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7.31 06:39최종 업데이트 19.07.31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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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젊은의사 노조, 보상 없는 NHS의 주말근무 강요에 강력 투쟁

"주말근무 확대하려면 인력 확충과 예산 확보부터" 응급의료 철수 초강수, 영국 정부 결국 백기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이지 않아도 대의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이라는 두 개의 거대 엔진으로 세계를 움직이며 지구촌 근대화에 영국이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과거 영국의 식민 정책은 ‘악성 식민주의(malignant colonialism)’라는 오명이 붙었던 일본과는 달리 소위 ‘계몽’(enlightenment colonialism)을 추구해 언젠가는 식민국가 스스로 근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역량으로 영연방의 일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지금도 과거 영국과 식민지 관계를 맺었던 대부분의 나라는 영국을 미워하거나 적대시하지 않고 영연방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 아시아 지역도 많은 국가들이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고, 지금도 교육과 의료제도 분야에서 ‘영국식’을 표방하고 있어 사회 문화 곳곳에서 영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홍콩을 기점으로 북쪽으로는 영국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타이완 등 이른바 유교문화 국가들은 20세기 초반까지는 중국의 영향을, 그리고 일본의 제국주의 시대에는 일본식 근대화 과정을, 그리고 일본의 패망 후에는 미국식 영향을 크게 받았다.
 
영국도 우리나라처럼 국가 단일보험 방식 운영, 사회 참여 의료 구현

 
영국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국가 단일 의료보험인 ‘National Health Service(NHS)’ 체제를 운영, 규모가 큰 국영 기업 형태로써 의료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고용인력 규모도 약 150만 명 이상에 이른다.

의사를 비롯해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보건의료인 양성 비용 역시 NHS가 전적으로 부담하고 있다. 영국이 추구하는 의료의 형태는 소위 ‘사회참여형 의료(Social practice)’로써 사회가 의료인의 양성에서부터 정년 후 생활까지 긴 과정을 보장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14~2015년에 걸쳐 영국 정부와 영국의 공식 의사 노조(trade union)인 영국의사회(British Medical Association)는 장기간 험악한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우리나라로 치면 인턴을 비롯하여 전공의와 전임의(fellow) 등 소위 젊은 층 의사 연합체인 영국의 젊은 의사회(Junior Doctors Network)와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문의(consultant) 등 의료계를 대표하는 두 단체와 정부 간에 단체협상의 지연과 이견으로 결국 젊은 의사회의 파업으로 촉발된 것이었다. 영국 역사상 젊은 의사회의 전면파업은 이례적인 사건으로 NHS 측에도 커다란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통상적으로 보면 세계 어느 나라든 주말진료는 평일 주중진료에 비해 인력 투입이 적을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환자 사망률은 평일 수준에 비해 주말에 다소 높아질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영국 의사들이 파업에 나서게 된 주요 이유는 영국의 NHS가 전공의들에게 제대로 된 별도 보상 없이 주말진료를 강행하려고 획책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영국의 병원 역시 주말 근무 인력은 평일보다 적은 수준으로 운영된다. 국가나 기관이 원하는 대로 주말 또는 휴일에 근무하는 직원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크게 3가지 문제가 우선적으로 충족돼야 가능한데, 이 세 요소는 적정 인력 확충, 법정 근무시간 준수, 예산 확보 등을 꼽아 볼 수 있다.
 
별도 보상 없이 주말 진료 획책, 젊은 의사들 분노의 화약고에 불 지펴
 
과거에 주 당 70시간 이상 근무했던 젊은 의사들의 법정 근무 시간은 2009년부터 유럽연합의 기준에 맞추어 주 48 시간으로 단축됐다. 최근 영국 사회는 시간제 근무 의사의 증가와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령 인구의 자연 증가 등 인구학적 구조 변화로 인해 더 많은 의사 인력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2008년 유럽 경제 위기에 영국의 은행을 구제하는 대신 공공 분야에 대한 예산 삭감을 단행하였고, 이로 인해 NHS도 정부의 심각한 긴축 예산 방침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영국은 사회적으로 증가하는 의료 수요와 의료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마땅한 재원 확보가 절실했다. 사회와 인구변화에 따른 병원진료, 특히 응급의료에 대한 수요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으며, 환자에 대한 안전요구 역시 의료진에 부담이 될 정도로 비중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NHS는 의료비 절감을 목적으로 지난 10년 동안 병상수를 축소했으며, 여기에 더해 소위 ‘합리적인 퇴원 정책’을 전격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당초 기획했던 대로, 기대했던 만큼의 ‘합리적 퇴원’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이 같은 정책 여파로 인해 설상가상으로 병원진료가 종결된 노인들에 대해서 병원 진료 이후 사회적 돌봄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고리도 끊어졌다. 한마디로 이들 환자들을 지역사회에서 마땅히 흡수할 곳이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오히려 병원에서는 진료 지연 사태가 빈발하면서 환자들은 새로운 경험을 해야만 했다. 병상수의 축소와 더불어 더 많은 의료 인력을 고용해야 의료의 효율성과 환자안전이 보장되고 향상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산지원은 막혀 있어 문제가 된 것이었다.
 
극한 수준의 업무량과 팀 구조 상실 등 젊은 의사 불만 팽배
 
단체협상 과정에서 영국의 젊은 의사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영국의 전공의는 이미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과도한 업무량과 상황에 따라서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팀 구조의 상실, 그리고 질 낮은 교육과 훈련, 유연성이 떨어지는 근무형태 등에 대해 불만이 고조됐다.
 
이 처럼 젊은 의사들에게 팽배해지는 불만과 동기부여가 낮은 직업에 대한 사기 문제는 다른 직종으로의 전업과 해외 이주, 그리고 의학자 과정에 대한 중도포기 현상으로 점차 어두운 빛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영국 NHS와 보건부장관이 보여준 성의 없는 협상태도는 젊은 의사들로부터 극심한 좌절감과 강한 분노의 화약고에 불을 붙이게 했다.
 
2013년 10월에 시작된 단체 협상에서 영국 정부를 대표한 보건부 장관과 영국의사회, 그리고 젊은 의사회 의장 모두 협상 테이블에 앉아 합리적인 새로운 변화를 원했다. 그러나 생각대로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자 결국 영국 젊은 의사회는 먼저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와 탈퇴를 선언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상황에 대한 재검토를 하고 보고서를 출간했다. 이어 2015년 7월에는 새로운 계약을 위한 수많은 권고안이 작성됐다. 영국의 NHS도 보고서를 인준했다.

그러나 영국의사의 대표 노조(trade union)인 영국의사회(BMA)는 보고서 인준과 협상 과정에서 공식 탈퇴함으로써 정부와의 합의에 실패했다.
 
영국 보건부장관 주 7일 의료체제 주장 vs 젊은 의사들 응급의료 철수로 맞서
 
보건부 장관은 진정한 의료에 대해 주 7일간 제공돼야 하며 영국에서 약 1만1000여명 이상의 과다 사망자가 발생하는 주된 이유가 주말에 병원 직원을 제대로 배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근거가 불분명한 주장만을 반복했다. 이에 대해 영국 정부 측과 대척점에 서 있던 영국 의료계는 토론을 통해 관련 데이터 오류 등을 내세워 격렬한 논쟁으로 맞붙었다.
 
젊은 의사회와 의료계는 적극적인 소셜 미디어(SNS) 캠페인과 홍보에 나섰고, 이와 함께 젊은 의사들을 주축으로 한 시위로 실력행사에 나섰다. 젊은 의사회는 지속되는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로 결국 2016년 1월 12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는 40년 만에 처음 실시된 의사집단의 노동쟁의로 기록됐다. 이어 2월 10일 다시 파업에 나섰다. 급기야 2016년 4월 26일 젊은 의사회는 응급진료도 거부하는 심각한 사태로 번지게 됐다. 젊은 의사회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전문의들이 대신 근무를 자원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에 젊은 의사회는 ‘응급의료 철수’라는 사상 초유의 초강수를 두는 조치를 취하게 됐다.
 
젊은 의사회는 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했는데, 놀랍게도 전체 98%의 젊은 의사들이 파업에 동의했고 이에 보건부장관은 재협상에 나서겠다고 했으며, 결국 젊은 의사회에 기본급 13% 인상을 약속했다. 파업과정에서 영국 보건부장관의 악명 높은 강압적인 정부안의 밀어붙이겠다는 연설은 의료계를 하나로 더욱 단결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2016년 4월 전문의학회는 정부와 젊은 의사회에 협상을 계속하기를 종용했고 2016년 5월에 놀랍게도 정부와 젊은 의사회가 합의를 이루게 했다. 영국의사회는 만족감을 표시했으나 젊은 의사회는 새로운 협상안에 확신을 보여주지 않았고 추가 투표에 의해 계약거부를 결정했다. 결국 젊은 의사회는 5차례의 파업을 단행했고 최장 2일간 지속되기도 했다.

보건부 장관과 젊은 의사회 의장도 이에 책임지고 각각 사임했다. 영국 자체도 유럽연합 탈퇴로 인한 데이비스 캐머런 수상의 사임과 함께 사회 전체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2016년 9월 영국의사회 전체는 12일간의 사전 통고로 5일간의 전면파업을 선언했고, 이 파업은 이후 매달 5일간씩 진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젊은 의사회는 오히려 너무나도 짧은 기간의 사전 통보로 파업에 충분히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음을 이유로 파업철회를 요구했고 결국 영국의사회 파업은 철회됐다.

英醫, 40년 만에 쟁의 돌입 ‘no pain, no gain’ 교훈 새겨 기본급 인상 약속 받아내
 
영국의 의사 파업을 살펴보면, NHS는 젊은 의사의 급여가 괜찮다는 이유로 주말진료에 대한 적절한 임금의 인상 없이 주말근무 확대를 관철시키려고 했던 ‘어쭙잖은 시도’가 계약협상의 실패를 불러온 가장 큰 패착이었다. 이러한 의사와 국가 간의 계약에 관한 사건은 의사들의 사기저하와 심리적 손상에 대단한 영향을 줬고 상처극복을 위해서는 오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됐다.

젊은 의사의 사기가 저하된 현상은 결국 의료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것이며 의료성과가 나쁘게 나올 것이라고 연쇄적인 우울한 전망이 대두됐다.
 
영국정부는 강압적인 조치를 통해 주말진료를 확대하려 하였고 젊은 의사회의 요구를 반복적으로 묵살했다. 그리고 정부방침에 저항하는 젊은 의사들을 의료변화에 대한 걸림돌로 폄훼하는 것에 젊은 의사들은 더욱 더 분개했다.

미래의 의사들을 제외한 협상이나 이들의 역량과 역할을 무시한 처사는 결국 젊은 의사들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세우게 한 것이다. 앞으로 많은 영국의사들이 해외로 빠져 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주중 진료와 같은 주말 진료를 확장할 계획이었다면 적절한 인력고용과 합당한 예산을 마련한 다음 합리적인 절차를 밟아 추진했어야 했다.
 
우리나라라면 과연 이 같은 일이 가능이나 하겠는가. 우선 영국의사회는 자신들이 의사노조에 해당하는 Trade Union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의사협회는 법정단체로써 명확히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2000년 의약분업 투쟁이후 공정거래법, 의료법, 업무개시명령과 같은 정부의 긴급조치 등으로 실상 우리나라에서 파업은 곧 형사범죄자로 몰릴 공산이 매우 크다. 구속수사, 세무조사 등 한국식 사회정의와 민주주의가 작동할 것임은 두말한 나위도 없다.

이미 의료의 형사범죄화가 깊게 진행돼 의료과오라는 이름으로 의사의 인신구속은 법조계의 규범이 되어가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직시되고 있다.
 
영국의 강도 높은, 그리고 장기간 의사파업에도 불구하고 단 한사람의 인신구속은 들어본 적이 없다. 보복성 세무조사도, 정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삼각편대에 의해 샅샅이 뒤져대는 길들이기 성 현지 실사도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환자단체, 시민단체는 정부와 의사단체에 압박을 가했어도 비도덕적 집단이나 적폐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무능한 정부를 탓하고, 환자의 불편함을 극대화하는 홍보 전략을 이용했을 뿐이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처리했으면 지금쯤 영국 구치소는 젊은 의사들로 가득 차 증축을 해도 모자랄 판이 됐을 것이다.
 
힘없는 약한 자들에게 ‘갑질’하지 말라고 으름장 놓는 우리의 정의로운 정부는 이미 자신들이 서슬 퍼런 천하무적의 갑질에는 내로남불 식 불감증이 이미 적정 수위를 넘은 듯하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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