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7.05.18 07:12최종 업데이트 17.05.18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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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을 포기하는 의사들

[기획]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의 비극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기획] 불가항력적 의료사고가 몰고온 비극

아기를 낳기 위해 분만대기표를 뽑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분만을 포기하는 의사들이 점점 늘어간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겠다.
 
심평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 새 30%에 가까운 산부인과가 폐업했으며, 2013년 기준으로 분만을 하는 전문의는 전체 산부인과 의사 중 42%에 불과했다.
 
현재는 더 낮아졌을 것으로 예상되며, 전국의 46개 지역은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다.

분만수가가 터무니없이 낮은데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임에도 불구하고 형사처벌과 함께 막대한 손해배상금까지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분만을 포기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인천의 한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실에서 20시간 동안 진통을 겪은 산모의 탈진을 우려해 태아 모니터링 기구를 1시간 반 동안 뺀 사이 불행히도 태아가 사망하자 법원이 분만을 담당한 의사에게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 8개월 금고형을 선고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산부인과 의사들의 박탈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대다수 의사들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의사를 범죄자 취급한다면 누가 환자를 진료할 수 있겠느냐고 들끓었고,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분만을 포기하는 의사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로 판단하더라도 의사는 무조건 30%의 책임을 져야하는 점, 불가항력적 사고임에도 사망사건은 대개 소송으로 이어져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 판결이 많은 점 등은 의사들로 하여금 분만을 포기하게 만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이제 막 태어난 생명과 이를 10달 동안 기다려온 산모의 비극은 말로 다할 수 없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산모가 무사히 분만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의사들이 과실이 없음에도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겹치면서 분만하는 의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15년 동안 해온 분만을 포기하다
 
서울에서 개원한 산부인과 전문의 A씨는 불가항력적 사고로 산모와 태아가 숨지는 사건을 겪으며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15년간 해왔던 분만을 포기했다.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A씨는 부인과 질환과 산전진료만 하고 있다. 
 
해당 사건은 2009년 8월 A씨가 지속적으로 진료해왔던 만 39세 초산 산모 B씨의 분만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예정일보다 1주일이 지나도 진통이 오지 않은 B씨에게 유도분만으로 아이를 출산하기로 결정했다.
 
자궁을 열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기에 A씨는 B씨에게 전날 저녁에 입원하기를 권유했지만 B씨는 분만 당일 오전 8시 경 의원에 도착했다.
 
A씨는 B씨의 분만을 위해 분만을 유도하는 '프로페스질서방정'을 삽입했고, 이후 B씨는 관장을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나 B씨가 시간이 지나도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자 간호사가 문을 두드렸지만 답이 없었고, 위쪽 문틈으로 확인한 결과 B씨는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곧장 B씨를 옮기고 초음파를 실시하니 1분에 120회 이상 돼야 하는 태아 심음이 70회 정도였다.
 
A씨는 '태반 조기박리'로 진단해 바로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갔다.
 
A씨는 산모의 상태를 고려해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시작하면서 B씨를 큰 병원으로 전원하기로 결정했다. 다행이 아기는 무사히 잘 태어났지만 B씨의 출혈은 생각보다 심했다.
 
이와 함께 A씨는 B씨의 출혈을 걱정해 혈액을 요청했지만 구급차가 먼저 도착하는 바람에 바로 전원 보냈다. 혈액을 기다리다가는 B씨의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아기의 상태는 괜찮았지만 산모와 함께 전원한 병원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날 밤 새벽 B씨는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아기도 5일 뒤 사망했다.
 
B씨가 사망하고 이틀 뒤부터 악몽은 시작됐다.
 
A씨의 잘못으로 인해 산모가 사망했다며 상복차림의 유가족 20명이 몰려와 시위를 시작했고, A씨 의원 주변으로 전단지를 나눠주며 A씨를 살인자로 몰아갔다.
 
그렇게 A씨는 유가족과 경찰, 기자들까지 상대하면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지만 시위는 계속됐다.
 
그렇게 시위가 한 달 째 지속되자 A씨는 견디지 못하고 시위금지가처분신청을 했고, 그 이후부터 유가족은 시위를 중단했지만 A씨를 상대로 형사고발과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국과수가 내린 산모의 사망 원인은 '전치태반으로 인한 과다출혈 사망'이었다.
 
전치태반이란 본래 위쪽에 위치해야 하는 태반이 자궁출구의 전부 또는 일부분을 막아 태아가 나오지 못하게 되는 태반의 위치 이상을 뜻하는 것으로, 분만 시 위험이 있을 수 있어 보통 제왕절개로 출산한다.
 
그러나 A씨는 "전치태반은 평소 초음파로 확인이 가능하고 등급에 따라 다른 처치가 이뤄진다"면서 "B씨는 한 번도 전치태판을 보인 적이 없었고, 분만 당시에도 내린 임상적 의견은 태반 조기박리였다"고 설명했다.
 
B씨를 이송 받은 대학병원 병리과 전문의는 조직검사를 통해 전치태반으로 결과를 내렸고, 국과수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A씨는 "전치태반이나 태반 조기박리는 임상적 소견으로 알 수 있는 것"이라면서 "전치태반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1심에서 판사는 전치태반을 이유로 A씨에게 과실이 있다며 위자료 3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포기하지 않고 여러 전문가들의 소견서를 취합해 전치태반이 아닌 태반 조기박리임을 피력했다.
 
결국 태반 조기박리에 대한 사인에 무게가 실렸고, A씨는 2심에서 판결이 뒤집히길 기대했다.
 
태반 조기박리의 경우 그 원인을 확실히 알 수 없고, 산모의 고혈압 혹은 임신 중독증, 또는 나이가 많거나 분만 횟수가 높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영양이 부족한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고 의심되고 있어 보통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사는 2심에서 태반 조기박리나 전치태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산모에게 즉각적으로 혈액을 투입했다면 환자가 과다출혈로 인해 사망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있다며 A씨에게 다시 2억 5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B씨를 대학병원으로 전원하기 이전에 수혈했더라면 산모가 살 수도 있었다는 것이 판사의 의견이다.
 
A씨는 "혈액을 늘 의원에 두고 있을 수도 없고, 당시 혈액을 가지러 간 사이 구급차가 먼저 도착해 이송을 결정한 것"이라면서 "의사는 누구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와주려고 하는 것인데, 불의의 사고를 왜 과실치사로 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결국 A씨는 B씨에게 위자료 2억 5천만원을 지급했고, 형사고발에 따라 기소유예 처분도 받았다.
 
A씨는 "분만은 정말 위험하고 힘든 일이지만 환자를 위해 의사가 존재하는 것"이라면서 "의사는 환자를 위해 수술을 했을 뿐인데 책임지고 보상을 하고, 마음고생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A씨는 이 일을 겪은 뒤 분만을 완전히 포기했으며, 1년간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2편에서 계속

#산부인과 # 분만 # 포기 # 의사 # 병원 #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 메디게이트뉴스

황재희 기자 (jhhwang@medigatenews.com)필요한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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