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6.09.07 07:26최종 업데이트 16.09.0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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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낫는 병

정신과를 선택하게 된 사건

[칼럼] 박경신 원장(서산굿모닝의원)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나무를 좋아해서 농대에 진학 하려고 했었다.
 
의대 가면 이쁜 여자가 줄을 선다는 어머니, 아버지 말에 속아 의대로 바꿔 진학해보니 이쁜 여자는 줄 서지 않고, 시험만 줄 서 있었다.
 
체력이 약한 나는 의대 생활보다 인턴 때가 훨씬 더 힘들었다.
 
잠을 잘 시간이 없고, 며칠 못자는 날도 있었으며, 과중한 업무에 녹초가 되는 날의 연속이었다.
 
오죽하면 인턴 때 별명이 잠신이었을까.
 
피부과는 응급환자나 중환자가 없어 편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피부과를 지원하려고 했었다. 단지 쉽고 편해 보여서.
 
그런데 정신과로 바꾸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인턴 때 내가 담당하던 알코올 중독환자가 있었다.
 
그 환자의 아내는 공장 일을 하며 생활을 꾸려 나갔고, 환자는 집안에 돈이 되는 물건을 모조리 술과 바꿔 마셨다.
 
연탄까지 팔아 술을 마실 정도여서 많이 사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야근하고 새벽에 돌아와 보니 남편은 몇 장 안되는 연탄을 팔아 술을 사 먹고 곯아떨어져 있었고, 세 살 된 딸은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서 싸늘하게 죽어있었다.
 
그 충격으로 아내는 가출했고, 알코올 중독환자는 결국 알코올 중독 합병증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한 가족이 불행에 빠지는 사건은 평탄하게 성장한 나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특히 세살 아이의 죽음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그래서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가 되었고, 지금도 그런 환자를 가장 많이 진료 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 치료는 참으로 어렵다.
 
열심히 치료한 환자가 퇴원 당일 병원 앞 슈퍼에서 퇴원 기념으로 술 마시는 것을 보면 의사로서 절망하게 된다.
 
"다른 과 의사 친구들은 알코올 중독이 치료 되나?", "죽어야 낫는 병"이라고 하기도 한다.
 
정말 치료방법이 없는 건 아닌가?
 
답이 없는데 답을 찾는 나는 바보인가?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살 아이가 추위에 떨며 죽어가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아니 막는데 조그마한 도움이 된다면 나는 정말 이 일을 하고 싶다. 아니 해야 한다.
 
정신과 환자들은 병에 대한 인식이 없고, 말이 잘 안 통하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환자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만큼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내 아버지는 수의사이다.
 
말 못하는 동물들을 정성으로 돌보며, 평생 사랑으로 치료해주는 것을 보고 자랐다.
 
그런 기억으로 말미암아 말 못하는 동물을 다루면서도 힘들다는 불평 한번 하지 않고 평생 돌봐준 아버지도 있는데 나는 덜 힘든 게 아닌가 하고 힘을 낸다.
 
자식에게 좋은 부모에 대한 기억은 살아가는 큰 힘이 된다.
 
내 아들에게 아빠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살아가는 힘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박경신 #정신과 #알코올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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