 누가 주사를 놓겠나.

대대와 7~8개 초소 병력을 합하면 500명이 넘는데 군의관 혼자 진찰하고 조제하고 주사행위까지 다 할 수는 없다.

군의관 지시에 따라 의무병이 진료보조를 하는건데 그걸 문제삼은 거다.
 
간호 자격증이 없는 의무병에게 의료행위를 시켰으니 의료법 위반이라고 본 것이다.
 
내가 아는 군의관은 다 그렇게 하고 있다. 임관 동기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의무병이 주사 놓고, 약도 조제한다.
 
그렇게 따지면 전국의 모든 군의관이 의료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무병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 필요한지 국군의무사령부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그 결과 의무병 자격요건은 '자격면허를 취득한 사람 또는 해당 전공학과 전문 고교 3년 수료 또는 대학 1년 이상 재학시 지원 가능'이라고 나와 있었다.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자격이 없더라도 의무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이 공식적으로 밝힌 의무병의 업무 범위는 무엇일까?
 


국군의무사령부는 "의무병의 임무는 환자 진료분야에서 군의관 및 간호장교 지시에 의거 환자 진료업무를 보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처럼 진료보조를 한다는 의미다.
 
또한 의무병 관련 분야로 의무, 치무뿐만 아니라 방사선촬영, 약제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의료법에 따르면 H씨가 무자격자에게 주사행위를 지시한 것은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다.
 
하지만 H씨는 군의 명령시스템,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인일 뿐이다.
 

의무병에게 주사행위를 시킨 것에 대해 의료법 위반을 적용한 게 알려지면서 동료 군의관들도 긴장했을 것 같은데?
 
군 인트라넷 군의관 게시판에 사연을 올렸더니 말도 안되는 처분이라는 댓글이 많이 올라왔고, '나도 걸리겠네' 등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솔직히 나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전국의 모든 군의관이 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황당하고 억울하다.

내가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뒤 의무사령부에서 의무병에게 주사행위나 조제를 시키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무병에게 진료보조를 시키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누가 봐도 그렇다. 군의 의료장비를 확충하고,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자격이 있는 병사를 의무병으로 채용하려고 나를 본보기로 삼았다면 상관 없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러니 군의관들은 걸면 걸리고, 불법행위를 감수하면서 진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불안해서 진료할 수 있겠느냐.
 
군은 명령체계로 움직이는 곳이고, 개인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의무병에게 지시하는 건 당연한 것인데 이를 문제 삼는 것은 군의관에게 일방적인 무한책임을 묻는 무리수일 따름이다.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입건, 벌금형, 제적, 면허정지처분을 받다보니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너무 지쳤다.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할 계획인가?

벌금을 내고 군재판, 행정소송 과정에서 변호사 비용을 부담하다보니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빨리 벗어나고 싶다.
 
 
면허정지 처분이 향후 진료하는데 문제가 될 수도 있나?

면허정지 3진아웃 제도가 있어서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그는 마지막까지 억울함을 호소했다. 
 
"의료과실, 뭐 그런 거면 솔직히 수용하겠는데 피해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무단이탈로 시작해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그래서 행정소송을 한 것이다."

법원에서 H씨의 면허정지를 확정하면 군의관들은 진료보조 업무까지 직접 처리하거나 의료법 위반에 따른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을 감수해야 한다.

안창욱 기자 (cwahn@medigatenews.com)010-2291-0356. am7~pm10 welcome.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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