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기하영 기자]여당과 정부가 23일 내놓은 카드수수료 개편 방안에 따라 자영업자들은 4700억원의 수수료 경감 혜택을 받게 됐다. 전체 카드 가맹점의 약 75%를 차지하는 연 매출 3억원 이하 영세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0.8%에서 0.5%로 대폭 인하하는 것이 핵심이다. 명분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2007년부터 14년 간 14번 인하로 사실상 실질 카드수수료가 0인 상황에서 이번 조치로 자영업자들이 얻는 실익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결국 대통령선거라는 이벤트를 앞두고 지역 표심을 좌지우지 하는 자영업자들을 의식해 코로나19 피해 책임까지 카드사에게 떠넘긴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고사 위기에 직면한 카드업계는 '이러다 망할 판'이라며 단체 행동 불사 등 강력 반발을 예고하고 있어 첨예한 갈등이 예상된다.

수수료 경감금액 4700억원…14년 간 14번째 인하당정에 따르면 이번 수수료율 조정으로 연 매출 3억원 이하 영세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0.5%로 0.3%포인트 내려간다. 연 매출 3억~5억원의 경우 수수료를 1.3%에서 1.1%로, 5억~10억원은 1.4%에서 1.25%로 인하된다.
10억~30억원 1.6%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했다. 이로써 전체 카드 가맹점의 약 96%에 대해 카드 수수료율이 인하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실질 경감금액은 4700억원이다.
카드 수수료는 2012년 개정된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3년마다 이뤄지고 있다. 수수료율은 카드사의 자금조달비용, 위험관리비용, 일반관리비용, 밴 수수료, 마케팅 비용 등 원가 분석을 기초로 산정된 '적격비용'을 검토해 정해진다. 새로 산정한 적격비용을 기반으로 인하여력을 산정해 내년부터 변경된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이 적용되는 구조다. 적격비용 제도 도입으로 이전보다 가맹점 수수료 부담이 연간 2조4000여억원 줄어든 상황이다.
하지만 지속된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카드사들은 본업인 가맹점 수수료 부문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여신금융협회는 지난 2년(2019~2020년) 간 카드업계의 가맹점수수료 부문 영업이익이 1317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추정했다. 앞서 2013~2015년 5000억원에서 2016~2018년 245억원으로 급감한 데 이어 적자라는 얘기다. 특히 2018년 우대가맹점 적용 범위를 5억원 이하에서 30억원 이하로 늘리면서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 96%의 가맹점에서 매출이 발생할수록 적자가 누적돼 실제 적자 폭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자영업자도 실익 미미…선거도구로 악용코로나19 등으로 생계의 위협을 받는 영세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지만 영세자영업자가 얻는 실익도 작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연매출 10억원 이하 가맹점은 세제 혜택까지 고려하면 수수료율이 0%이기 때문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미 카드 수수료율은 충분히 인하된 상황인데 여기서 더 인하하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매출액 3억원 이하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 수수료율이 0.5% 밖에 되지 않고, 부가세 환급금 등을 고려하면 마이너스 수수료율에 근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카드수수료 인하가 소상공인의 비용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가맹점수수료 인하에 따른 적자는 카드사뿐 아니라 후방산업인 밴사 등에도 전가되고, 밴사들도 수익을 지키기 위해 그간 소상공인에게 무료로 제공하던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카드사들도 비용절감을 위한 희망퇴직 등 인력감축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지난달 KB국민카드가 희망퇴직을 단행했고 롯데카드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희망퇴직을 시행한다. 내년 시장 상황 악화를 대비한 조치다. 우리카드는 희망퇴직 문제에 대해 현재 노조와 협의 중인 상태다.
이미 카드사들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인력감축, 투자 중단 등을 통해 비용을 줄여왔다. 이에 따라 10만명에 육박하던 카드모집인은 8000명으로 급감하고 영업점의 40%가 축소됐다. 내년부터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조달금리가 올라 비용부담이 커지고, 금융당국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카드론을 포함하기로 하면서 그간 가맹점수수료 적자를 만회해오던 대출 수익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희망퇴직을 비롯한 인력감축이 확대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지불결제 부문은 우대가맹점 적용대상이 대폭 확대된 상태로 더이상 이익이 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 분들의 어려움을 고려해 수수료율를 지속적으로 인하한 상황에서 이번 수수료 추가 인하 결정은 효용보다는 카드업계의 부담만 가중된다"며 "향후 조달금리 상승, 가계부채 규제로 인한 대출 수익 감소, 대손 증가 등을 감안하면 이익의 지속 가능성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드 수수료 추가인하 시 결제망 셧다운까지 고려하겠다던 카드사 노동조합협의회의 투쟁 강도도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종우 카드사노조협의회 의장은 "시장경제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돼야 하는 카드수수료가 선거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수수료 인하 결과에 따라 결제망 셧다운까지 고려한 대응을 하겠다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라고 강력 투쟁을 예고했다.
기하영 기자 hyki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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