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3.21 17:30최종 업데이트 24.03.2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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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대못을 박고야 마는구나,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칼럼] 박인숙 울산의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의사, 국민(환자), 정부(대통령)간에 한 달 이상 이어가는 의료대란('의료 농단'), 게다가 정치권에서 매일 터져 나오는 불쾌한 뉴스들로 온 국민이 지쳐가고 있다. 의미 없는 싸움을 보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그 유탄이 점차 자신에게 가까워져 오면 더 이상 방관만 할 수 없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지금 병원에 갈 일이 없는 국민은 이 의료대란이 강 건너 불구경 같겠지만 사실 이는 국민 모두, 특히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대단히 심각한 상황으로, 직접 피해자는 앞으로 태어날 세대를 포함한 국민 모두이고, 가해자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정부와 여당이라는 점이다. 

이에 한 가지 분명하게 짚을 부분이 있다.

의사는 피해자가 아니고 가해자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실무를 전공해서 잘 알고 있으므로 그 일을 직접 집행하는, 고위 간부나 현장 전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의 의료 농단은 이미 출발해 버린,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고속철과 같다. 그런데 그 종착이 어떨지를 훤히 알고 있는 의사들이 온갖 협박, 징계, 처벌을 무릅쓰고 반대해도 멈출 수 없는 상황이라 지금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그러면서 충정심에서 분출되는 의사들의 항변을 ‘밥그릇 싸움’이라고 가볍게 폄하하는 대중과 언론을 향해 호소하는 것이다.

지금 진정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집단은 누구인가? 끝까지 2000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며 대한민국 의료를 파멸로 몰고 가는 대통령과 정부인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에도 온몸 바쳐 환자들을 진료하는 의사 포함 모든 의료인인가?

비수도권 의대 27곳에 한 명 단위까지 억지로 꿰맞추어서 2000이라는 숫자를 꽉 채운 의대 할당 학생 수를 보면서 대통령의 2000이라는 숫자에 대한 집착의 배경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이다. 

이제 32개 의대에 정확하게 2000명을 증원한 정부는 현장을 떠난 학생과 전공의들의 출구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필수의료, 지역의료를 고치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이 난리의 결과 필수의료는 물론이고 의료 자체를 아예 한 방에 날려버렸다. 대한민국 의료를 지금과 같이 최고 수준으로 만드는 데에 수십 년이 걸렸는데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지금 당장 의료 현장은 교수들과 직원들의 헌신으로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탱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지금 현장을 떠나 있는 학생들, 전공의들의 어려움도 심각한 현실적인 문제이다.

게다가 갑자기 닥친 전공의 부재로 인한 병원경영 붕괴와 이에 따른 의료 생태계 전체와 지역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위 상황이 지금 코앞에 닥친 재난이라면 중, 장기적인 전망은 더 암울하다. 

내년부터 입학정원이 갑자기 두세 배 늘어난 의대 교육 현장의 모습, 그런 부실 교육을 받고 앞으로 10여 년 후부터 배출될 의사들의 모습,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었던 각종 의료 관련 모순들이 더욱 증폭되어 벌어질 일들, 의대 쏠림으로 인한 이공계, 산업계의 황폐화, 극심한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 등, 이 모든 장면이 오버랩 되면서 과연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온전한 국가로 남아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온갖 걱정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데 하루 종일 뉴스 화면에서 파란색 방위복 유니폼을 입은 공무원들이 일사불란하게 꼭두각시 칼춤을 추는 장면을 보자면 끝내 참고 있던 분노가 폭발하곤 한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의대 증원 2000명을 무슨 만고불변의 법칙처럼 단 한 명도 건드릴 수 없다고 고집한다면 어떠한 대화도 불가능하다. 이제 마주 오는 기차가 맞부딪치면서 발생하는 대재앙의 피해는 고스란히 지금 우리 국민과 미래세대가 입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대통령과 정부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에 입각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애국심이 눈꼽만큼이라도 남아있다면.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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