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11.02 06:57최종 업데이트 22.11.02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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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사상자 발생 신고 45분 지나서야 환자 이송 시작...교통 통제와 환자 중증도 분류 아쉬움

[이태원 참사 재난의료 긴급점검]⑤ 전 국민이 재난매뉴얼 인지할 필요성...질식 사고시 인공호흡 교육도 강조

 
10월 30일 밤 이태원 사고 인근의 혼잡한 거리 사진=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 페이스북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이태원 압사 사고의 충격이 가시지 않는 가운데 대규모 재난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재난 시 대응 매뉴얼을 인지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재난 상황에서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국민 정서상 납득하기 어려운 환자 분류와 이송이 이뤄진다는 것을 인지해 전국민이 협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참사에서도 큰 도움이 된 일반인들의 심폐소생술(CPR)이 인공호흡 없이 가슴압박 위주로 이뤄진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며, 질식으로 인한 심정지를 대비한 인공호흡 교육도 중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10월 29일 밤 10시 15분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골목에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첫 신고가 들어온 후 용산소방서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신고접수 4분만인 10시 19분이었다.
 
하지만 주변 업장의 시끄러운 음악과 비명으로 아수라장이 된 골목길은 통제 불능 상태였고, 경찰과 소방 당국이 확성기를 들고 몰려 있는 인파를 정리하는 데만 약 40분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사이 119구급상황관리센터는 재난의료지원팀 DMAT의 출동을 요청했고, DMAT이 현장에 임시 응급의료소를 설치한 것이 10시 53분쯤이었다. 그렇게 인파를 정리하고 심정지 및 호흡곤란 환자들이 엠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기 시작한 것이 오후 11시 경이었다.
 
의료진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사고를 당한 심정지 환자에 심폐소생(CPR)을 실시했지만 사상자는 점점 늘어났고, 새벽 2시가 된 후에야 인근 병원과 체육관으로 사망자가 안치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1일 밝힌 이번 참사의 사망자는 156명이다. 중사자는 29명, 경상자는 122명으로 총 30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재난 상황에서의 통제가 중요…심정적 이유로 환자 분류‧이송에 차질 빚어져선 안 돼
 

전문가들은 대규모 재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분류와 이송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규모로 발생한 응급환자를 긴급도에 따라 신속하게 이송하는 것이 곧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31일 MBC 긴급토론-이태원 참사와 우리의 안전에 출연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정경원 소장은 “교통을 원활하게 통제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서울 한복판이어서 제한점이 있었을 것 같기는 하나, 항공 전력을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전했다.
 
정 소장은 “확성기로 현장의 교통을 통제를 하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조금 더 먼 곳에서부터 통제가 이뤄졌어야 됐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10월 31일 유튜브 ‘빨대포스트’에 출연한 동강대 응급구조학과 박시은 교수는 단국대 의과대학 기생충학과 서민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재난 상황에서 ‘트리아지(triage)’ 즉, 중증도 분류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환자의 중증도를 4단계로 분류하는 트리아지는 어떤 환자를 가장 먼저 이송해야 하는지 분류하는 체계를 말한다. 빨강, 노랑, 초록색, 검정색 표를 붙여 분류하는 트리아지는 전쟁과 같은 대규모 재난 상황에서 적용되는 환자 분류체계로 의료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부상자를 여러 병원으로 분산 치료하고, 생명이 위급한 중증 환자를 골라 수술과 치료가 가능한 상급병원으로 보내 전체 사망률을 낮추는 데 활용된다.
 
은 교수는 “재난에서는 이중파동효과라는 것이 발생한다. 첫 번째 파동에서는 대부분 치료 예후가 불량한 심정지 환자들이 밀려온다. 사실 재난에서 심정지 환자들은 검정색으로 분류되며 이 환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해서는 안 된다. 살 수 있는 환자들의 치료가 지연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그것이 원칙이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이 불가능하다. 내 가족이 쓰러져 있는데 누군가 지금이 재난 상황이라는 이유로 검정색 태그를 붙이고 아무 처치도 해주지 않는다면 굉장히 화가 날 것이다. 학술적으로는 맞지만, 정서상 용납되기 어려운 부분이다”라며 “어디까지나 이런 원칙이 있다는 것쯤은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경희의료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현장 지휘소를 거치지 않은 구급대나 개인 이송도 문제다. 재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통제다”라며 “재난 매뉴얼대로 라면 가장 가까운 병원은 중환자만 받아야 하는데, 이번 사태에서는 그런 재난 매뉴얼을 따르도록 통제하는 것이 잘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재난 상황을 대비한 각종 재난 대비훈련 및 교육이 이뤄지지만 보여주기식 훈련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고, 일반 시민들은 재난 대비훈련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는 경우도 많아 이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가슴 압박 위주 심폐소생술 교육…질식으로 인한 심정지 시엔 인공호흡 필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심정지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응급처치에 사용되는 심폐소생술(CPR)에서 인공호흡이 빠진 가슴 압박 위주로 가이드라인이 바뀐 점도 개선될 점으로 꼽고 있다.
 
우리나라도 심폐소생술 교육이 확대되면서 심폐소생술 시행률이 개선되고 있지만, 국내 심폐소생술 교육이 가슴 압박 위주로 이뤄지면서 이번 압사 사고에서는 큰 도움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 ‘한국형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가슴압박의 비중을 높였다. 가슴압박과 인공호흡의 비율은 30:2로 기존 방식과 동일하지만, 구조자가 인공호흡을 할 수 없는 일반인이라면 심정지 환자 목격 시 인공호흡을 생략한 채 가슴압박 소생술(hands only CPR)만 시행하도록 변화를 준 것이다.
 
이에 따라 일반인 대상 심폐소생술 교육에서는 정확도가 떨어지고 일반인들이 꺼리는 인공호흡을 과감히 생략하고 가슴압박 소생술만 실시하도록 교육이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질식성 심정지 환자의 경우 가슴압박만 실시하는 것보다 인공호흡이 동시에 이뤄질 때 더 적절한 응급처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시은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고, 가슴압박 소생술의 장점이 너무 강조되다 보니 인공호흡이 홀대를 받게 됐다. 하지만 인공호흡이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라며 "환자가 물에 빠져 심정지가 발생했거나, 기도에 음식물이 막히는 등 질식으로 인해 심정지가 발생한 경우는 심장은 멀쩡한데 순간적으로 호흡을 하지 못해 심정지가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인공호흡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영상에서 대부분의 시민들이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 시 가슴압박만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 포착됐다.
 
정경원 소장 역시 “현장에 있던 구급대원은 물론 일반인들도 심폐소생에 나섰다. 우리나라에 심폐소생술 교육이 많이 확산됐지만, 사고 당시 심폐소생술을 하시는 분들이 가슴 압박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흉부 압박으로 회복되는 사례는 심장에 원인이 있는 쇼크 등이다. 사고 당시 대다수의 사람이 호흡 부족 등으로 사망했기 떄문에 인공호흡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당시 구급대원들이 심폐소생술을 많이 실시했는데, 구급대원이 응급 현장에서 기도 확보 등 응급 처치를 하는 데 있어 법적으로 제한적인 부분이 있다”며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에 대한 재논의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한편, 현장 증언에 따르면 사고 당시 피해자는 대다수 여성이었으나, 남성들이 성추행으로 오인될 것 등을 우려해 여성 중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일도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박시은 교수는 “국내에도 선한 사마라이인 법이 있어서 고의가 아닌 이상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면제 받을 수 있다”며 심정지 상황에서 최초 목격자의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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