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12.17 06:53최종 업데이트 19.12.17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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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고원중 삼성서울병원 교수 유족 "병원에서 모난 돌로 비춰진 아버지의 억울함 풀겠다"

유족측 요구로 4개월만에 공식 추모식 개최, 매년 '고원중 교수 연구기금' 제정

추모사를 읽고 있는 故고원중 교수 아들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고(故) 고원중 교수의 추모식이 16일 오후 5시 30분 성균관의대 히포크라테스홀에서 동료 교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추모식은 지난 8월 22일 고 교수가 숨진 이후 무려 4개월만에 유족의 요구로 이뤄졌다.

고 교수는 결핵 및 비결핵 항산균 폐질환 분야의 대가다. 고 교수는 5월부터 진료를 잠시 쉬다가 9월부터 아주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었다. 당시 송별회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관련기사="평생 비결핵항산균 폐질환 환자를 위해 헌신하신 故고원중 교수님을 추모합니다"]
  
추모식에서 고 교수의 아들 고성민씨는 "존경받는 아버지가 정작 본인의 직장에서 '모난 돌'로 비춰졌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이 자리에서 전임 호흡기내과 과장 등이 사과할 것을 요구했지만 참석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일을 하겠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삼성서울병원은 고 교수의 예우 차원에서 '고원중 교수 연구기금'을 제정해 매년 결핵 및 비결핵항산균 폐질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연구자에게 1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삼성서울병원 권오정 원장은 “고 교수가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병원에 요구하는 사항들이 많았지만, 병원장으로 그 부탁을 다 들어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깝다라며 "하고자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인력과 자원이 필요한데, 이것들이 모자라니 본인이 괴롭고 몸과 마음에 무리가 와서 최종적으로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병원에선 죽음 뒤에 아무 말 없어"...유족 요구로 추모식 개최와 연구기금 제정 

고(故) 고원중 교수의 아들 고성민 씨는 이날 추모식에서 “이 자리에서 아버지라면 어떤 말을 했을까를 생각했다”라며 “아버지는 항상 표현을 아끼지 않았던 분이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부터 진심어린 충고와 따뜻한 조언까지 본인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나타내려는 분이었다”고 말했다. 

고 씨는 “(아버지는)상대방이 누구든 항상 상대방의 의견을 묻고 귀 기울여 들으며 본인의 의견을 조심스레 말씀하시던 분이었다”라며 “존경받는 아버지이자 다정한 남편, 친근한 동료였던 고 교수는 정작 본인의 직장에선 '모난 돌'로 비춰졌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고 씨는 “병원의 이름이나 당장의 눈치보다 당신의 환자와 연구를 더 중요시하는 아버지는 지난 겨울 사직을 결정했다”라며 “올해 8월 22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다. 또한 이직을 결정한 아버지의 환송회가 있었던 날이기도 했다”라고 했다. 

고 씨는 “아버지는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연락 한 번 없이 조용히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고 씨는 “아직도 매일매일을 후회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아버지가 지난 1년간 주고받은 모든 메일을 읽었다. 왜 자주 연락하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이야기를 여쭤보고 들어드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하루 24시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고 씨는 “저희 가족은 너무나 큰 무게를 짊어지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위로와 힘을 주는 많은 분들이 있어 너무나 감사하다”라며 “하지만 정작 삼성서울병원에서, 이 삶에서 아버지의 등을 떠밀었던 손들은 더욱더 저를 짓누르고 말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자리는 병원의 주도로 마련된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죽음 뒤에 병원에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라며 “심지어 홍보실에서는 진료과에서 마찰이 없었고 송별회까지 잘 마쳤다는 내용을 언론에 제공했다. 유족의 의견은 전혀 실리지 않은 기사가 나갔다”라고 했다. 

고 씨는 “온전히 저의 요청으로 병원 임원진과의 면담이 진행됐고 추모식 진행과 고원중 연구기금상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고 씨는 “면담 자리에서 모기획실장으로부터 ‘아버지보다 훨씬 많은 진료를 본 사람은 우리 병원에 아주 많다. 더 좋은 논문을 쓴 교수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묵묵히 참았다”고 말했다. 

고 씨는 “비참함과 모멸감을 뒤로 하고 아버지를 아껴주셨던 동료들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라며 “아버지께 인사드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드렸다. 하지만 호흡기내과 전임과장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 자리에서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고 씨는 “18년 전과 달리 호흡기내과 의사 고원중은 이제 없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아버지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라며 “아버지가 겪으신 고통을, 제가 갖고 있던 고통을 다른 누군가가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 아버지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권오정 원장 "더 많은 시간과 인력과 자원이 필요한데 들어주지 못해 미안"

삼성서울병원은 이날 ‘고원중 교수 연구기금’을 제정한다고 밝혔다. 결핵과 비결핵항산균 폐질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연구자에게 매년 100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논문, 학술발표, 수상등의 업적을 토대로 병원장, 연구부원장, 유족대표 등이 수상자를 결정하기로 했다. 

고원중 교수는 1993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2001년부터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에 근무하기 시작했다. 고 교수는 연구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 세계적인 업적을 남겼다. 대부분 주도적으로 300여편의 논문을 썼고 180편의 SCI논문을 게재했다. 논문 개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많은 선후배들을 학문 분야에 입문하게 했다는 평가다. 

삼성서울병원 권오정 원장은 “고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에서 18년 이상 교수로 일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결핵과 비결핵 항산균 분야에서 진단과 치료방법을 향상시켰다”라며 “고 교수는 비결핵항산균 폐질환 분야에서 많은 노력을 해서 이 분야에서 성균관의대와 삼성서울병원을 세계적인 수준까지 도달하게 했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고 교수가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연구와 진료를 하다 보니 몸에 이상이 생겨 입원까지 할 정도로 많은 노력을 했다.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병원에 요구하는 사항들이 많았지만, 병원장으로 그 부탁을 다 들어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깝다”고 했다. 

권 원장은 “어쩌면 하고자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인력과 자원이 필요한데, 이것들이 모자라니 본인이 괴롭고 몸과 마음에 무리가 와서 최종적으로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런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된 것이 원장으로서의 리더십이 부족하고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책임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권 원장은 “이 자리를 빌어 고 교수와 유족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사과한다. 고 교수를 사랑한 병원 동료들에게도 사과를 드린다”고 전했다. 

김호중 호흡기내과 과장은 “고 교수는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쓰고 가장 많은 연구 업적을 남긴 분이다. 전국의 호흡기내과 교수 중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았다”라며 “폐결핵으로 시작해서 내성결핵, 다제내성결핵, 비결핵 항산균 폐결핵, 최근에는 기관지 확장증, 만성 진균 폐질환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만성 감염성 폐질환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고 교수는 수많은 환자의 검사 결과를 진료 전에 미리 확인했고 진료 후에도 진료기록을 다시 정리하느라고 너무나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만든 환자 코호트는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코호트가 돼 결핵 및 비결핵 항산균 폐질환의 임상상을 밝히는 초석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고 교수는 이렇게 연구를 하느라 밤을 새서 논문을 쓰고 허리를 다쳐 몇 번씩 병원에 입원했다. 호흡기내과 교수의 일원으로 이런 진료를 도와주지 못해 진심으로 유감으로 생각하며 유가족에게 안타까운 마음이다”라며 "분과장으로서, 선배 교수로서 고 교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바쁜 일상에서 쫓기듯 일하는 후배 교수와 소통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느낀다. 고 교수의 명복을 빌며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길 기원한다”고 했다.  

임솔 기자 (sim@medigatenews.com)의료계 주요 이슈 제보/문의는 카톡 solplus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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