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6.09.19 05:59최종 업데이트 16.09.19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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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진료실에서

상위 10% 원장들이 진료량을 줄인다면…

[칼럼]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이용민 소장

두메산골에서 나고 자라서 유난히 고향에 대한 추억이 많은 우리 초등, 중등 동창들은 만나면 마냥 즐겁다.
 
나이가 들어가니 그렇겠지만 40대 중반부터 동창회가 부쩍 활발해 지는 것을 느꼈는데 언젠가부터 주말 1박 2일 동창모임도 많아지고, 50대를 넘어가니 일주일 일정의 단체 해외여행도 자주 간다.
 
하지만 토요일 오후까지 병원을 운영하는 나는 단 한 번도 그 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간혹 있는 토요일 저녁 동창모임도 의사회 일정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경조사가 있을 때나 한번 씩 동창들 얼굴을 보는 실정이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도 그 친구들이 누리고 있는 매주 이틀간의 자유시간이 부럽다.
 
가끔 의사들이 다른 직군에 비해 평균 수명이 짧다는 통계를 접할 때마다 의사들도 삶의 질을 좀 높여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환자 숫자도 좀 줄여야 하지 않나?
 
물론 환자가 별로 없는 분들은 열심히 환자 보셔야 하겠지만 이 말은 그냥 중간 정도 이상 가는 원장님들에게 드리는 말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어느 직역에나 있지만 의료계도 예외가 아니다.
 
2015년 통계를 보면 개원가의 최상위 10%가 전체 건강보험 청구액의 약 35%를 점하고 있고, 상위 40%가 진료비의 약 75%를 가져가고 있다.
 
단순 수치상으로만 보면 하위 60%가 나머지 25%의 보험급여를 나누어 갖는 형편이다.
 
물론 비급여를 주로 하는 병원들은 보험청구액이 미미하므로 이를 감안해 보아야하나 보험환자를 주로 보는 병원들 간 소득 격차는 해마다 벌어지고, 현행 극 저수가 구조 속에서 박리다매 진료마저도 불가능한 대부분의 일차 보험진료과 의사들은 삶의 질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일본 동네의원의 진료시간 안내판.

그럼 어떻게 접근해야 적정수가도 보장 받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타파 할 수 있을까?
 
원가 이하의 수가를 파격적으로 인상해 원가를 보전해 주는 것이야 말로 비정상적인 박리다매 진료를 개선할 수 있는 시작임은 분명하나 단순 수가인상만으로 부익부 빈익빈 구조를 개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수가 인상과 더불어 진료의 질 향상과 총 진료량의 감소, 즉 내원 횟수나 입원 일수의 하향변동 등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리라는 기대가 없는 한 당국이 앞장서서 국민부담에 따른 저항을 감수하며 수가 인상 및 원가 보전 작업에 적극 나서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상상컨대 진료 관련 재량권 보장이라는 원칙 하에서 만약 청구액 기준 상위 10% 원장님들이 자발적으로 수가 인상분 만큼의 진료량을 줄이려 노력한다면 총 진료량의 상위 35% 부분의 증가폭이 전체 평균보다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진료량 감소효과가 증명된다면 추가적인 수가인상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상위 40% 이상의 선생님들이 동참해 수가인상분 반만큼 만이라도 총 진료량을 줄여준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만약 당국이 원가보전 차원에서 대폭적으로 수가를 인상하고, 이에 화답해 개원의들 모두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진료원칙에 충실하며 총 진료량 줄이기에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전체적으로 의사 삶의 질을 높이고, 그동안 저수가와 진료량 부족의 이중고를 겪은 원장님들과 새로 개원시장에 진입하려는 후배 선생님들의 숨통이 조금이라도 트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또한 당국이 예측하는 수가 인상만 되고 총 진료량이 줄지 않는 우려도 어느 정도 불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현실화 되려면 우선 상위 10%, 나아가 상위 40% 선생님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제 의료계에서 이런 논의를 시작해 합의를 이루어 내는 과정이 필요할 때라 생각한다.

이미 폐기처분 된 차등수가제나 할증제 등의 방법을 굳이 차용하지 않더라도 합당한 자율적 수단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적정수가, 적정진료도 가능케 되고 의사들 삶의 질도 높여 환자와 의사 모두 민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게 되면 어떨까?

나날이 악화되는 저수가, 박리다매, 일차의료 신뢰도 저하, 필수 진료과 몰락, 의료기관 간의 부익부 빈익빈 문제 등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끝으로 윗글은 한국 의료현실에 염증을 느껴 일본으로 건너가 제2의 의사 인생에 도전한 모 선생님께서 보내온 일본 동네의원 원장들의 진료시간 안내판 사진들을 보며 느끼는 부러움과 남들 다 쉬는 추석연휴 샌드위치 토요일에 진료실을 지키는 서글픈 마음에서 쓴 푸념어린 글이라 이해하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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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가 #일차의료 #이용민 #의료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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