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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철 자기애적 성격장애(narcissism) 정권 고질병... 마스크 착용하듯 정치권력 내면에 이성의 마스크 장착해야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기사입력시간 20.04.03 08:13 | 최종 업데이트 20.04.03 08:13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만명에 육박하는 가운데, 정부는 이제야 방역의 ‘미세 구멍’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4월 1일자로 모든 입국자에 대한 자가 격리 조치를 의무화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방역국가라는 정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망자와 수도권 환자 수는 여전히 증가추세에 있다. 이에 정부가 관리하는 '작은 구멍'인 입국자에 대한 정책 변화는 세계 최고임을 증명하기 위해 마지못해 취한 조치로 보인다. 

    현 정부와 정치권이 코로나19 사태에서 보여주는 중증 질환인 '세계 최고 자화자찬증'을 의학적으로 판단해 보면 다양한 유형의 성격장애 중 하나인 자기애적(narcissism) 성격장애로 보는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만, 이것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정부 관료와 정치권의 주도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매우 걱정스럽고 위험한 양상을 띤다. 성격장애가 집단화됐을 때 보이지 않는 사회적 해악이 점차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 국면 정치권 모든 감각기관 득표 매표 행위로 뻗혀 있어 이성적 판단 마비

    자기애적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의 특징은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감각의 부종현상으로 자기팽창증(self-inflation)의 다양한 증상과 함께 타인으로부터 과도한 관심과 감탄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특성을 동반증세로 발현한다. 이런 현상은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어려우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정신 상태의 특성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의사의 전문성보다 관료주의가 우선한다.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활동을 보면 최 일선 임상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인 전문가집단에 대한 공감 능력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적 위기에 국가적 차원의 대처에 정부 관료의 등장은 필수적이고 당연하다.

    그러나 전염병 같은 상황에서 정부 주요 관료는 전문가집단의 판단을 존중하고 관료와 전문가 집단의 협력적인 구조로 위기를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공감역량의 극심한 결핍현상을 보이는 정부는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일은 정부나 정권의 치적으로 포장하고 싶어한다. 그 이유는 국민의 감탄과 관심을 언제나 갈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철을 맞이해 이런 증상은 더욱 심해진다. 

    사회는 의료의 전문성에 대한 이해의 걸림돌로 의사 집단과의 의사소통 장애를 비판한다. 의학교육에서 적절한 의사소통은 매우 중요한 주제로, 정도 차이는 있으나 현대적인 의학교육에서 학생에게 반드시 제공돼야 하는 필수교육 중 하나다. 최장기간의 교육과 수련으로 의학에 대한 전문성을 키웠으나 정작 눈높이가 다른 사회와 복잡한 의료에 관한 소통은 난제 중의 난제로 보인다. 최소한 임상 현장에서 한 개인의 환자에 대한 질병의 설명이라도 충분히 잘 전달할 수 있으면 분명 그것은 능력 있는 의사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불가근불가원, 옳지 않은 것 모두 걷어내고 새 질서 부여해야 바이러스 무력화 

    의사집단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불변하는 수능 최상위 집단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의과대학 입학 전 이들이 모범생으로 칭송받고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시점까지 충분히 받았을 것으로 여겨졌던 칭찬은 의과대학이나 전공의 교육 기간을 통해 상대적으로 급격히 축소된다. 대신 임상이나 연구에서 직무에 대한 완벽성을 추구하는 것이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어, 오히려 질책과 힐난이 지나칠 정도가 된다. 종종 의과대학생이나 전공의에 대한 칭찬이 아닌 교육적 학대로 이어지면서 문제가 된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보여준 의사집단의 전문 직업성을 바라보며 우리나라 의사집단이 갖고 있는 기본 전문 직업성은 아직 우수하고 건강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의사들은 장기간의 교육 수련과 여러 가지 다양한 시험을 거쳐 직무수행의 ‘수월성’을 요구받는 반면에, 정치인은 선거 국면에서 수월성을 요구받을 것이다.

    선거의 수월성에 자신을 부풀리고 유권자를 현혹시킬 선동이 필요할 것이다. 좋게 표현하자면, 사회와 혹은 유권자와 원활히 대화하는 역량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관리(공무원)집단의 전문 직업성은 수월성의 추구와는 다른 요령이 필요하다. 관리는 업적으로 평가 받아야 하는데 이들의 천적은 선거로 당선된 정치인의 집합소인 국회에 있다.

    정치권, 특히 정권에 잘못보이면 이들의 앞날은 매우 힘들어지고 예측할 수 없는 암담한 상황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관리들은 자신들의 혼을 빼고 정권의 시녀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관리들의 일반화된 행동수칙이 된 것이다. 이런 행동양상은 눈에 안 띄는 ‘hidden curriculum’일텐데, 지금의 우리나라 사회는 적폐청산의 구호 속에 정권충성이 공식적인 사안이 됐다. 촛불로 민주화를 이룩한 정권이 보여주는 역설적인 반민주적 퇴행적 양상으로, 아마도 일제때부터 보여주는 공직자 생존원칙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스크 착용하듯 정치권력 내면에 이성의 마스크 장착해야 악성 바이러스 사라져  

    정치인들은 늘상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일한다고 하며 정치권의 수임사항을 집행하는 관리집단도 자신들이 하는 일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은 직무수행으로 포장한다. 정치가의 목표는 정권쟁취로 결국 권력투쟁이 이들의 주된 업무로 권력만 쟁취할 수 있으면 무엇이든 덤벼든다. 반면에 의료의 목적은 너무나도 명확해 달리 설정할 필요도 없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미 의료의 목적은 설정돼 있고 수월성의 추구라는 전통이 존재한다. 다만 얼마나 더 잘할 것인가가 목표이지, 권력쟁취나 사회와 소통은 중요한 목표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정부는 정권의 힘을 초월하는 그 어떤 집단의 형성이나 존재도 경원시하고 두려워한다. 정당의 목표도 자신들의 이념이나 정강에 의한 진정한 공익적 목표라기보다는 정권의 쟁취가 우선순위이며 핵심목표일 것이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에 자신들이 야당시절 정권에 비판하였던 것을 정작 여당이 되면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꾼다.

    국민들에게는 정권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잘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야 하기에 국민의 공적이나 행운 혹은 전문가 집단의 공로도 자신들의 공로나 지도자의 치적으로 가져가고 싶어한다. 어떤 사안을 어떻게 보기 좋게 잘 포장하느냐를 가늠케 해주는 선동적 역량과 수월성이 대의민주주의에서 보여주는 암울한 권력투쟁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자기애적 성격장애가 집단화될 때 보여주는 부작용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끔찍하다. 나치정권하 아리안족의 선민의식과 나치당의 과도한 선전은 결국 인종차별, 생체실험 등의 반인륜적인 행태를 만들어냈다. 정권주의 자기애적 성격장애와 비뚤어진 애국심은 끔찍한 결말을 맞이해야 해결될 일인데, 끔찍한 일이란 사회적 패망과도 연결될 공산이 크다.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나라가 최빈국으로 폭망하는 사례도 현 시대를 살면서 남미에서 연출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언한 서구유럽사회와는 한참 차이가 나 보인다. 국민을 위한 다는 각종 달콤한 속임수의 이데올로기가 가져온 폐해를 이미 몸서리칠 정도로 아프게 겪었기 때문이다. 현대는 이제 한 가지 이데올로기가 모든 사안을 지배할 수 없는 다양성과 애매함의 시대가 됐음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흑백과도 같은 이분법적 이데올로기 논쟁의 진흙탕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정권의 자기애적 성격장애 국가사회 패망 도화선, 실증적 과거 역사 언제든 재생

    김정은과 포옹 이외 별다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여 칭찬에 목이 마른 정권이 보여주는 이상한 행동은 이웃 나라의 칭찬에도 매우 갈증이 심한 것으로 느껴진다. 코로나19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 했다고 보여준 중국 공안의 야만스러운 행포와 이를 비판한 사람들의 실종은 우리의 이웃이기에는 중국은 아직 너무나도 비민주적이고 위험한 집단으로 비춰지는데도 말이다.

    1980년대 중국에도 짧은 기간 동안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응답하라 1987’ 쯤 되는 중국은 ‘River Elegy’ 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중화문명에 대한 자체비판을 했다. 국가적으로 뜨거운 논란이 전개되었고, 결국 천안문사태를 촉발했다. 결론은 인민해방군이 응답해 적폐세력에 대한 무관용적 처리로 조치한 것이다. 

    1987년 이후로 중국과 한국은 양국이 서로 다른 길을 걸은 것처럼 보이는데 우리나라는 장기간의 군부 정치 개입으로 더 이상의 군부 개입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중국은 아직도 언제라도 정권의 입장에 반대하는 집단을 이른바 ‘적폐’로 간주하고 반대 집단과의 공감(empathy)은 절대불가의 현상을 공유한다.

    “중국은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나?”는 질문에 한 개개인으로서 중국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중국이라는 나라가 보여주는 고유문화라는 우문현답 식 역설일 뿐이다. 이런 점을 볼 때 우리와 중국이 공유하는 ‘Homo Historians’의 현상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중국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라는 중국 칭찬 구애적 입장은 현 정권이 보여주는 코로나19에 대한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대표적 정책 슬로건으로 읽혀진다. 영향력이 있는 주변국의 칭송이 필요한데, 하필이면 전염병 방역에서 국민과 사회의 희생을 각오해도 상관없을 결정이었는지 궁금하다. 한 사람의 성격장애 치료는 매우 어렵다. 더구나 이런 성격장애가 집단으로 나타날 때 뾰족한 치료법은 찾아보기 불가능하다. 

    절체절명 심정 최후의 보루로 의료진 대하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 기댈 곳 없어  

    한 사람의 성격장애의 치료를 위해서는 여러 번의 지속적인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가 필요하다. 이런 치료를 통해 자기애적이고 과대망상 같은 웅장하고 왜곡된 생각을 보다 긍정적이고 현실적인 아이디어와 스스로 자기를 평가하는 법으로 대체하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집단적 성격장애는 전염병 대처보다 더욱 감당하기 벅차고 힘들기 때문이다.

    해외 동포가 매우 의아해하는 질문 중 하나는 “왜 우리나라는 노란 재킷을 입은 자화자찬 부대가 방역의 첨병으로 미디어 화면을 가득 채우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일부 종합일간지는 “현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서 전쟁보다 더 엄중한 시국에 목숨 걸고 사투를 벌이는 의료인을 홀대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라고 개탄해한다. 영국이 전염병과 싸우는 의료인을 위해 시간을 정하여 전 국민이 박수를 보내는 국민적 공감을 보낼 때, 우리나라는 ‘재난전투복’을 착용한 특수부대가 정권의 노골적인 치적을 위한 선전대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설령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해도 정상적인 정부라면 전투에 공을 세운 군인이나 수고한 사람들에게 포상하고 격려하지, 원색적인 자화자찬으로 정부 스스로 포상하는 낯 뜨거운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 문화적 여건에서 전문직 집단은 ‘잘해야 본전’인 고질적인 구조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전문 직업성의(professionalism) 속성을 감안하면, 치적과 포상 보다는 수고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공감으로도 충분하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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