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5.22 06:49최종 업데이트 19.05.22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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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폐기한 SGR(지속가능한 진료비 증가율) 방식의 수가협상, 저수가에서 의료계 쥐어짜기만 계속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정부는 5월말 시한으로 진행하고 있는 2020년도 수가협상에서 SGR(Sustainable Growth Rate, 지속 가능한 진료비 증가율) 전략으로 의료계를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비해 공급자 단체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실제 열악한 일선 의료 경영 현장에 바탕을 둔 ‘Real World Evidence’를 적용해야 된다는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나, 어렵지 않게 묵살 당할 것 같은 우울한 관측이 제기된다. 
 
미국의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위한 공적의료보험인 메디케어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 까지 매년 두 자리 수의 가파른 의료비 증가를 경험한 바 있다. 이에 미국은 지난 1997년에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으로 SGR 이라는 일명 ‘지속가능한 진료비 증가율’이라는 개념과 방법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2003년 이후 미국 의회에서 무려 17회에 걸쳐 법안이 발의된 이래 단 한 번도 시행되지 못하다가 급기야 2015년에 오바마 대통령의 발의로 영구 폐기됐다. 

SGR법만큼이나 의사, 의회, 환자, 의료경제학자, 정치인 등 사회구성원 모두가 싫어한 전설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법도 드물다. 이 방법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의료비 지출에 대한 감소폭이 무려 20%를 초과할 수 있는 이상한 방법이어서 공화당, 민주당 가릴 것 없이 매년 법안 발의를 통해 SGR 결과에 따른 임시방편 조치를 취했다.

즉, 미국은 터무니없는 SGR의 결과를 대체하느라 2003년부터 매년 그리고 2000년 한 해 동안에만 네 차례에 걸쳐 법안을 발의하면서 SGR의 결과로 인한 사회적 폐해를 막기 위해 막대한 정치적, 행정적 소모를 경험하게 했다. 

특히 미국 메디케어메디케이드센터(CMS)자료에 따르면, 메디케어에서 매년 의사에게 지불된 금액(Physician and Clinical Services Expenditures)의 증가율은 2000년 6.8%에서 2017년 6.5% 포인트를 기록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는 연평균 6% 포인트대를 넘는 높은 증가율이다. 

미국 국민이면 누구도 반기지 않는 법안의 폐기는 결국 정해진 숙명이었으나, 이를 착실히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도대체 어쩐 영문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SGR, 과소 편향되고 지출 억제 의도만 반영된 수가산출방식

SGR은 얼핏 보면 과학적 사고에 근거한 것처럼 보인다. 공식상 객관적 지표를 이용하면서 의료비 상승을 억제하는데 기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객관적 데이터가 아닌 허수 개념의 통계와 ‘인위적 보정치’도 등장해 정확한 통계 산출 기전을 교란시키고 있음을 통찰할 수 있다.

특히 SGR에서는 누적개념을 활용하기 때문에 장기간 사용 시 유형별 격차의 과대 또는 과소 편향의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공단의 연구진들도 분명히 지적한 바가 있다. 

결정적으로 SGR은 행위별 수가의 양적 증가나 행위의 강도에 대한 억제책으로 기여할 수 없는 ‘합리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위원회는 비급여의 급여화를 내세운 문재인 케어에서 행위의 증가를 부추기고 값싼 진찰료로 환자의 의료소비를 부추기는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의 제도가 우리나라에 맞으려면 우선 배경을 제거를 하는 탈맥락화(탈상황화, decontextualization)의 절차를 거쳐 우리 실정으로 전환하는 상황화(contextualization)의 절차가 필요하다. 

즉, 미국 SGR의 효용성에 대한 타당성 검증을 먼저 한 후 그 결과에 따라서 도입여부를 논의하는 것이 합리적인 순서로 맞을 것이다.

또한 현재 SGR 모형 산출에 활용되는 각 요인들(실제 환산지수 변화율, 대상자수 변화율, 1인당 실질 GDP 변화율 등)에 대한 타당성 검토도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필수 여건이다.

그러나 GDP 대비 우리나라의 두 배가 훨씬 넘는 의료비를 사용하는 나라의 의료비 지출억제라는 명제를 그대로 따라 의료현실에 도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도 SGR은 의료소비 행태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 무용한 제도로써, 제대로 사용된 바 없이 ‘용도 폐기’됐음에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이 제도를 고집하는 것은 문제다. 그러면서도 과학적 근거에 의존해 논란의 여지를 없앨 수 있는 제도라며 허위로 포장하고 있다.   

수가협상은 공식적인 통계자료만 사용한다고 주장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료현실을 반영해 달라는 의료계의 협상은 애초부터 내정해 놓은 인상폭에 의해 진행되는 절대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접점’을 찾기 어려운 거대 국가 주도의 일방적 쇼로 보인다.

통계자료란 모두가 한계점이 있어서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증적 자료와 객관적인 통계적 증거다. 이에 대해 보충되거나 보정되지 않으면 특정 기획자의 의도에 의해 가공된 허수에 불과할 뿐 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미국에서 배워야 할 것은 SGR이 아닌 정치적 민주성과 투명성의 확보 

현 정부는 문재인 케어와 더불어 통합 돌봄도 도입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의료비 억제 정책과 다른 보건의료 정책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공조하는데 있어서 치명적 결함과 모순되는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의료에 관한 혜택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통합 돌봄(커뮤니티 케어)에 의한 인간적 의료의 달성을 위해서 그리고 약 72만명(의료서비스 분야만, 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18)을 고용하고 있는 것이 현 의료계의 현실이다. 소득주도성장을 통한 고용증대를 위해서라도 SGR제도는 반드시 폐기돼야 마땅하다. 

현대 의료는 의사 단독으로 제공할 수 없는 성격이 강하다. 전국 13만명의 의사에 의해 고용돼 직, 간접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보건의료 분야 종사 인력만 어림잡아 100만 명에 이른다. 의료에서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단일 급여기관으로 독점의 형태로 의료종사자에 대한 차별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것과 같다. 

미국 메디케어의 각종 제도를 여과장치 없이 그리고 문화적인 배경과 환경의 변환 장치 없이 마구잡이로 들여오는 공단이나 보건학자들은 우리나라 의료현상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장기적인 안목으로 우리나라 의료 환경의 개선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 주기 바란다. 

미국 의회는 17회에 걸쳐 법안을 통과시켜 SGR의 위험에서 의사, 환자 모두를 구한 셈이긴 하나 이 역시 임시방편으로, 지금도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고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메디케어는 미국 의료의 일부분으로 전부도 아닌 특수목적의 공보험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세계에서 의료비를 가장 많이 투입하고 있는 딱한 사정에 놓인 미국의 경우 의료 재정 누수에 대한 대처에서 서둘러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은 공적의료보험의 관리운영자인 CMS에 대한 관리 감독과 투명성의 확보, 정치적 민주성과 투명성의 확보를 위한 노력이었다.

현재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피 같은 의료재원은 선심성 공짜 인심정책과 건보 무임승차 그리고 마치 자기 돈으로 착각하는 집단적 관료주의와 법망을 피해 노인 환자들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비윤리적 사무장병원 및 원가파괴 의료세일 정책들이 거대하고 사악한 세력을 형성하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잘못된 길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SGR에 의해 뺏긴 재정은 눈에 안 보이는, 달리 표현한다면 의료계 자체 본인 부담금이다. 

국민에게 익숙한 우리의 초급행 의료제도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무리한 재정억제책이 요구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의료계 자체의 본인부담금인 것이다. 의료계 자체 본인부담금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데 무지막지한 근무시간, 경영논리에 의한 경계성 의료, 폭력적 근무환경, 넘치는 졸업생에 구할 수 없는 간호사, 비의료인에 의한 불법 의료 등이다. 

의료계의 자진 근로 봉사처럼 보이게 만든 현재의 여러 가지 불합리한 제도는 일본 보험제도의 맹목적 따라 하기와 고물로 폐기된 미국의 의료비 억제책 도입 및 고수 등 후진 식민문화의 지속과 독재정부의 유산인 국가사회주의형 협상제도의 존속이다. 과연 우리가 의료제도 선진국이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나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아니면 우리나라가 숭고한 사회 중심적 가치를 의도적이고 선택적으로 마비시키는 관제중심의 왕국인지 의료 전문가들의 정상적 가치관을 매우 혼돈스럽게 하고 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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