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비료가격 인상 현실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음달 예정된 비료 계통계약에서 인상률이 대폭 상향 조정될 경우 내년 농사에도 비상이 걸릴 전망이다. 가뜩이나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농식품이 또다시 물가를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비료 제조 업체들과 농업계 등에 따르면 내년부터 비료가격 인상분이 수시로 반영될 가능성이 커졌다. 농협중앙회가 연간 진행하던 비료구매계약을 다음달부터 분기별로 진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연초에 농협중앙회가 남해화학 등 국내 비료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가격 인상 폭을 최대한 줄여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지만 현실은 다른 것이다. 원재료 가격이 2배 이상 오른 점을 감안하면 비료 업체들의 원가압력 부담도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해화학 관계자는 내년 비료가격 인상 여부와 관련해 "입찰 협상을 해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라며 "지금으로선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계절적으로 11월과 12월은 농한기지만 일부 농가에 비룟값 상승은 현실적인 문제다. 당장 11~12월 월동(겨울철) 작물 중 양파, 유채, 보리 등 파종 작업을, 내년 1~2월엔 감자와 채소류 등 봄 작물 파종 작업에 각각 들어가야 한다. 비료를 구하려고 해도 가격이 맞지 않아 시중에서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최근 제주, 경남, 전남 등에 1810t의 요소를 추가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단위농협 본점과 비료업체 대리점 관계자 등은 아직도 비료 재고가 내려오지 않고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경상남도의 한 단위농협 본점 자재부 관계자는 "정부 발표로 비료를 사러 오는 농민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우리는 농협중앙회로부터 며칠까지 몇t을 제공 받을 거라는 공문 한 장 받은 바 없어 당혹스럽다"고 털어놨다.
특히 쌀, 채소 등 대부분 농작물 생산량과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비료 품귀 현상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전농 제주도연맹 관계자는 "단비(단일비료)뿐 아니라 복합비료에도 요소 성분이 들어가는데, 이 요소가 품귀 현상을 일으키다 보니 실질적으로 당장의 감귤 농사는 물론 내년 봄 작물 파종 작업에 쓸 비료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정부, 비료가격 지원 주저

정부는 비료 업체의 가격 조정에는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화학비료의 경우 지원하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정부는 2008년 비료가격이 치솟자 농가부담 경감을 위해 한시적으로 추가부담액의 약 30%를 추경예산을 편성해 긴급 지원한 사례가 있다. 이 때문에 국회와 농민단체들은 이런 전례를 근거로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분기별 계약에 대해서도 정부는 미온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계통계약은 농협중앙회와 제조 업체 간에 자율적으로 맺는 체계라 정부가 개입하기 어렵고, (정부가) 화학 비료 지원을 늘릴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통상 조항 위반 시비 등에 걸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식량가격지수 2011년 7월 이후 최고

비료가격 상승은 내년부터 농식품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세계의 농식품 가격은 크게 치솟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33.2포인트(2014~2016년 평균값을 100으로 가정)로 전달 대비 3.0%, 전년 대비 31.3% 상승했다. 2011년 7월 133.2 이후 최고치다. 1월 113.5, 요소 대란이 본격화된 9월 129.2와 비교해도 급등세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생산자인 농민 입장에서 인건비, 토지임대료 등 못지 않게 비료, 농약 등 자재비용이 중요한 요소인데, 이런 비용이 늘면 자연스럽게 농산물 가격이 올라 물가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농산물은 식물의 성장 과정에 맞춰 제때 원료(비료)를 투입하지 않으면 품질이 낮아진다는 리스크까지 있어서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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