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의사만 특별히 신성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지는 군인도, 사람을 살리는 간호사도 모두 신성하다. "노동은 신성하다"고 말한 칼뱅의 말을 따르자면 이 세상의 모든 노동이 신성할 것이다. 따라서 압수수색에서 의사만 예외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몇 년 전, 병원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압수수색을 당한 경험이 있다. 낯선 성인 남성 두 명이 문 앞에서 서성이다 갑자기 나를 붙들고 영장을 들이밀며 주소와 주민번호를 읊었다. 이유는 황당했다. 2024년 전공의 사직 당시, 지방에서 근무하는 공보의들의 대도시 파견 명단(이름과 전화번호를 모두 가린 상태)을 인터넷에 게시하며 당시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였다. 적용된 혐의는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었다.
당시 이슈가 되었던 전공의 블랙리스트와 헷갈려 무차별적으로 영장이 집행된 것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무혐의였다. 하지만 핸드폰을 빼앗겨 곤란을 겪었고, 경찰에 수차례 불려 다니며 무혐의가 나오는데는 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함께 압수수색을 당했던 의사 중 한 명은 불안감에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 수천만 원을 쓰기도 했다. 다들 무조건 무혐의라며 말렸지만 너무 걱정돼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절차 자체는 적법하게 진행됐다. 보건복지부가 수사를 의뢰하고, 경찰이 신청해 판사가 영장을 발부한 것이다. 하지만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무혐의가 뻔한 사안을 판사가 허가했다는 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알고 보니 경찰이 영장을 신청하면 90% 이상이 허가된다고 한다. 이럴 거면 판사의 사전 허가 제도가 왜 존재하는지 회의감마저 들었다.
일각에서는 "의사들이 압수수색 당하면 안 되는 거냐, 의사가 무슨 신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의사들이 분노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나라는 형사고발이 지나치게 쉽고, 경찰 조사로 이어지는 문턱이 너무 낮다. 해외에서는 처벌조차 불가능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도 형사처벌을 받는다. 법조인들은 “법에 저촉되지 않게 조심해서 쓰면 된다”고 말하지만, 일반 국민의 정서는 “그냥 남 비판하는 글 자체를 쓰지 말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의사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법조인을 제외한 대다수의 한국인이라면 이번 응급실 압수수색 사태를 보며 “소아응급 진료는 하지 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실제로 한국의 소아응급 진료가 경찰 조사로 이어지는 확률은 지나치게 높다. 외국의 경우 의료행위로 인해 의사가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반면 한국은 결국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기소 단계까지 올라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진료실에 있어야 할 의사가 법정에 서야 한다면, 그들이 느끼는 자괴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의료소송이 활성화된 미국과 비교해도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의 의료소송은 대부분 민사로 처리된다. 민사배상 규모는 클지언정 형사처벌의 공포에 떨지는 않는다. 게다가 미국의 환자 진료비와 비교하면, 중증 환자를 돌보는 한국 의사들에게 주어지는 보상 시스템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람이 먼저고 돈보다 생명이 우선”이라는 말의 무게는 알지만, 왜곡된 제도와 현실 속에서 이 시스템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이번 이슈에 불을 지핀 것은 외국인 부모의 신고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는 점이었다. 일반인들은 놀랐겠지만, 의사들은 이 뉴스에 덤덤했다. “누구든 의사를 신고해 법적으로 괴롭힐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이대목동병원 사건’ 때도 의료진 3명이 구속수사까지 받았으나 결국 무죄가 나왔다. 그래도 무죄로 나오지 않았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가해자로 의심받으며 입은 피해는 없던 일이 되는가. 직접 압수수색을 당해본 내 답은 '아니다'이다.
“어린아이가 사망했다”는 사실은 온 국민에게 깊은 슬픔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 슬픔은 의료진을 향한 강도 높은 수사의 명분이 될 수 있다. 응급실은 환자가 자주 죽는 곳이다. 환자가 죽을 때마다 곧장 압수수색이 들어온다면 누가 그곳에서 일하고 싶겠는가. 이번에도 임의제출 요청조차 없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어린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곧장 압수수색까지 간 것이다.
필요한 압수수색이었다면 의사들이 이렇게 반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의료기록 임의 수정은 의사들이 가장 조심하는 일이다. 임의 수정으로 가중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고, 실무에서도 기록을 함부로 고치지 말라고 교육받는다.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요구하면 됐다. CCTV 영상은 응급실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확보할 수 있다. 필요 없는 압수수색을 굳이 진행한 것이 의사 악마화를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의사가 신성해서 압수수색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죽음과 관련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폭증하는 형사고발과, 사법 당국의 면밀한 검토 없는 압수수색의 남용이다.
이번 응급실 압수수색 이슈에 대해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예전만큼 분노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차피 응급실에 가지 않을 것이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료 붕괴까지 몇 년 남았다는 경고가 나오지만, 실상은 이미 무너져 내려 지금은 지하실로 내려가는 중인지 모른다. 정치권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단순히 압수수색 절차를 강화하는 선에 그치면 안 된다. 붕괴 직전의 의료 시스템을 지탱할 종합적인 정책 개선에 나서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