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간암 진단 시점까지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지 못한 만성 B형간염 환자가 6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국내 B형간염 진단율은 85%로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지만, 실제 치료율은 2024년 기준 22%에 그쳐 간암 예방을 위한 조기 치료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존에는 간수치로 불리는 ALT 상승 여부가 치료 개시의 주요 기준으로 활용됐지만, ALT가 정상이어도 간 섬유화나 염증이 존재할 수 있고 간암 위험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한간학회는 최근 개정한 B형간염 진료 가이드라인에서 ALT 중심 기준에서 벗어나 HBV DNA 역가 기반 치료전략을 새롭게 제시했다.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는 1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026 간염 아카데미’를 개최하고, 만성 B형간염 진료 가이드라인 개정의 임상적 의미와 간암 예방을 위한 조기 치료 전략을 공유했다.
이번 아카데미는 최근 대한간학회가 발표한 B형간염 진료 가이드라인 개정에 따라 변화하는 국내 만성 B형간염 환자 관리 방향을 살펴보고, 새롭게 제시된 권고사항이 실제 임상 현장에 갖는 의미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개정 가이드라인은 지난 주말 열린 대한간학회 국제학술대회 ‘The Liver Week 2026’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날 첫 번째 발표를 맡은 대한간학회 임영석 이사장(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은 ‘국내 B형간염 질환 부담과 간암 예방을 위한 조기 치료의 필요성’을 주제로 국내 간암 사망 부담과 B형간염 치료 확대 필요성을 설명했다.
임 이사장은 “우리나라에서 B형간염이 중요한 이유는 간암과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며 “전체 암 사망 원인으로 보면 폐암이 가장 많지만, 40대와 50대에서는 간암이 가장 중요한 암 사망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간암이 만성 간염, 간경변증과 연속선상에 있는 질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간암은 5년 생존율이 개선됐더라도 여전히 낮고, 5년 이후에도 재발 위험이 지속되는 만큼 발생 이후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임 이사장은 “간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발생한 뒤 치료를 잘하는 전략보다 아예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전략이 중요하다”며 “국내 간암 원인의 약 60%가 B형간염과 관련돼 있는 만큼 B형간염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억제해야 간암 발생과 사망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내 B형간염 환자의 진단율은 높지만 치료율은 낮다는 점이다. 임 이사장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국가검진을 통해 B형간염 환자의 85%가 감염 사실을 알고 있지만, 치료율은 2024년 기준 22% 수준에 불과하다.
임 이사장은 “진단은 됐는데 치료로 이어지지 못하니 간암 발생과 사망이 줄지 않는 것”이라며 “현재 건강보험 기준으로 봤을 때 간암이 진단된 최초 시점에서 B형간염 약을 쓰고 있던 환자는 36%에 불과했다. 바꿔 말하면 64%의 환자는 간암에 걸릴 때까지 B형간염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그 배경으로는 기존 치료 개시 기준의 한계가 지목됐다. 기존 국내 만성 B형간염 치료와 건강보험 급여 기준은 HBV DNA 역가와 함께 ALT 수치가 정상 상한치의 2배 이상 상승한 경우를 주요 치료 대상으로 인정해 왔다.
그러나 혈중 바이러스 수치가 높더라도 ALT 수치가 정상 범위이면 치료를 시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바이러스 증식이 활발하지만 ALT 수치가 정상이라는 이유로 치료 대상에서 제외되는 이른바 ‘회색지대’ 환자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임 이사장은 “과거에는 바이러스 역가가 높고 간 효소 수치도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야 치료를 시작하는 구조였다”며 “그러나 ALT가 간의 염증과 간암 위험을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데 전문가들도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내성 때문에 웬만하면 약을 아껴 쓰자는 전략을 취했지만, 지금은 오래 써도 내성이 생기지 않고 효능이 높은 약제가 있다”며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하면 간암 발생률을 50~60%까지 낮출 수 있다는 연구들이 일관되게 나오고 있다”고 했다.
두 번째 발표를 맡은 대한간학회 간행위원회 간사 김기애 교수(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는 ‘B형간염 진료 가이드라인 개정의 주요 변화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이번 개정의 핵심은 치료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번 만성 B형간염 가이드라인은 최근 축적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바이러스 역가 기반의 자연경과 분류 체계를 새롭게 정립했다”며 “이를 치료 대상과 직접 연계함으로써 치료 대상을 확대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기존 자연경과 분류는 HBeAg, HBV DNA, ALT를 함께 고려해 면역관용기, 면역활동기, 면역비활동기 등으로 환자를 구분했다. 그러나 ALT와 HBV DNA를 함께 사용하다 보니 어느 단계에도 명확히 포함되지 않는 환자군이 발생했고, 만성 B형간염 환자의 약 30~40%가 ‘회색지대’ 또는 ‘불확정기’로 남았다.
김 교수는 “이 환자들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며 “ALT가 지속적으로 정상인 환자에서 조직검사를 시행했을 때 이미 간 섬유화가 보이는 경우가 18%, 정상 ALT에서도 간 내 염증이 확인되는 경우가 34%였다”고 설명했다.
이번 개정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ALT를 자연경과 분류 기준에서 제외하고, HBV DNA를 중심으로 환자를 분류했다. 새 분류는 ▲고바이러스혈증 ▲HBeAg 양성 중등도바이러스혈증 ▲저바이러스혈증 ▲HBeAg 음성 중등도바이러스혈증 등 4가지로 구성된다.
구체적으로 고바이러스혈증은 HBV DNA가 8 log10 IU/mL를 초과하는 경우, 저바이러스혈증은 HBV DNA가 2000 IU/mL 미만인 경우다. 중등도바이러스혈증은 HBV DNA 2000 IU/mL 이상~8 log10 IU/mL 이하로 정의됐다.
특히 개정 가이드라인은 ALT 수치와 관계없이 중등도바이러스혈증 환자 모두에게 항바이러스 치료를 권고했다. 고바이러스혈증 환자는 ALT 상승, 30세 이상, 유의미한 섬유화 등 위험인자가 있는 경우 치료를 권고한다. 저바이러스혈증 환자는 간경변증 여부를 확인하고, 간경변증이 없으면 모니터링하도록 했다.
간경변증 환자에 대해서는 대상성·비대상성 여부와 관계없이 HBV DNA가 조금이라도 검출되면 항바이러스 치료를 권고한다.
김 교수는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와 치료를 받은 환자 연구 모두에서 HBV DNA가 중등도바이러스혈증일 때 간암 발생 위험이 높다는 결과가 일관적으로 보고됐다”며 “조직검사 기반 연구에서도 HBV DNA가 중등도 수준인 경우 간 내 염증이 높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조기 치료의 근거로는 ATTENTION 연구가 제시됐다. 이 연구는 간경변증이 없고 HBV DNA 역가가 4~8 log10 IU/mL이며 ALT 수치가 유의하게 상승하지 않은 만성 B형간염 환자 734명을 대상으로 TAF 치료군과 경과관찰군을 비교한 다국가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이다.
연구 결과 TAF 치료군은 간암, 비대상성 간기능 악화, 간이식 또는 사망을 포함한 중대한 간 관련 사건 발생 위험을 경과관찰군 대비 79% 유의하게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항바이러스제 선택에서는 장기 안전성도 강조됐다. 이번 개정 가이드라인은 유전자 장벽이 높은 1차 치료제로 테노포비어 알라페나마이드, 테노포비어 디소프록실 푸마레이트, 엔테카비어, 베시포비어를 우선 권고한다. 김 교수는 골대사질환, 신장질환, 임신 준비 또는 임신 중, 항바이러스 치료 경험 등 환자 임상 상황에 따라 약제를 선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치료 확대의 기대효과도 제시됐다. 김 교수는 2022년 급여 기준을 바탕으로 한 시뮬레이션 연구를 언급하며, 가장 적극적인 치료 시나리오인 HBV DNA 2000 IU/mL 이상 환자 모두를 치료할 경우 간암 발생 약 4만3000건을 예방하고 약 3만7000명의 생존 향상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다만 실제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건강보험 급여 기준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현재 급여 기준은 일부 확대됐지만, 개정 가이드라인의 치료 권고를 충분히 반영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임 이사장은 “현재 국내 만성 B형간염 환자 중 치료를 받고 있는 비율은 2024년 기준 약 22%였고, 2025년에는 아직 정확한 집계는 아니지만 약 26% 수준으로 올라온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가이드라인대로 급여 기준이 적용되면 최대 50%의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치료 대상이 약 2배 확대될 수 있는 만큼, 그 과정이 빠를수록 간암을 더 많이 예방할 수 있다”며 “핵심적으로는 심사평가원과의 협의가 필요하다. 대한간학회의 개정 가이드라인이 급여 기준 개선 논의를 시작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