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의 관리급여 정책을 두고 "환자의 치료권과 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결정"이라며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의협은 관리급여가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는커녕 환자 부담을 오히려 늘리고, 실손보험사의 손해율만 낮추는 구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가 15일 정부의 관리급여 정책은 환자의 치료권과 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한다며, 정책 강행을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비급여관리정책협의체 4차 회의를 통해 도수치료, 경피적 경막외강 신경성형술, 방사선온열치료 등 3개 항목을 관리급여로 선정했다.
이에 대해 의협 이태연 보험부회장은 "의료계의 지속적인 협의 요청과 전문가의 의학적인 의견을 무시하고, 오직 실손보험사의 이익만을 대변해 강행한 결정"이라며 "이러한 정부의 부당한 조치는 국민 건강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행위"라고 유감을 표했다.
이 부회장은 정부의 관리급여 정책을 두고 "법치를 무시한 관리급여 국민기만·위법의 결정체"라고 비판하며 "정부는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비급여 증가의 책임이 의료계에만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신설한 관리급여는 명목상 급여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본인부담률 95%를 적용해 사실상 비급여와 다름없는 구조"라며 "오직 정부의 행정적 통제를 강화하는 규제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어 "관리급여에 대한 근거는 국민건강보험법에 없다"며 "법적 근거 없이 선별급여로 위장해 5%만 보장하는 것은 국민의 치료권과 의사의 적정 진료권을 침해하는 것이자, 정책 추진의 근간인 법률유보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의료적 적합성을 확보했지만 경제적 당위성이 떨어져 급여를 하지 못하는 것이 비급여"라며 "무조건 저가로 통제하는 기전을 도입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 방법을 시장에서 강제 퇴출시키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그는 관리급여 정책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전문가의 판단을 무시하는 불합리한 월권"이라며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와 의사가 최선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환자를 치료할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헌법적 권리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제한할 수 있으며, 단순히 정책적 명분으로 정부가 제한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법률적 근거도 없고 합리성도 결여된 관리급여 신설을 즉각 철회하고, 비급여관리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며 "비급여관리 논의는 법적 근거, 의학적 기준, 투명한 사회적 합의라는 세 가지 핵심 원칙 아래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예비지정제도 도입 등 현행 비급여 체제 내에서 자율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방안을 의료계와 먼저 논의할 것을 촉구했다.
이 부회장은 "정부가 의료전문가의 이러한 합리적인 의견을 계속 무시하고 정책을 강행할 경우, 비급여관리정책협의체 등 관련 협의체에 대한 참여 거부를 심각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헌법소원 제기 등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사진=대한의사협회 유튜브 생중계 영상 갈무리
이어 그는 관리급여가 실제 의료현장에서 어떤 구조적 문제를 낳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와 사례를 제시했다.
이 부회장은 도수치료를 예로 들며 "현재 비급여 도수치료 10만원을 기준으로 보면, 실손보험 가입 환자는 평균 20%인 2만원만 부담하고 보험사가 8만원을 지급해 왔다. 관리급여로 들어가면 가격이 4만원 수준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크고, 여기에 본인부담률 95%가 적용된다. 이 경우 환자는 95%에 다시 95%를 부담하게 돼 약 3만6100원을 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10만원짜리 치료를 4만원으로 낮추고, 새롭게 건강보험 재정이 2000원 투입됐지만 환자가 내는 돈은 2만원에서 3만6100원으로 오히려 늘어난다"며 "반면 보험사는 8만원을 내던 구조에서 1900원만 낸다. 결과적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주체는 실손보험사"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관리급여는 환자 부담을 줄이는 정책이 아니라, 실손보험사의 손해율을 줄이기 위한 장치"라고 꼬집었다.
또한 관리급여가 진료 항목 퇴출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부회장은 "가격이 내려가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공급자가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 문제"라며 "10만원 하던 치료를 4만원으로 낮추는 구조에서는 의료기관이 지속적으로 해당 진료를 제공하기 어렵다. 관리급여가 되면 가격뿐 아니라 횟수와 인정 기준이 함께 통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의료기관은 진료를 포기하게 되고, 그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대한재활의학과의사회 백경우 회장은 "재활치료는 수술 이후 환자의 기능 회복을 위해 필수적인 영역"이라며 "비용과 기준이 맞지 않으면 치료 자체가 사장되고, 수술은 했지만 제대로 걷지 못하는 환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 최순규 회장은 비급여의 본래 취지를 강조했다. 그는 "비급여는 원래 최신 의료기술을 검증하고 시장에서 평가받기 위한 제도"라며 "의학적 근거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과정이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비급여를 해오면서 큰 문제가 없었는데, 실손보험과 엮이면서 갑자기 ‘비급여=과잉진료’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지금은 너무 급하게, 너무 단순한 방식으로 의료를 건드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관리급여가 졸속으로 도입될 경우 그 결과는 되돌릴 수 없다"며 "우리나라 의료는 한 번 망가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이태연 부회장은 예비지정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예비지정제도는 의료계가 먼저 비급여 영역 안에서 과잉이나 일탈을 자율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대안"이라고 밝혔다.
의협 이봉근 보험이사는 "정부가 과잉 비급여라고 판단하는 항목을 곧바로 관리급여로 지정할 경우 후폭풍이 너무 크다"며 "학회와 전문가가 참여해 명백한 아웃라이어를 걸러내는 구조를 만들면 충분히 조절 가능하다. 의료계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실손보험사가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도 가능하다.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학회와 논의한 결과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