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1.11 12:00최종 업데이트 24.01.1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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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후 이틀 된 소아 응급환자…수술할 의사 없어 서울→경기 50km 이송

서울권 전역 수술 불가, 고대안산병원 정규수술 연기해 겨우 응급수술...소아 세부전문의 공백도 심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서울 동북권 A 대학병원의 한 신생아가 뇌출혈로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에 빠졌으나 50km 이상 떨어진 경기도 남부 고대안산병원까지 이송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해당 소아 응급환자가 고대안산병원까지 이송되는 길에는 빅 5병원을 비롯한 대학병원들이 여럿 있었지만, 해당 수술이 당장 가능한 병원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1월 5일 밤 A대학병원에서 태어난 지 이틀 된 신생아가 경막하출혈(subdural hemorrhage, SDH)으로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에 빠졌다.

신생아에게 발생한 경막하출혈은 즉시 뇌 수술을 통해 출혈을 멈추지 않을 경우 사망까지 이르는 응급의료 상황이다. 

문제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아의 뇌 수술은 수술을 할 수 있는 소아신경외과 전문의와 이후 소아 중환자실 입원 치료를 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소아 마취가 가능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를 갖춘 병원에서만 수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A대학병원은 당시 소아 뇌 수술을 할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고 즉시 인근 병원으로 전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에는 빅5 병원도 포함돼 있었으나, 의료인력이 풍부한 서울권 병원 어디에도 야간에 소아 뇌 수술을 응급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병원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A대학병원 의료진은 경기도권까지 수술 여부를 문의했다. 해당 소아 환자는 50km 떨어진 경기도 남부에 있는 고대안산병원으로 이송됐다.

고대안산병원 관계자는 "A병원에서 우리 병원으로 오는 길에 많은 대학병원이 있는데 그 병원들도 정규 수술이 있거나 소아 응급환자의 뇌 수술이 가능한 의료인력이 없어 환자 수용이 어렵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서울의 대학병원은 지방에 비해 의료인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소아 뇌 수술은 워낙 빈도가 낮다 보니 소아신경외과 의사 수는 서울조차 많지 않다. 당시 금요일 야간에는 당직 인력만 있다보니 의사를 찾기가 더 어렵다"라며 "결국 A병원은 서울에서 수술방과 신생아 중환자실이 비어있고, 인력도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물어 물어 우리 병원까지 수술이 가능한지 문의가 왔다. 다행히 우리 병원은 소아 마취가 가능한 의사와 소아 뇌 수술이 가능한 의사가 당직이었다. 사실 우리 병원도 당시 정규수술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 응급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병원 입장에서는 정규수술을 먼저 하는 게 맞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소아 환자의 상태가 수술을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응급상황이었다. 정해진 수술을 미루고 수술방을 확보해 환자를 받았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약 2.4kg의 소아 환자는 곧바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수술 중 두어 번 고비를 넘겨 소생했다.

고대안산병원 관계자는 "워낙 예후가 좋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나고 출혈도 잘 멈췄다. 현재는 아기의 의식도 돌아왔고, 기도 삽관도 다 제거한 상태"라며 "경막하출혈은 수술만 잘하면 극적으로 환자가 회복될 수 있는 만큼 당시 정규수술을 미루고서라도 환자를 수술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보통 지방에서 서울로 환자들이 이송되는데 이번 사례는 달랐다. 서울조차 의사가 없어 돌고 돌아 경기 남부 병원으로 환자가 이송된 것이다. 소아의료 공백은 더 이상 서울에서도 예외가 아님을 알 수 있는 사례"라며 "인력이 풍부한 서울조차 소아의료를 메우지 못해 경기도 끝으로 환자를 보낼 수밖에 없다니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A대학병원 관계자는 "신생아는 응급이나 중증으로 전원갈 때 일반 성인과는 다른 프로세스를 거친다. 신생아는 향후 필요한 치료까지 예상해서 전원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신생아 상태에 따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신생아 중환자실 교수 간에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일반 성인은 일단 큰 병원으로 전원하면 되지만 신생아는 그렇지 않다. 소아 환자가 현재 어디로 전원갔을 때 최적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 조건을 따져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빅5 병원이라도 그런 여건이 되지 않으면 환자를 전원보낼 수 없다"며 "이처럼 신생아는 성인과 프로세스가 다르고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까지 고려해 전원을 가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도 지난해 5월 '서울형 야간‧휴일 소아의료체계'를 갖춰 권역별로 중증도에 따른 '우리 아이 안심의원-안심병원-전문응급센터'를 지정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은병욱 보험이사(노원 을지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만 부족한 게 아니다. 소아 세부전문의가 전반적으로 다 부족하다"라며 "신생아 뇌 수술은 소아 신경외과 교수가 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소아만 전문으로 하는 의사는 각 병원에 많지 않다. 대학병원도 신경외과 의사가 10명이라면 그중 소아신경외과는 딱 1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은 교수는 "소아 분야는 전공의 지원 기피에 더해 기존 의사들의 이탈까지도 심각한 상황이다. 실제로 소청과 의사뿐 아니라 소아 세부전문의들이 대학병원을 많이 그만두고 있다"고 했다.

특히 소아외과의 경우 정부가 소아 수가를 많이 올려줬지만 워낙 건수가 적다보니 아무리 소아환자를 수술해도 본인 급여로는 반영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성인을 보는 외과 의사들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다보니 소아외과 지원자는 점점 줄어들고 아예 병원을 떠나버리는 것이다. 소아청소년과는 물론 소아 세부전문의를 따려는 의사들도 점점 줄어들면서 소아의료 공백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소생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대구에서 발생한 응급실 뺑뺑이 사건, 전주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목숨을 잃은 2016년 민건이 사건 등이 서울에서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소아 분야는 워낙 인원이 적다보니 전원을 요청한 병원 의사들이 예정된 수술은 물론 각종 이유로 자리를 비우면 소아 응급환자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고 경고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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