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0.03.19 06:42최종 업데이트 20.03.1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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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정신보건법 어겼어도 요양급여 환수는 위법...1·2심 판결 뒤집힌 배경은

"시설기준 위반해도 진료 원활했다면 요양급여비 지급해야...요양급여는 보조금 아니라 환수 남발은 잘못”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최근 정신보건법을 어긴 정신의료기관에 대해 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급여비용을 환수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정신의료기관이 시설 기준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진료만 원활히 이뤄졌다면 지급된 요양급여비용은 정당하다는 취지다.
 
특히 이번 판례는 기존에 건보공단이 무차별적으로 요양급여비용을 환수하던 전례를 정면 부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건보공단은 지금까지 개별 법률 위반 사항에 따라 지급됐던 요양급여를 환수해왔다.
 
대법원 제2부는 지난 12일 정신의료기관장이 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비용 환수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1‧2심 판결을 뒤엎고 요양급여비 30억 9000여만원을 환수할 수 없다고 최종 판결했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개원 중인 정신의료기관장 A씨는 2009년 신경정신과의원을 개설하기 위해 빌딩 2개 층을 임차하고 200병상 규모의 시설과 장비를 마련했다. 그러나 같은 건물 지하에 나이트클럽이 입주하면서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자 A씨는 병상 수를 49개로 축소 신고하고 진료를 시작했다.
 
이후 2016년 건보공단 측은 A씨가 정신과의원 기준 최대 병상 수인 49병상을 초과해 환자를 입원시켰다며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A씨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받았다고 보고 해당 비용을 환수 처리했다.
 
해당 사건에 대해 1‧2심 재판부는 A씨가 입원병실 기준을 위반해 50인 이상이 입원할 수 있는 정신병원 규모로 의료기관을 운영하면서도 이에 맞는 시설과 장비기준을 갖추지 않았다고 봤다. 특히 정신병원 개설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아 관할 행정청으로부터 어떤 관리‧감독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요양급여의 인정기준을 위반했다는 게 원심 판결의 요지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건보법에서 ‘요양기관이 요양급여에 필요한 적정한 인력과 시설‧장비를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한 취지는 적정한 요양급여를 제공하게 하려는 것"이라며 "정신과의원의 입원과 진료를 제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은 "A씨가 시설기준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의료기관에서 제공한 진료가 요양급여의 기준에 미달하는 등의 다른 사정이 없다면 지급된 요양급여비용을 제재해야할 공익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즉, 정신과의원의 입원실 수를 초과한 상태에서 요양급여가 제공됐다는 사정만으로는 해당 요양급여비용을 수령하는 행위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의해 요양급여를 받는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A씨는 검찰로부터도 ‘사기’, ‘건보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의정부지방검찰청은 "A씨는 진료하지 않은 환자를 입원하거나 진료한 것처럼 꾸미거나 허위의 서류를 작성, 제출해 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를 수령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반우 김주성 변호사

이번 사건의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반우 김주성 변호사는 해당 판례가 건보공단의 과잉통제를 제한할 수 있는 중요한 판례라고 분석했다.
 
김 변호사는 "건보법 위반 사항이 아닌 다른 법률 위반으로 인해 요양급여비용이 환수돼 왔다"며 "그러나 요양급여비는 민사상 진료비 채권이지 공단이 베푸는 보조금 성격이 아니다. 이 같은 환수 남발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요양급여비용 환수를 무기로 공단은 법집행을 하고 있다. 진료비 채권에 제한을 가해 환수할 정도면 매우 중대한 법률 위반이어야 한다. 법원의 판례 방향이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에 대해 김 변호사는 비례 원칙에 반하는 과한 제재를 사법부가 정확히 짚어냈다고 해석했다. 그는 "정신보건법 위반은 정신보건법에서 정한 행정제재로 처벌을 가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를 뛰어넘어 공단에서 요양급여를 환수하는 것은 비례 원칙에 반하는 과한 제재라고 변론했고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는 "A씨는 단지 초과병상에 있어 위반이 있을 뿐, 진료에 있어선 잘못이 없었다"며 "진료의 적정성에 중점을 둬 진료가 부적절했다거나 무면허 의료행위, 허위청구 등은 요양급여 환수가 적절하다. 그러나 건보법 이외 개별적 법률에 대해서 요양급여를 환수하는 건 잘못됐다는 게 이번 판결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법률 방향성에 대해 김 변호사는 "앞으로 사법부는 실제 진료 적정성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지 여부만 심사해서 그에 따라 환수를 결정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며 "공단도 이에 발맞춰 시설기준 등 의료기관의 법 위반 여부만 입증하고 그에 맞게 처벌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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