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5.29 08:50최종 업데이트 23.05.2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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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노조 필요성...임상적 자주권, 독립성, 근무환경 훼손에 대한 저항

[칼럼] 안덕선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세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2023년 3월 중순 영국의 젊은의사회(Junior Doctors Network)는 3일간 파업을 단행했다. 젊은의사회는 국제적으로 의과대학 졸업 후 10년 이내 경력의 의사를 위한 조합이다. 전공의 기간은 가정의나 전문과 계열별로 상당한 편차를 보여 졸업 후 10년으로 묶었을 경우 세부전문의나 우리의 임상강사(fellow)급도 포함돼 병원 인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매우 강력한 의사조합이다.

이번 파업으로 인해 17만5000건의 예약과 처치가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영국의 심각한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급여 인상을 2%대로 묶어두는 정책이 젊은 의사들이 파업을 하게 만든 것이다. 젊은의사회 회장은 파업에 대한 분명한 책임은 의사 부족과 과부화로 중도 퇴직 등 근무 여건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치에 반하는 적은 급여를 지급해도 무방할 수 있다고 수년동안 믿어온 장관들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사회는 젊은의사회의 파업을 지지하고 젊은의사의 급여를  2008~2009년 수준으로 복원시켜야 한다고 동의했다. 현재 실제 급여 가치는 당시에 비해 26%나 감소했고 2023년 초 기준으로는 약 35%의 급여 증가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결국 정부가 대화 입장을 밝혔으나 15년 동안 급여가 삭감된 논의를 일회성 상여금 지급으로 한정하는 안을 제안해 젊은 의사의 신뢰를 잃었고 실망한 젊은의사회는 4월 11일 오전 7시부터 15일 오전 7시까지 96시간의 재파업을 결의했다. 영국의 젊은의사회는 이미 2016년 정부의 무리한 주말진료 강화책에 반발해 5차례의 파업을 했었고 응급실, 중환자실 모두 철수했다. 당시 결국 장관이 사임했다. 

전 세계에 소식을 전하는 영국방송(BBC)은 뉴스를 통해 젊은의사회의 재파업 예고를 신속히 보도했다. 다른 언론 매체들도 파업 기간 중 환자의 대처요령을 홍보했다. 환자에게 반드시 심각한 질병이나 부상으로 생명이 위험한 응급상황에만 999로 전화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긴급 상황이 아닌 경우 전화 111이나 111.nhs.uk에서 원격 안내를 받도록 했다. 파업에 대해 우리나라와 같이 의사 집단을 비윤리적 집단으로 매도하거나 업무개시명령으로 협박하는 일도 없었고, 지도부 구속이나 어처구니없는 공정거래위원회의 5분 대기조도 없었다. 

공공의료가 발달한 영국이 보여주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모습은 의사 집단의 파업도 당연한 권리로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2022년 12월 성탄절과 신년 연휴를 끼고 벌어진 프랑스의 미래를 생각하는 의사들의 파업에서도 조합에 대한 파업이나 인위적이고 강압적인 파업 종료 시도는 없었다. 공공의료와 민주적 의료가 잘 발달된 나라의 현실을 보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다. 

미국은 의사노조가 잘 발달 된 나라는 아니다. 미국은 2012년만 해도 60% 의료(medical practice)는 의사 개인이, 그리고 23.4%가 병원 소유였고 단지 5.6%만이 병원에 고용된 의사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2022년 의사의 74.2%는 피고용인으로 변모했다. 현재와 같은 거대 자본에 의한 거대 의료기관 그리고 정부에 맞서 의사나 의사단체의 대항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미국에서 의사노조는 1970년대에 시작돼 실제 가입 의사의 수는 다른 직업이나 산업에 비하여 매우 낮다. 미국의 공정거래법은 자본주의 정신에 의한 공정 경쟁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미국은 공정거래법(Antitrust law)에 의해 의사 집단에 의한 단체 수가 협상인 collective bargaining 을 적법하게 보지 않고 있는 나라다. 단체에 의한 획일적 수가 협상이  자유 경쟁을 방해하는 담합으로 보는 자본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달리 정작 공정거래에 반하는 불공정거래 정책이 정부 주도로 이뤄진 것이 우리나라 의료 환경이다. 우리나라는 의사 모두가 보험공단의 지정 의료기관으로 수가협상을 16대8의 비대칭 구조에서 진행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협상 아닌 불평등 수가 협상은 건보공단이 제시하는 최후통첩 인상률의 수용 여부만을 결정해야 하는데, 수용하지 않으면 벌칙을 가하는 어처구니없는 구조다. 협상에 웬 벌칙적용인가?

건보공단이 매년 수가협상 시에 이용하는 지속 가능한 목표진료비 증가율(Sustainable Growth Rate:SGR) 모형도 미국이 한 번도 적용해보지 못해 폐기하는 학문적 유희에 가까운 유사 과학이다. 이를 보완하는 건보공단 재정운영위원회의 감성적인 밴드 결정 또한 매년 2% 이내 수준에서 통제되고 있어 사실상 진정한 협상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나 평등민주주의 모두에 맞지 않는 의료독재의 구조적 모순이다.  

우리나라 의사협회의 구조는 미국의사회와 유사하다. 그러나 의료 환경은 단일 국가의료체제(National Health System)를 갖는 영국과 유사하고 영국 의사회는 1971년부터 공인 의사노조(trade union)로 등록됐다. 공공의료가 발달한 유럽은 의사 노조가 잘 발달됐다. 파업에 대한 의사결정과 실행력도 매우 효율적이다. 우리나라도 개원의사의 비율이 점차 축소돼 전체 의사의 30% 정도이고 나머지는 피고용인의 신분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의료기관의 거대화와 거대자본화가 전문직업성과 의사 신분을 취약하게 하고 있다. 개원의도 공단의 급여지급 대상으로 실제는 공단에 예속돼있다. 

우리나라도 의사 권익을 위해 3개 의사노조가 있었으나 최근 아주의대 교수노조는 법원이 학교 측의 노조설립신고증 교부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법외 조합이 됐다. 법원이 의대 단독 교수노조를 불허한 것이다. 아주대는 향후 교원노조법에 규정된 노조설립 단위에 부합하는 전국의대교수노조의 지부로 활동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와중에 인제의대는 교수노조를 설립하고 서울과 부산에 우리나라 의대교수노조 최초 전용 사무실을 개소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의사노조가 만들어진 이유는 거대 의료기관이 보여주는 영리법인 작동원리로 의사의 임상적 자주권이나 독립성 그리고 근무환경의 훼손에 대한 저항이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특징이 젊은 연령대의 의사에게 정책적 기만을 넘어 권력 남용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국제적으로 젊은 연령대의 의사들은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한전공의협회는 국제적 구조인 JDN과는 구조적 차이를 보인다. 인턴이나 임상강사(fellow)의 신분도 애매하고 공보의나 군의관은 권력에 대항 할수 없는 구조다. 아마도 전공의로 국한된 우리의 대한전공의협회 보다는 졸업 후 10년으로 엮여진 JDN식 구조가 조합의 규모나 응집력, 그리고 지속성이 훨씬 강력할 수도 있다. 얼마 전 젊은의사협의체가 발족을 했는데, 우리나라도 JDN으로 재탄생하는 방안도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 의사단체는 주요 사안이 발생하면 별도의 선거를 통해 비상대책위원회장을 선출하고 비대위를 구성한다. 단체의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집행부의 정책적 일관성도 문제이고 집행부가 아닌 한시적 비대위에 의한 투쟁구조는 본격적인 이익단체의 효율성 면에서 구조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대한의사협회의 2000년, 2020년 두 차례의 조기 파업 종료의 경험을 냉철히 검토할 필요도 있다. 집행부와 회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파업 자체는 이루어 냈으나 성과(outcome)는 의문의 여지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노동조합을 위한 토론회에서 노동조합 전문가는 현재 의사 조직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고 의사 노동권의 조직화를 주문했다. 전체 의사들의 권익 보호와 실효성 있는 대정부(복지부와 건보공단)협상을 위해 일부 병원이나 의과대학의 의사노조 단체가 아닌 봉직의, 개원의, 의대교수, 전공의 모두를 포함하는 전국의사노조협의회를 구성할 것을 조언했다.

이제 의사협회는 법조인과 노동조합 전문가와 협업해 본격적인 근로환경 보호를 위한 조직화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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