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정부의 제1차 국가인구전략 기본계획에 분만 인프라 회복과 산부인과 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대책이 빠진 것을 비판하고 나섰다. 출산지원금을 확대하는 것보다 산모가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의료환경을 조성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14일 발표된 제1차 국가인구전략 기본계획에 대해 성명서를 내고 "117개 기본과제 어디에도 분만 인프라 회복 로드맵, 분만 수가 현실화, 분만취약지 산부인과 직접 지원책은 없다"며 "인구의 판을 바꾸기 전에 이미 무너진 판부터 직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사회에 따르면 전국 분만 가능 의료기관은 2013년 706곳에서 2024년 425곳으로 11년 새 39.8% 감소했다. 2025년 6월 기준으로는 348곳에 불과하다. 의원급 분만기관 역시 10년 새 376곳에서 178곳으로 52.7% 줄었다. 전국 77개 시군구에는 분만실이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의사회는 정부가 첫째 아이 출산 시 1000만원, 지방 우대 시 최대 2000만원의 아이맞이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서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의사회는 "지원금 2000만원을 받은 산모가 진통이 시작됐을 때 갈 수 있는 분만실이 시군구에 한 곳도 없다면, 그 돈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며 "우물이 말라가는데 물동이만 키워주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해 충북 청주에서 한 임신부가 75개 병원에서 이송을 거부당한 사례를 언급하며 분만 의료공백이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의사회는 "진통이 시작돼도 받아줄 병원이 없어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전전하는 산모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증언"이라며 "정부의 화려한 선포식이 열리는 바로 이 시간에도 어딘가의 산모는 받아줄 분만실을 찾아 도로 위에 있다"고 했다.
산부인과 의료인력 수급 문제도 시급한 과제로 지목했다. 의사회에 따르면 2026년도 하반기 산부인과 레지던트 1년차 모집에서 전체 정원 45명 중 지원자는 11명으로 지원율이 24.4%에 그쳤다. 지방 수련병원 지원자는 단 1명에 불과했다. 최근 10년간 전국 산부인과 전문의가 5~6% 감소한 가운데 전북에서는 16%나 줄었다.
의사회는 "인력의 붕괴는 시설의 붕괴보다 더 빠르고, 더 돌이키기 어렵다. 정부는 AI 중점학교 2000개교, AI 교원 연수 1만명이라는 숫자는 자랑스럽게 나열하면서, 아이를 받아낼 의사를 몇 명, 어떻게 키워낼지에 대한 숫자는 단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며 "로봇이 분만을 받아줄 수 없다. AI가 제왕절개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인구전략이 여성 건강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의사회는 청년 생애과정 지원에 주택 공급과 대출 금리 우대, 고용률 지표 등이 포함된 반면 난임 지원 내실화, 임신 및 출산 전후 건강관리, 갱년기 및 폐경기 여성 건강에 대한 구체적인 투자 계획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의사회는 "여성을 출산의 주체가 아닌 인구지표 개선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그대로"라며 "출산을 앞둔 여성이 겪는 불안과 건강의 문제를 외면한 채로는 삶의 만족도 7.0점이라는 목표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에 의사회는 정부에 ▲분만취약지 산부인과 유지·회복을 위한 수가 현실화 및 직접 지원 로드맵 마련 ▲산부인과 전공의·전문인력 수급 대책의 인구전략 핵심 과제 격상 ▲난임부터 갱년기까지 여성 건강 생애주기 전반에 대한 투자 계획 구체화 ▲인구정책 공론화 및 심층평가 과정에서 산부인과 의료계 참여의 제도적 보장 등을 요구했다.
의사회는 "합계출산율 0.7명대의 나라에서 정부가 진정으로 '함께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원한다면 지원금 액수를 발표하기에 앞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병원과 의사가 있는 대한민국부터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인구의 판을 바꾸겠다면서, 그 판의 첫 칸인 '태어남'을 지키는 현장을 비워둔 채 시작하는 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며 "현장이 배제된 정책에는 단호하게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