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9.10 06:26최종 업데이트 19.09.10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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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주80시간 근무 끝나면 강제로 EMR 접속 차단, 다른 전공의 아이디 빌려 환자 처방 어쩌나"

전공의 범법자 만드는 수련병원의 'EMR 셧다운제' 꼼수 "보건소·복지부 나서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A병원 전공의는 주 80시간 근무를 준수하기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강제로 전공의의 전자의무기록(EMR) 접속을 차단하는 'EMR 셧다운제'를 경험했다. A병원 전공의는 그날 처리해야 하는 환자 처방을 다 끝내기 전에 'EMR 셧다운제'로 EMR 접속이 차단됐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당직 전공의의 아이디를 빌려 EMR에 접속해 처방을 마치고 퇴근했다.

전공의법 시행 이후 일부 수련병원은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를 준수하기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강제로 전공의의 전자의무기록(EMR) 접속을 차단하는 'EMR 셧다운제'를 도입했다. 문제는 EMR 셧다운제로 전공의들의 주 80시간 근무가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고 오히려 다른 의료인의 아이디를 이용해 처방을 하도록 내몰아 전공의들을 범법자로 내몬다는 점이다.

9일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따르면, EMR 접속 차단을 하는 수련병원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경남, 충남 등 10곳 이상이다. 대전협은 수련병원의 EMR 접속 차단에 대해 '근로시간 셧다운제 꼼수'라고 비판했다.

대한전공의협회 이승우 전 회장은 "수련병원의 전공의 EMR 접속 차단은 전공의가 법정 상한 근로시간인 80시간을 넘겨 근무한 흔적이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며 "일종의 근로시간 셧다운제 꼼수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이는 근로시간을 줄여서 전공의법 위반을 은폐하는 것이자 동시에 타인의 명의로 처방을 내는 것을 강요해 전공의들이 의료법을 위반하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대전협에 따르면, 수련병원의 EMR 셧다운제는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전공의의 정확한 수련시간 산정을 막아 초과 근무를 해도 당직비 등을 인정받지 못하게 한다. 둘째, 강제로 EMR 접속을 차단해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처방을 하도록 유도해 전공의들을 의료법 위반하게 만든다. 셋째, 전공의법에 명시된 상한 근로시간인 80시간이 유명무실해져 수련환경 개선을 어렵게 한다.

이 전 회장은 "수련병원의 EMR 셧다운제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전공의들이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제보도 할 수 없다. 수련병원은 우리가 시킨 적 없다고 발 빼면 그만이다"며 "그렇다고 EMR 접속 차단과 동시에 전공의들이 일에서 손을 뗄 수도 없다. 전공의는 환자를 봐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EMR 접속이 차단되면 다른 사람의 아이디로 처방을 해야만 하는 환경에 내몰린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전공의법이 마련됐는데 EMR 셧다운제 같은 꼼수가 계속되면 실질적인 수련환경 개선은 오히려 요원해진다"며 "수련병원의 EMR 셧다운제를 방치하면, 실제로 처방한 의료인과 처방했다고 기록된 의료인이 달라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전협은 이러한 꼼수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수련환경평가 항목, 내용, 처분 결과를 전부 공개하고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관할 보건소는 타인의 명의를 이용해 처방을 하도록 조장하는 병원을 조사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이 전 회장은 "수련병원의 EMR 셧다운제는 법을 준수하는 척 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고 실상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며 "진정한 의미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EMR을 접속을 강제로 차단할 게 아니라 초과 근무 원인을 분석해 전공의 근무 시간을 지속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또 관할 보건소는 타인의 명의를 사용하도록 조장하는 병원을 조사해 수련병원이 EMR 셧다운제로 전공의들에게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처방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전 회장은 "정부는 수련환경평가위원회 구성에 전공의 참여를 확대 개편하고 무작위 추출로 현지조사를 시행해 수련환경평가를 해야 한다. 과태료 또한 지금보다 상향 조정해야 하고 수련병원의 수련환경평가 결과를 전부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회장은 "이와 더불어 정부는 실질적으로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병원을 지원해야 한다. 전공의 1인당 환자수를 제한하고, 입원전담전문의를 확대 충원하고, 진료 외 업무는 보조인력 채용을 통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현 신임 회장은 'EMR 셧다운제' 등 EMR을 이용한 수련병원의 전공의 근무시간 조작이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지적했다.

박 회장은 "EMR을 차단하는 수련병원은 국립대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EMR을 차단하지 않는 수련병원은 의국 차원에서 당직자 ID를 공유하고 돌려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테면, 수련병원이 80시간에 대한 현황을 파악할 때 지적을 받은 특정 과들이 임시방편으로 당직자 아이디를 돌려쓰는 방식이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이는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다. 하지만 수련병원이나 보건복지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근본적인 해결책도 논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EMR을 활용한 전공의 근무시간 조작은 전공의가 과로하는 현실을 숨겨 왜곡한다. 또 전공의의 초과근무와 당직비 지급과 그에 대한 입증을 어렵게 한다"며 "EMR 조작은 보건복지부의 전공의 수련 환경 감독이 얼마나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전협은 지난 7일 제 22기 집행부 이임식과 제 23기 취임식을 개최했다. 이로써 이승우 회장이 1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박지현 신임 회장이 임기를 시작했다. 

박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빨리 가기보다는 함께 가는 것의 위대한 가치를 믿는다"며 "응급실에서부터 병리과, 진단검사의학과, 의과대학에 있는 예방의학과 전공의는 물론 과가 없어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인턴 선생님들의 목소리까지 담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정다연 기자 (dyjeong@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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