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5.02.03 00:00최종 업데이트 15.04.1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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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위기, 전문 의료기기 사용이 답이 아니다

서울의대 허대석 교수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을 빌미로 대한한의사협회는 현대의학이 개발하고 발전시켜온 의료기기를 한의사도 전면적으로 사용하도록 허용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의 내용에서 간과할 수 없는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한의사들이 스스로 한의학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치와 진료는 한의의 기준이 다르지만 증상의 진단은 현대의학의 기준과 똑같고,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지 않아 65년간 한의계 발전이 저해 받았다’는 논리를 펴고, 한의대에서 배우는 교육과정의 75%가 의과대학과 일치하기 때문에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한의협은 주장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질병에 접근하는 사고체계가 현대의학과 근본적으로 달라 독자적인 학문으로 발전시켜야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한의과대학을 설립했고, 지난 수십 년 동안 현대 의료기기를 통한 검증을 거부해왔다. 그 명분은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둘째, 규제개혁이라는 이름만 붙이면 국가 면허 제도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이다.

국가가 관리하는 면허제도는 단지 공부를 했다는 주장만으로 면허가 수여되지 않으며, 객관적인 검증을 필수로 요구한다. 필기와 실기 시험을 통해 검증하는 의사 국가고시문제는 일반인도 볼 수 있게 공개되어 있다.

이에 반해, 한의사가 한의학 이론에 현대의료기기를 어떻게 적용하도록 교육받았고, 수행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한의사 국가고시문제는 물론이고 국시대비문제집조차도 공개되어 있지 않다.

 

한의사 국가고시를 관장하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발표한 ‘한의사 국가시험 출제범위 공지’ 공문에는 ‘한의사는 한의학 이론을 근거로 인체의 건강상태와 질병을 진단하고 침구, 약물 및 기타 한방요법 등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재활 및 예방을 담당하는 전문 의료인이다’ 라고 정의하면서 380개의 문항을 통해 검증한다고 공지되어 있다.

2016년 시행되는 한의사 국가시험의 출제범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과학에 포함된 내용을 분석해 보면, 증상(내경), 신체해부학적 증후 (외형), 계통별 증후 (잡병), 질병, 상한론, 사상의학으로 구분되어 있다.

증상(내경)은 保養, 虛勞, 驚悸 등, 신체해부학적 증후는 眩暈, 痺證, 振顫 등, 계통별 증후는 反胃, 感冒, 火熱 등으로 분류하고, 상한론에서는 태양병, 양명병, 소양병, 태음병, 궐음병 등을 다루며, 사상의학은 사상체질진단, 사상약물방제론, 양생론 및 체질론 등으로 구분하고 있는 출제범위만을 비교해보아도 처치와 진료가 현대의학과 다른 것은 물론이고, 증상을 진단 분류하는 용어체계부터 현대 의학과 일치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

 

‘한의사들은 가마타야하고,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의사들은 왕진가방을 챙겨 택시를 타고 가고, 한의사들은 말을 타고 가야 하는 것이냐’는 한의사협회장의 항변에는 한의학의 진실이 담겨있다. 수천 년 전부터 전해온 전통이라고 해도 가마와 말은 보편적인 교통수단이 더 이상 될 수 없고, 자동차처럼 계속 진화해갈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한의학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의료행위의 표준화가 선행되어야 하고, 일관성 있는 치료효과를 낸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한방진료는 의료행위가 표준화가 되어있지 않아 비교연구 자체를 할 수 없다.

'한의학의 과학화, 표준화를 선도하여 한국 전통의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는 목표를 앞세우며 1994년 설립된 한국한의학연구원은 지난 20여년간 매년 수백억 원의 국민 세금으로 예산을 지원받았으나, 세계는커녕 국내에서조차 인정받는 진단법이나 치료법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의학이 요구하는 과학적인 검증을 할 수 없는 의료행위로 세계에 우수성을 알린다고 하는 것은 앞으로도 실현 불가능한 꿈에 불과하다.

 

경쟁력을 잃은 한의학의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한의사도 의사이니 CT, MRI, 초음파, 내시경 기기를 마음대로 사용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자동차와 경쟁할 수 없으니, 사람 태운 말을 자동차에 싣고 자동차와 경쟁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결코 한의학을 발전시키는 대책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말에게도 위험한 일이다.

 

#한의학 #현대의료기기 #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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