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2월 28일은 대우건설이 새롭게 힘차게 출발하는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건설업계 초일류 리더 기업으로 키우겠다."
이 자신감 넘치는 메시지는 대우건설 인수를 마무리한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이 2일 임직원에게 전달한 것이다. 정 회장은 "통제와 견제가 아닌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독립·책임 경영을 구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이 직접 독립·책임경영을 설명하는 이유는 인수 이후 양사 간 화학적 결합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새로운 대우건설의 도약을 위해 역량을 결집하고 조직을 안정화시켜 세계 경영을 꿈꾸던 대우의 옛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단 정 회장의 목표는 글로벌 건설사로의 도약이다. 그러나 적잖은 과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우건설 인수까지는 무난하게 이뤄냈지만 인수 후 화학적 결합, 위상에 걸맞는 윤리경영 등은 외형 성장에 치우쳐온 중흥그룹에 새 도전 과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흥은 업계에서 초고속 성장으로 주목을 끌었지만 역설적으로 급격한 성장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를 동시에 받아왔다. 업계 관계자는 "중흥의 고속 성장 이면에는 벌떼입찰이나 부실시공 등 부정적인 꼬리표가 함께 따라붙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벌떼입찰이란 회사 당 입찰 기회 제한돼 있는 걸 회피하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여러개 만들어 당첨 확률을 높이는 편법이다. 실제 세종시 택지 분양 과정의 벌떼입찰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부실시공 논란도 부정하기 어렵다. 중흥건설이 ‘명품 주택단지’를 만들겠다며 순천시 신대지구에 공급한 아파트에서는 2017년까지 무려 18만건의 부실신고가 접수됐다. 2019년 부산 명지국제신도시, 청주 방서지구의 누수와 벽면 기울어짐 등 부실시공도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수많은 계열사와 복잡한 지배구조를 투명·간소화하는 것도 숙제다. 2020년12월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중흥그룹의 내부거래 규제 대상 기업이 늘게 됐다. 수십개에 달하는 계열사, 실타래처럼 얽힌 지배구조는 향후 승계작업은 물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러한 지적을 인식한듯 정 회장은 이날 메시지에서 "ESG 경영 체계도 점진적으로 구축해 나감으로써 리더 기업의 위상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중흥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한다고 했을 때 "새우가 고래를 삼킨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중흥 측은 "고래가 고래를 삼킨 것"이라 반박했다. 자신감의 원천에는 정 회장의 경영철학이 있다. 광주시 북구 신안동 중흥그룹 본사에 있는 그의 책상 위에는 3년치 현금흐름표가 놓여있다. 36개월간의 자금 계획을 미리 짜고 3개월마다 점검하기 위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의 ‘3불(不) 원칙’ 두루 알려져있다. ‘비(非)업무용 자산 불매’, ‘보증 되도록 서지 않기’, ‘적자 예상 프로젝트 수주하지 않기’다. 다소 보수적인 경영전략이 아니냐는 평가가 있지만, 오늘의 중흥그룹을 만든 것은 이러한 자금 관리 덕분이라는게 정 회장의 생각이다.
중흥 성장의 또다른 핵심 키워드는 정 회장의 ‘위기경영’ 방식이다. 2007년 세종시 공동주택용지 분양이 시작됐을 때 내로라하는 대형 건설업체들이 공동주택용지를 분양받았다. 그러나 행정 차질과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 겹치면서 세종시 개발에 한파가 들이닥쳤다. 대기업들은 사업성이 낮다며 분양받은 땅을 내놨다. 반면 중흥그룹은 계열사들을 총 동원해 땅 확보에 나섰다. 정 회장은 세종시가 경기도 과천처럼 될 것이라 보고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광주 지역기업에 머물던 중흥이 전국구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계기다.
건설현장에서 정 회장이 처음으로 맡은 일은 ‘미장보조견습’이었다고 한다. 1962년 정 회장이 19살 때다. 이 회사는 39년 후 굴지의 건설기업 대우건설을 인수한 회사로 성장했다. 정 회장의 ‘글로벌 건설기업’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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