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8.03.21 05:00최종 업데이트 18.03.2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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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망한다. 의사인 내게 금지된 것을

[칼럼] 김효상 재활의학과 전문의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소망한다. 내가 환자를 진료하고 처치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메디게이트뉴스 김효상 칼럼니스트] 대부분의 의사들이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임상현장에서 당황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삭감이라는 처방제한의 굴레다.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는 전혀 들어있지 않은 항목이기도 하고 매우 낯설다. 하지만 내가 환자를 위해 처방하는 약제, 치료재료, 진단명 등 거의 대부분의 것이 심평원의 규제와 감시 아래 들어있는 것이 현실이다.

삭감은 의사가 환자를 위해 지출한 비용 항목을 국가에 청구해도 본인들 입맛에 맞지 않으면 비용을 주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의사들은 환자에게 필요한 약을 쓰고 싶어도 이것이 심평원에서 정한 기준에 맞는 약제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상처 소독을 할 때 쓰는 멸균용 장갑도 심평원 기준으로는 인정이 아예 안되어 더 써야 할 경우는 병원 몰래(?) 꺼내곤 한다.
 
나름대로 규정에 맞춰서 약을 처방하고 환자를 보냈는데, 착오 청구가 됐다고 약제비를 5배 환수한다는 통지가 날아오면 황당하다. 약은 환자가 먹은 것이고 약값은 내가 받은 것이 아니라 약국이 받은 것인데 이상하게 약값에 대한 5배 벌금은 의사가 내야한다.
 
이익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비슷한 논리가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다. 의료기관이 망하지 않으려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를 하기 보다는 심평원을 포함한 국가기관의 칼날을 피하기 위한 최적의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환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 환자들은 심평원 기준에 맞지 않아서 약을 줄 수 없다고 하면 의사들을 원망한다. 당장 약을 안주고 치료재료를 쓰지 않는 눈앞의 의사들이 원망스럽지, 아무리 국가기관의 규제라고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국가의 규제로 인해 의사들이 환자들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인식되게 만들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생각보다 아주 쉽다. 약을 처방할 때 진료 프로그램에 심평원 기준에 안 맞으면 처방 자체가 되지 않도록 공지사항을 띄우면 된다. 이것은 심평원 기준에 맞지 않아서 처방이 불가하니 의의사항이 있으면 심평원 담당자나 건강보험 당담자 전화번호가 뜨도록 하면 된다.
 
그리고 나서 이를 환자에게 보여주고 환자가 직접 연락하라고 하면 된다. 기술적으로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타의료기관에서 중복 처방된 내역이 있으면 바로 전산에 경고 메시지가 나오는 것(DUR)처럼 말이다. 지속적으로 국민 불편을 호소한다면 정치권에서도 충분히 나설 일이다. 

국가의 건강보험 재정은 제한돼 있고 환자나 의사를 포함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이 때문에 적절한 수순의 통제와 규제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규제를 위한 집단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고 의료 분야에 대한 간섭과 통제가 도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민간분야에 대한 국가기관의 규제와 통제가 늘어야 그것을 위한 국가기관의 인력, 사옥, 영향력 등이 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해당 국가기관은 통제를 줄일 생각이 전혀 없게 되는 악순환(?) 또는 선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삭감 많이 하면 성과급' 심평원 올해도 지속 이라는 기사와 '심평원에 이어 건보공단도..결국 본부 2청사 짓는다'는 기사를 참조하면 이해가 될 듯하다.
 
심평원의 심사라는 전가의 보도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것도 많다. '심평원, 5년간 10만건 착오 삭감' 보도를 보면 2011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10만건이라고 하는데 국가기관에서 민간 기관들을 규제하는데 한 두건의 오류도 아니고 10만건이라면 어마어마한 수치가 아닌가. 과연 심평원의 존재이유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언제쯤 나는 내게 금지된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와 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을까. 
 
나는 소망한다. 내 환자들이 나를 찾아와 하는 이야기들을 내가 듣고 판단할 충분한 시간이 있기를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로 엄청난 경제 성장과 사회 각 분야의 발전을 이뤘다. 특히 그 중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와 뛰어난 의료 접근성은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의사들은 본인들의 의지든 아니든 국가가 주도하는 건강보험 제도 안에서 수긍하거나 또는 반발하며 긴 시간을 보내왔다.
 
나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한국의 의료제도에서 환자들이 가장 불만을 가지는 것 중의 하나가 30분 대기, 3분 진료다. 사실 어떤 곳은 3분이 아니라 10초 진료일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은 많은 환자를 빨리 봐야하는 '박리다매' 구조로 짜여있기 때문이다.
 
환자들 입장에서는 매달 국가에 내는 건강보험료가 부담된다는 목소리도 많다. 이상하게 병원에 가면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항목이 많아 의료보험료를 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바쁜 시간을 내서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갔는데, 수많은 대기 환자들 사이에서 예약된 시간이 지나도 만날 수 없는 의사들에게 좋은 마음이 들 리가 없다.
 
기껏 기다렸다가 진료실에 들어가도 의사들은 환자 얼굴보다는 모니터만 보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기다린 시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의 진료시간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다. 환자들은 이러려고 병원에 왔나하는 자괴감이 들면서 분노가 생기기도 한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이렇다. 나를 찾아온 아픈 환자들을 자세히 진료하고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하지만 보통 병원 외래에서 4시간이나 5시간의 진료 타임에 적게는 40에서 50명의 환자들을 보곤 한다. 4시간 동안 40명을 진료한다면 240분 동안 한명에 6분 꼴이고, 들어오는 시간과 나가는 시간을 뺀다면 한 환자 당 3~4분이 소요된다. 3분 진료가 거의 맞는 셈이다. 물론 환자를 더 많이 보는 곳은 진료시간이 더 짧아진다.
 
환자를 처음 보는 경우 의료진 입장에서는 할 일이 더욱 많아진다. 증상뿐 아니라 약 부작용이나 알러지는 없는지, 다른 병은 없는지 물어야 하고 여러 검사도 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상세히 물어보며 동시에 컴퓨터에 기록해야 한다. 의무기록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환자 진료나 치료에 장애가 된다. 게다가 시간이 없다고 나중에 기록하면 법적으로도 문제를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의사들은 환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모니터에서 눈을 주시한 채 의사들이 꼭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한 것 위주로 물어보다가 시간이 경과된다. 그리고 지금 내 앞의 환자분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해결과정을 함께 고민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경과할수록 바깥의 환자분들은 빨리 진료를 안 봐준다는 웅성거림과 소란은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빨리 현재의 진료를 끝내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환자 당 진료시간을 늘리려면 지금처럼 환자들이 원할 때 진료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진료 예약이나 수술 대기시간이 지금보다는 훨씬 길어질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국가가 나서서 국민들을 설득하고 진행해야할 문제다. 환자들이 지금까지 누리던 것을 못 누린다면 누가 찬성할까 싶기도 하고, 국민들의 표를 의식할 정부가 나설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언제쯤 나는 나를 찾아온 환자의 가슴속 맺힌 이야기들을 충분히 들어주며 그들의 응어리진 삶까지 같이 어루만져줄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소망한다. 정부가 의료인을 대하는 비난과 불신의 고리가 깨지도록
 
최근 보건복지부가 광고를 통해 선택 진료비를 의료비 폭탄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환자들이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선택 진료비를 부담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선택진료비를 완전히 폐지했다고 밝혔다. 복지부의 광고는 의료인이 돈을 벌기 위해 선택 진료비를 받아서 국민 의료비를 가중시켰다는 오해를 만들 수 있다.
 
선택진료비는 이전에는 특진비로 불렸으며 1967년 공공의료기관인 국립의료원(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처음 도입됐다고 한다. 이 제도의 도입 배경에는 원가보전율에 미치지 못하는 저수가와 의료진의 저임금 보전에 있었다.
 
선택진료비의 도입 배경 자체가 정부의 낮은 의료 수가에 대한 보상책으로 이뤄졌다. 의료기관이 부당한 이득을 취하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폐지하는 공로를 세웠다고 생색을 내는 것으로 보여 씁쓸하다.
 
또한 대학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 진료비용에 부담감을 갖던 환자들이 선택진료비 폐지 이후로 일반 동네의원 진료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유명한 교수님들과 명의(?)의 진료를 보기 위해 큰 병원들의 외래가 넘쳐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이런 결과를 예상 못한 것인가. 아니면 이걸 바란 것인가. 
 
이와 유사한 사례로 얼마 전 심평원에서는 의료기관의 과잉진료비를 심평원에서 확인하라면서 대대적인 광고를 진행한 적이 있다. 심평원의 광고는 의료기관이 과잉 진료를 많이 하니, 심평원에 확인해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기관들은 의료인을 상대로 배려 없는 태도가 광고 속에 묻어나온다. 미디어를 통해서 의료인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조장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과연 긍정적적일지 의문이 든다. 정책 입안자들이 의료인을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일단 해보고 고치자식의 '밀어붙이기'가 얼마나 불합리한지 깨닫기를 바란다.
 
언제쯤 올까. 국가가 의료인들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고 진행하는 의료정책을 허심탄회하게 같이 논의 할 수 있는 그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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