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2.05.13 06:00

[서촌의 미래]① 황두진 건축가 "권력이 빠져나간 자리, 복합 주거공간으로 채워야죠"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서촌시대' 또한 예고하고 있다. 빈집이 된 청와대는 관광객의 발길과 구도심 개발 열망이 채웠다. 서촌과 삼청동, 청운효자동 등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투자 문의가 줄을 잇고, 상가 호가도 훌쩍 뛰었다.
그러나 한편에선 관광객 증가와 상권 활성화가 '서촌시대'의 전부가 아니며, 그렇게 돼서도 안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 한복판을 상징적으로 억눌러왔던 권력이 빠져나가면서, 서촌이라는 공간을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서촌은 도시 한복판의 구도심이자, 역사와 전통을 지닌 특수성을 지녔다. 동시에 낙후된 구도심이라는 한국 도시 문제의 보편성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서촌은 한국 도시의 현재이자 미래다. 서촌은 그간 어떤 모습이었고, 앞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아시아경제는 서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서촌 주민은 물론, 상인, 공무원, 정치인들을 만나 다양한 얘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건축가 황두진 씨는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이자 통의동 주민이다. 서울 강남의 벽돌 빌딩 '원앤원 63.5', 프로배구단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복합 훈련 시설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등을 설계했다. 지난 11일 만난 그는 서촌을 본인 건축의 핵심테마인 '무지개떡 건축론'이 구현될 최적의 장소로 꼽았다.
-- 통의동에 사무실을 차리고 오랜 기간 거주 중이다. 서촌 주민에게 서촌이란 어떤 동네인가.▶(황두진) 서촌은 서울 구도심의 주거 배후 지역이다. 문제는 그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 시내 안에는 직장이 굉장히 많다. 일자리가 넘쳐나는 곳인데, 정작 이곳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멀리서 오간다. 서촌은 유동인구는 많지만 상주인구가 크게 줄어든 상태다.
-- 상주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서촌에 상주 인구를 늘릴 수 있다면, 많은 시민들이 직장과 주거공간의 거리를 대폭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삶의질이 개선되는 것이고, 환경적인 측면에서보면 그만큼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청와대 이전으로 서촌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바로 상주 인구의 증가라고 본다. 서울이라는 도시 전체를 유기체적으로 봤을 때, 서촌 또한 신체의 일부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하는 자기 역할이 있다. 그건 도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까운 거리에서 주거 기능을 많이 제공해주는 것이다.
-- 서촌은 인왕산, 경복궁 등을 근처에 두고 있어 고도제한 등으로 개발 여건이 녹록지 않은데▶ 맞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왔던 방식의 개발노선과 생각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개발 방식은 부지를 싹 밀고, 거기에 단지형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다. 서촌은 청와대가 이전하고 나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규제가 많다. 인왕산과 경복궁을 옮길 수는 없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개발을 해야한다.
-- 그럼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해야 하나?▶ 소(小)블록 개발 방식이 적합하다고 본다. 서촌은 필지가 너무 잘개 쪼개져있어 필지 단위의 개발이 쉽지 않다. 필지가 아닌 블록별로 개발단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기존에 있던 도시조직이나 형태를 비교적 유지·보전하는 측면이 있다.
다만 소블록이라 할지라도, 서촌 기준에서는 큰 덩어리다. 블록을 다시 기능별로 쪼개야 한다. 지하는 주차장으로 공동개발하고, 저층부에는 상점이나 카페가 들어서고, 중간층에는 소규모 오피스텔이 들어가고, 그 위에는 사람이 사는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단일용도의 건물이 아니라, 복합 용도의 건물인 셈이다. 즉, 무지개떡 건축이다. 서촌은 무지개떡 건축 구현을 위한 최적의 장소다.
※무지개떡 건축 : 건축가 황두진의 핵심테마 중 하나는 '무지개떡 건축'이다. 무지개떡 건축이란 주거와 업무 등 복합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건물을 말한다. 모든 층이 단일용도로 구성된 건물을 시루떡에 비유한다면, 층별로 다른 기능을 갖춘 건축물을 무지개떡에 비유할 수 있다. 도시의 밀도를 충분히 높게 유지하면서도 주거, 경제, 조망 등 모든 여건을 만족시키는 도시건축의 유형이다.




-- 왜 서촌이 무지개떡 건축을 위한 최적의 장소인가?▶ 아까 말했듯, 서촌은 굉장히 많은 업무시설을 바로 옆에 두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곳으로 출퇴근하는 인원들은 서촌보다 훨씬 먼 곳에 산다. 언제까지 광화문 출근자를 위해 경기도 외곽에 초고층 아파트를 지을건가. 땅이 없는게 아니다. 구도심도 국토다. 구도심의 쇠퇴, 구도심의 주거기능 약화로 밸런스가 붕괴된 지역이 어디 서촌 뿐인가. 사실상 한국 도시 대부분이 그렇다. 구도심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하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서촌이 성공한다면,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 구도심에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구도심 부활과 재생의 신호탄이 바로 서촌인 것이다.
-- 무지개떡 건축이 서촌에 자리잡으려면 어떤 정책적 제도적 지원이 필요한가▶ 서촌은 청와대가 아니더라도 이미 규제가 많다. 그런 규제를 무작정 해제하는게 바람직한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구단위계획을 통해서도 충분히 지원이 가능하다고 본다. 복합용도 건물을 권장을 하는 식의 접근이 가능하다. 현행 지구단위계획을 수정, 진화·발전시킴으로써 이런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지구단위계획이 굉장히 강력한 무기다. 건축법이나 도시계획법을 바꾸지 않는 범위 내에서도 가능하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건축을 권장하고 유도할 수 있는 정책적 툴(tool)이다.
※지구단위계획지구단위계획이란, 도시와 마을에 건축물 계획과 평면적인 토지이용계획을 고려하여 수립하는 계획이다. 토지이용을 합리화하고, 양호한 주거환경을 확보하며, 당해 구역의 체계적·계획적 개발을 유도한다. 도시관리계획의 하나인 지구단위계획은 해당 지역의 성장 및 발전 등 여건변화와 미래모습을 적극 고려해 수립하게 된다. 주민 스스로 문제 를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도록 권장하며, 행위완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도시 활성화를 유도하는 제도다.
-- 구도심은 낙후된 지역일지라도 땅값은 비싸다. 이곳에 복합건축믈을 짓는 게 경제적이라 할 수 있을까.▶ 아파트 단지의 평균적인 밀도가 무지개떡 건축보다 현저하게 높지 않다. 아파트 단지가 고층이라서 착시가 있는 것이다. 아파트는 건폐율이 낮고 동 사이를 크게 이격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주거의 총량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무지개떡 건축이 밀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땅을 여러 번, 복합적으로 써야하는 것이다. 지금 서촌에는 아직도 저층 주거지가 너무도 많다. 지금보다는 밀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 무지개떡 건축 비전이 구현된 롤 모델 도시가 있나.▶베를린에 가면 하케셔 마르크트(Hackescher Markt)가 있다. 유럽 도시들이 대부분 중정이 있는데, 전형적인 유럽 건축물들의 중정은 매우 폐쇄적이다. 그런데 하케셔 마르크트에 있는 건물들은 중정을 터서 모든 건물의 중정을 연결을 시켰다. 여러 블록에 있는 건물의 중정이 연결돼 있다보니, 여기서 걷다보면 길을 잃을 정도다. 보행자의 천국이다. 이곳에는 아래층에는 상점이 레스토랑이 있고, 위에는 사무실이 있고 그 위에는 또 사람이 산다. 지금까지 두 눈으로 확인한 가장 훌륭한 도시 주거단지였다.




-- 도시개발이라고 하면 대부분 아파트 단지를 상상한다. 서촌 또한 일부 주민들은 그런 식의 개발을 요구하고 있다. 개발 방식에 대한 첨예한 갈등은 어떻게 절충점을 찾아야 하나.▶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답은 '한 번 해 봅시다' 이다. 한 번 사례를 만들어보고 나서 그 사례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한번 보자는 거다. 단지형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 어떻게 작동되는지는 '경희궁 자이' 같은 걸 통해서 봤다. 그 단지가 도심 가까운 곳에서 상당한 양질의 주거를 공급해 준 것은 사실이다. 근데 그 방식을 서촌에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데다가, 이미 경험해 본 것 아닌가. 그럼 한 번 정도는 시범적으로 소규모 블록 개발을 해서, 그게 어떤 미래를 펼쳐내는지 보자는 것이다.
-- 현 단계에서 서촌의 미래를 예상하자면.▶ 최악과 최고의 시나리오가 있다. 최악은 서촌이 단순 관광지가 되는 것이다. 단체관광버스가 관광객 실어나르고, 동네가 떠들썩해지면 어떤 사람은 그게 동네가 좋아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근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곳에 투자를 한 사람일 거다. 제가 보기에 '어떤 동네가 참 좋다'라고 얘기할 수 있으려면, 내 가족을 데리고 와서 기꺼이 살 의향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본다. 제일 좋은 시나리오는 제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서촌이 대한민국 구도심 회복의 신호탄이자 롤모델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다양한 기법과 새로운 실험으로 구도심을 재생한 사례가 되는 것이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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