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0.07.24 05:48최종 업데이트 20.07.2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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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1984년이 2020년 대한민국 현실이 됐다

[칼럼] 배진건 이노큐어 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1984년’


[메디게이트뉴스] 어둠이 없는 고문실에서 혹독한 세뇌를 받은 조지 오웰 1984년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빅브라더’만이 유일한 구원자라고 믿게 되고 그것이 삶의 빛이라고 생각한다. 윈스턴은 자신이 ‘빅브라더’를 사랑한다는 고백이 아직도 생생하다.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어둠은 빛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들었다. ‘뉴놈’이 생겼다. ‘빅브라더’의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놓인 한 개인의 저항이 무기력하다. 소위 이태원 사건을 추적한 하나의 짧은 논문을 읽고 ‘1984년’이 다시 생각났다. 그래서 책을 사서 다시 읽었다. “현재를 장악하는 자가 과거를, 과거를 장악하는 자가 미래를 장악한다.” 코로나19는 현재 온 세상을 장악하는 형체 없는 자이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1984년’은 가공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 국민에 대한 통제와 독재를 풍자한 소설이다. 그가 쓴 '동물농장'과 더불어 국가가 개인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이다. 

정부의 감시 카메라 설치나 개인정보 사용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자주 쓰는 말인 '빅 브라더(Big Brother)'는 바로 이 소설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최고 권력자의 호칭이다. 오웰이 이 소설을 썼던 1948년에서 끝 두 수자를 살짝 미래의 1984년으로 바꾼 것이다. 

'오웰리언(Orwellian)'들은 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처럼 정부가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통제하는 전체주의 사회가 1984년에 실제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의 믿음은 코로나19 유행으로 대한민국과 중국에서 현실이 됐다.

지난 1월 11일 중국은 코로나19로 인한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태국, 일본, 한국, 미국, 프랑스 등에서 감염 확진자가 나오면서 상황은 급격히 변했다. 

수많은 중국 사람들이 내국뿐만 아니라 해외로 움직이는 춘절이 낀 묘한 타이밍이 큰 문제였다. 올해 춘절은 시작인 1월 24일 금요일부터 1월 30일 목요일까지이다. 감염이 더 확산되자 결국 중국은 1월 23일 발원지인 우한시를 봉쇄했고 25일에는 자국민의 해외 단체여행을 금지했다. 

QR코드가 중국에서 대도시 집단감염을 예방하고 의료체계 붕괴를 막은 ‘일등공신’으로 떠오르고 있다. '빅 브라더'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중국 공안은 각 사람의 핸드폰에 부착된 QR코드를 검사해 이미 춘절에 우한을 떠나 북경이나 상하이 등지에 온 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봉쇄된 우한으로 돌려보냈다.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이 있는 후베이 출신들이나 우한 사람들의 접근을 막은 강제 격리다. 좋은 말로 '거리두기'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자사의 QR코드 결제플랫폼인 ‘알리페이’와 유사한 형태로 개인별 코로나19 위험도를 QR코드 색깔로 구별해주는 ‘젠캉마(健康碼)’를 개발했다. ‘젠캉마’는 항저우 등 저장성 주요 도시는 물론 상하이, 충칭, 베이징 등 중국 전역의 주요 대도시로 급속히 확산됐다. ‘수이션마’는 ‘젠캉마’ QR코드의 상하이판이다. ‘션(申)’은 상하이를 뜻하는 별칭이다.

QR코드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용되는가? 지난 2월 24일부터 ‘수이션마’를 상하이 내 1500여곳의 공공기관 출입증으로 대체한 데 이어 수이션마 사용 대상을 모든 영역으로 확대했다. 

일례로 아파트 단지를 드나드는 택시기사나 음식배달원은 입구에서 경비원에게 자신의 휴대폰 속 ‘수이션마’를 제시해야 한다. 이렇게 중국은 QR코드로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감시받는 지구촌 최대의 집단이 됐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전문가팀을 이끌고 지난 2월 9일 중국을 방문했던 브루스 에일워드(Bruce Aylward) 박사는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중국이 취한 인상적이고 효과적인 대응 5가지 중 첫 번째를 우한시의 폐쇄(lockdown)로 들었다. 

에일워드 박사는 "우한시는 상주인구 1100만명의 거대 도시이므로, 폐쇄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러나 중국은 우한시를 폐쇄했고, 코로나19가 퍼지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폐쇄가 가능했던 것은 ‘빅 브라더’의 명령이 QR코드로 실행될 수 있는 중국 공산당 치하 현실이기 때문이다.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지난 3월 10일 코로나19 사태 후 후베이성 우한을 최초로 방문해 사실상 코로나19 사태 종식 시그널을 보냈다. 우한 봉쇄 후 거의 2달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 방문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는 어떠했을까? 지난 1월 20일 인천공항에서 춘절에 우한에서 온 1번 환자를 출입구 검색대에서 찾아냈다. 그 이후 31번 환자부터 순식간에 코로나19로 대구가 마비됐다. 사람들은 개개인의 활동을 스스로 제어하며 정부의 조치에 협력했다. 어쩌면 신천지가 대구에서 ‘블랙스완’의 역할을 너무 잘 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정부 지시를 잘 따르게 됐고 결국 코로나19의 방역 우등국이 된 셈이다. '신천지 덕분에'

콜라텍, 노래연습장, 유흥주점(클럽·룸살롱 등), 학원, 교회(성당)의 공통점이 있다. 이런 곳을 방문할 때에는 반드시 개인신상 정보가 담긴 QR코드를 찍어야 한다는 점이다. 

방문자는 먼저 휴대전화로 일회용 QR코드를 발급받아 시설 관리자에게 제시해야 하고 관리자는 QR코드를 인식하고 방문 기록을 저장해야 한다. 감염병 전파 위험이 높은 시설로 분류돼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접촉자 추적 및 역학조사 등에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수집하기 위해서다. 

학원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교회가 수준 높게 현장 예배를 인터넷으로 바꿨고 다른 모임을 중단했으나 ‘빅 브라더’의 의도대로 유흥주점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졌다. 폐쇄, 록다운은 공황을 가져왔고, 공황은 사람들 사이의 고립을 심화시켰다.

감염이 지속되면서 질병관리본부의 활약 역시 대단해지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노래 중에 ‘하운드 도그(Hound Dog)’가 있다. 바로 ‘사냥개 부대’라는 뜻이다. 코로나19를 쫓는 우리 질본의 무기는 중국처럼 ‘QR코드’라는 사냥개 한 마리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번 코로나19의 중요한 분기점이 소위 ‘이태원클럽’ 감염확산 사건이다. 올해 4월 30일부터 5월 6일까지 이태원내 5개 클럽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 추적에 대한 보고서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발간하는 감염병 저널에 '한국, 나이트클럽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노출 및 확산(Coronavirus Disease Exposure and Spread from Nightclubs, South Korea)'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됐다. 

추적의 직접 1차 대상은 대구의 유행상황이 잡히면서 정치으로 느슨해진 황금휴가 기간에 이태원 내 5개 클럽을 방문한 5517명이다. 그러나 질본은 이를 넘어서 그 기간에 클럽 주변을 30분 이상 머무른 사람들을 모두 추적해 5만 7536명에 대해서도 추가 검사를 받도록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은 ‘이태원클럽’으로 인해 발생한 총 246명의 감염자들을 대부분 찾아낸 경험을 기술한 것이다. 

이때 사용된 추적기술을 보면 개개인의 GPS를 통한 스마트폰 위치, 거기에 CCTV까지 최첨단 IT 기술을 총동원했다. 또한 신용카드 사용 내역, 대중교통 카드, 약물사용 기록 등을 통한 접촉자 추적(contact tracing)을 통해 ‘이태원클럽’ 방문한 사람을 거의 다 찾아냈다. 

5월 25일까지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대상자 중에 0.19%(67/35827명) 확진률을 보였고 그들과 접촉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약간 높은 0.88%(51/5785명)의 확진률을 기록했다. 

그리고 말하기 어려운 ‘블랙수면방’ 상황으로 익명의 검사 받은 사람들은 0.06%(1/1627명) 확진률을 보였다. 이렇게 낮은 검사 확진률만 보아도 방역당국이 얼마나 꼼꼼하게 감염 가능한 사람들을 찾아냈는지 알 수 있다. 6차 접촉을 통해 발생한 감염자까지 저인망식으로 다 찾아내는 정말 무서운 방역당국의 저력을 알게 된다. 

한편 그림에서 보여주듯 바이러스가 퍼지는 양상을 보면 코로나19가 얼마나 빠르게 퍼져 나가는지도 알 수 있다. 이렇게 사냥개보다 더 지독한 입체적인 추적이 가능하게 된 핵심은 한국이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염병 관련 법을 보완해 감염자 추적에 한정해 개인정보 열람 및 정보공개가 가능하게 됐다. ‘메르스 덕분에’. 

하지만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나라들은 같은 상황에서 방역당국이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없다. 물론 중국 정부는 개인의 QR코드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예외다.

왜 미국과 세계 여러 나라들은 코로나19 환자가 그렇게 높게 계속 증가할까? 그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소유하고 있는 ‘개인의 자유’ 때문이다. 싫으면 마스크를 안 써도 되고 싫으면 거리두기도 안 하는 그 자유 때문이다. 정부가 그 자유를 침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미국 독립전쟁의 모토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감염자 추적이란 명목 아래 ‘빅 브라더’의 통제를 체념하고 살아가는 것인가? 1984년이 조금 늦게 2020년에 대한민국의 현실이 된 것이 올바른 것인가?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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