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김진호 기자] 대기업에 재직 중인 김범수씨(40·가명)는 지난해 말 한 시중은행에서 신용대출로 4000만원을 빌렸다. 신용등급 3등급인 김씨는 급여이체 등 우대금리를 포함해 연 3.5% 금리를 적용받았다. 최근 김씨는 직장 내 인사를 통해 과장으로 승진하며 연봉이 500만원가량 늘었다. 이에 김씨는 승진을 했으니 금리를 낮춰줄 수 있는지 은행에 물었다. 이후 금리를 0.3%포인트 감면해줄 수 있다는 답을 들은 김씨는 ‘금리인하요구권’ 덕분에 이자를 연 12만원 아낄 수 있게 됐다.
한국은행이 내년 초까지 기준금리를 두 차례 전격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대출금리가 무섭게 치솟고 있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총량 관리의 영향까지 겹치며 대출금리는 1년 새 1%포인트 이상 오른 상황이다. 치솟은 대출금리에 차주들의 근심은 깊어지고 있다. 금리 상승 등에 따른 이자 부담 확대 리스크가 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본격 금리상승기를 맞아 금융소비자의 금리 부담이 급격하게 커짐에 따라 금융당국과 전문가들은 ‘금리인하요구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대출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는 만큼 한 푼의 이자라도 아끼기 위해 소비자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설명이다.
금리인하요구권은 개인이 은행 등 금융사에 대출금리를 낮춰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가계대출을 받은 경우는 ▲취업 ▲승진 ▲소득 증가 ▲신용등급 개선 ▲전문자격증(의사·회계사 등) 취득 ▲부채 감소 ▲재산 증가 등 요건에 해당하면 금리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
금리인하요구권은 해당 금융사 영업점이나 인터넷·모바일뱅킹 등을 통해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차주가 금리인하 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증빙자료를 제출하면 금융사가 재평가한 뒤 접수일로부터 10영업일 이내에 이메일·문자메시지·전화 등을 통해 결과를 통지하게 된다.
심사 결과 대출자의 신용점수가 대폭 상승했거나 취업이나 승진같이 조건을 충족했다고 인정되면 금융사는 금리인하를 안내하게 된다. 차주는 인하된 조건을 보고 약정을 체결하면 된다.
지난 2002년부터 자율적으로 시행돼오던 금리인하요구권은 지난 2019년 법제화 이후 본격 활성화되고 있다. 대출계약 이후 소비자의 신용 상태가 좋아지는 등 상황에 변화가 생겼는데도 기존 계약 신용상태를 기준으로 산정한 대출금리가 적절하지 않다는 인식하에 제도화된 것이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은행권 금리인하요구권 실적 자료’에 따르면 2016~2020년 19개 은행에서 금리인하를 요구해 대출 금리를 낮춘 고객 수는 총 75만9701명에 달했다. 연도별로는 2016년 11만5629명, 2017년 9만5903명, 2018년 11만5233명, 2019년 20만7455명, 2020년 22만5481명이다. 올해 상반기 8만5720명을 합치면 5년 반 동안 총 84만5421명이다. 연도별 고객의 금리인하요구권 접수 건수도 2016년 11만9361건, 2017년 16만1674건, 2018년 28만5127건, 2019년 54만9609건, 2020년 71만4141건으로 5년간 498.3%나 증가했다.
금리인하요구권은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금융소비자 부담 완화 차원에서 이를 본격 논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금리인하요구권 안내 시 불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불수용 사유에 대한 설명을 보완하는 한편,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설 방침이다. 수용률을 대폭 높이는 방안도 조만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법제화되지 않은 상호금융업에 대해서도 금리인하요구권 행정지도 존속 기한이 내년 연말까지 연장된다. 상호금융은 농협, 수협, 축협 등 단위 조합을 지칭한다.
금감원은 상호금융에 대한 행정지도 연장을 통해 금리인하요구권의 내용 및 이용 절차 등을 홈페이지, 영업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통해 안내하도록 했다. 상호금융의 경우 대출 고객의 신용 상태가 개선되면 신청 횟수, 신청 시점 등과 관계없이 금리인하요구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김진호 기자 rpl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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