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8.16 14:00최종 업데이트 23.08.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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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인프라 붕괴, 정책 실패 방증…"전문가 의견 반영한 법·제도 개선 시급"

'묻지마 사건'에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성명서 발표…비자의입원 폐지 및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도입 촉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지역사회 정신 보건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추진된 탈원화 정책이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치료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코로나19로 급격하게 진행된 시설 규정 강화로 지난 2~3년간 정신과 병원의 줄 폐원과 전국 1만개가 넘는 정신과 입원 병상이 단기간에 사라지는 등 정책 실패가 최근의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 사건의 원인이라는 비판이다.

대한정신건강의사회는 16일 중증정신질환 치료제도의 개선을 위한 성명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의사회는 "익히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대로 지역 사회 정신 보건 현장에서는 급격한 제도 변화에 따른 부작용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재활과 거주 등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추진된 탈원화 정책은 그 취지와는 달리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사회의 여기저기에 방치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의사회는 최근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제안한 국민안심입원제도와 국민안심치료제도의 정착을 위한 3대 내용을 지지한다며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먼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폐지다. 의사회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환자의 돌봄과 치료에 대한 사회경제적 부담과 입원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가족에게 전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부담을 감당할 가족관계가 더 이상 견고하지 않다는 점"이라며 "최근 전체 병상수가 급감하면서 입원 가능한 병원을 찾아 헤매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병원이나 응급실을 수소문하는 일도, 대기 장소에서 환자의 이상 행동을 막아내는 일도, 퇴원 하겠다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환자를 설득하는 일도 가족 없이는 진행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의사회는 "이런 환경에서 정신질환자의 가족들은 신체적, 정서적 위험에 처하거나 환자 돌봄을 위해 자신의 생계나 생활을 희생해야 하는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으로 환자의 적절한 조기 치료 역시 지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두 번째는 국가를 향해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실현 가능한 법과 제도의 정비다.

그간 정부는 인권보호와 병동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비자의 입원 요건을 강화했고, 이는 오히려 병식이 없는 정신 질환의 조기 발견과 치료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의사회는 "현실적인 판단 능력이 저하된 환자들에게 자유가 치료라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고 공허한 구호이다. 그것은 오히려 스스로 올바른 결정을 하기 힘든 질병 상태인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좀 더 잔인한 방식으로 인권을 유린하는 일일 수도 있다"며 "그런 분들에게는 치료가 인권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의사회는 "급성기 치료를 위한 입원 병동에 대한 지원과 함께 사회로 바로 복귀할 수 없는 만성적인 정신질환자들이 병원 안에서 사회 복귀를 위한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설과 인력등의 인프라를 지원하는 제도도 고려해볼만 하다. 정부는 이제라도 정신 보건 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된 법과 제도의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의사회는 중증 정신질환의 조기 발견과 치료를 국가가 지원하는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의 시행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최근 일련의 사건의 피의자들은 공통적으로 조기 발견과 지속적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에 정신과 환자들이 증상이 악화되기 전 조기 발견과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법률적, 제도적 장치와 치료 체계를 만들어야 하며, 이송과 입원 과정 등에 필요한 정신응급체계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사회는 "퇴원 이후에도 국가 책임 하에 치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외래 치료 명령 제도를 수정 보완해야 한다. 지금의 입원 제도로는 자타해 위험이 명확하지 않은 조기 정신증 상태의 환자들이 증상이 악화되어 위험해지기 전에 제대로 치료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행법은 환자의 의사와 반하는 '비자의 입원'을 진행할 때 자타해 위험이 확인돼야 이송과 입원이 가능한데, 해당 환자가 주변에 위협이 됨이 증명될 때야 비로소 강제 입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예방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의사회는 "실제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이 범죄 피의자가 되어 수감되는 경우도 많이 있으며 그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환자들은 더 큰 편견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더 이상 이런 정신질환자의 응급 후송과 비자의 입원 결정 과정, 외래 통원 치료의 부담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일 없이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입퇴원 과정에서 행정적, 절차상 조력을 제공해야 하는 정신보건인력과 소방관, 경찰관에 대한 신체적 심리적 안전 확보 방안, 인력 충원과 근무 시간외 수당 지급 등 현실적인 지원책 역시 구체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이송 및 입원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률적 문제에 대한 보호장치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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