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세종=손선희 기자, 문제원 기자] 정부가 14조원 규모로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국회가 최대 54조원까지 늘리자고 요구하는 가운데 경제전문가들의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높은 국가채무비율은 국채 급등으로 시중 대출금리를 끌어올려 서민 부채 위험을 가중시키고 국가신용등급 저하까지 초래하는 등 경제 쓰나미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치권 요구대로 추경 규모를 확대할 경우 국가신용등급 평가 저하 우려와 함께 국가 재정성 문제와 금리 인상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 부분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국가채무비율 D2 기준으로 60% 육박=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10일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정부 국가채무비율은 현재 D1(중앙+지방정부 부채) 기준이지만 국제비교에 쓰이는 일반 정부부채(D2)로 따지면 6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 정도면 위기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36%였는데 14조원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50.1%로 역대 최고에 달할 전망이다.
정치권 요구대로 40조원 증액에 나서 이를 전액 국채 발행으로 충당한다면 국가채무비율은 52%까지 치솟는다. 김 교수는 "기축통화를 갖지 않는 남미국가의 경우 부채비율 40~50%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면서 "유로존에서도 부채비율 60% 이상이면 위험신호로 간주한다"고 지적했다.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우리나라 정부부채에 공기업 부채는 포함이 안 돼 있는데 지하철공사 등 상당수 공기업들이 현재 적자"라면서 "(정부부채에)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고, 앞으로 인구구조 변화도 고려하면 우리가 아는 것보다 재정상황은 더 심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한국이 주요국 대비 재정지출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과도한 우려란 지적도 나온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서 한국이 주요국 대비 재정지출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필요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현재 국가 부채수준에 대한 우려가 과도한 측면이 있는데 고령화 사회 진입 등 사회구조적인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응해 나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경 증액, 국가 신인도 낮추나=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추경 편성으로 국가채무가 급속도로 불어나면 외화보유액이 감소하면서 국가 신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제 3대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달 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했지만 "한국 국가채무는 신용등급 압박 요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에 나섰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가신용등급 평가에 대해 "곧 있으면 무디스·피치와 같은 신평사와 상반기 협의를 해야 하는데 우려된다"고 언급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추경 증액에 대한 우려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8일 3년9개월 만에 연 2.3%를 넘어섰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40조원을 10년물로 충당하면 매년 1조원 이상의 재정 이자지출이 생긴다"면서 "그동안 국가 부채가 덜 문제시 됐던 건 국채발행에 대한 금리가 낮아 이자비용 부담이 크지 않았기 때문인데 앞으로는 이자비용 증가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채 물량이 풀리면 시중 대출금리가 올라 서민 부채 위험을 가중시키는 등 쓰나미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 교수는 "국채 급등은 결국 가계 부채에 영향을 줘 금융약자와 경제적 약자의 어려움이 커진다"고 우려했다. 40조원 유동성이 시중에 풀리면 물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김 교수는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의 경우 물가-임금 악순환으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면서 "한국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치솟는 물가에 금리인상 압박=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40조원은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액수"라며 "위드코로나가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오히려 돈 푸는 것을 줄이고 원래(코로나 이전) 상황대로 가야 한다고"고 말했다.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추경 이후 돈을 쓰는 것도 문제"라며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입은 음식점, 스포츠, 여가, 예술 등 어려운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잘 투입돼야 하지만 어떻게 쓸건지 정확한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추경을 허용하면 눈먼 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가가 많이 오른 상태에서 경기가 회복되면 사람들이 그동안 미뤘던 돈을 쓰기 시작할 텐데 추경의 본래 목적에도 도움이 안될뿐더러 금리인상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설명이다.
경제학계에서도 추경에 따른 국가부채 증가를 두고 우려가 쏟아진다. 한국국제경제학회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함준호 연세대 교수는 11일 열리는 ‘2022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발표문에서 "한국의 매크로(민간·정부) 레버리지 수준은 최근 GDP 대비 254%까지 확대됐다"며 "가계·기업 부채가 이미 과다 부채 임계치를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정부 부채도 빠르게 늘고 있어 선제적 관리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민간부채의 부실화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의 경직적인 지출 확대가 구조적 재정적자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 함 교수 분석이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세종=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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