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8.12.07 06:01최종 업데이트 18.12.07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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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수가에 형사처벌·주취자 폭행까지...의사에게 진료거부권을 달라"

대한의사협회 '최선의 진료를 위한 진료제도 개선방안 마련 토론회'서 의료계 주장 쏟아져

국민 입장에선 오해 소지 있어…의사가 국민과 환자를 생각한다는 공감대 필요

사진: 대한의사협회 '최선의 진료를 위한 진료제도 개선방안 마련 토론회'.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의사의 진료 거부는 의료법 등 현행법에 규정된 진료거부권이 형법상 처벌이 아닌 직업윤리로 다뤄야 하고, 의료진의 직업상 권리를 위해 진료 거부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진료 거부권이라는 표현이 자칫 오해를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의료계는 한국을 제외한 어느 국가도 진료 거부 위반을 형사 처벌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료 거부 인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응급실 폭행 사건이나 진단을 못한 의사의 구속 사건에서 진료 거부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됐다. 독일은 자유전문직으로서 의사의 직업활동을 보장하며 한정된 범위 안에서 진료 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의사들이 국민과 환자도 생각한다는 공감대가 있을 때 진료거부를 인정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대한의사협회는 6일 용산전자랜드에서 '최선의 진료를 위한 진료제도 개선방안 마련 토론회'를 개최하고 이같은 내용의 진료 거부권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 정부 측 패널은 참석하지 않았다. 

의료 윤리 문제를 형사법으로 처벌하는 유일한 국가

한국에서 진료거부 금지 조항은 응급의료법과 의료법에 있다.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진료거부 위반시 형사처벌을 규정한 법은 한국에만 있다. 일본은 진료거부 금지 조항이 있지만 형사처별 규정이 없다. 다른 국가들은 의료 윤리 차원에서만 진료 거부를 금지하고 제재도 보험공단, 협회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규제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이얼 책임연구원은 "응급의료종사자는 업무 중에 응급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를 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지 못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위반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 연구원은 "의료법상 진료거부금지는 1951년 9월 처음 제정돼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의료인 또는 의교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 또 의료인은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선의 처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반하면 시정명령을 받거나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최대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원은 "의료법상 진료거부 금지는 과거 의사의 수가 부족했던 시절에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법적으로 규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 법은 1951년에 처음 제정된 이후 시대 변화에 따라 4번의 개정이 있었지만, 이 법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직업윤리의 내용이고 형사처벌이 아니라 의료윤리 차원에서 면허와 관련해 자율적으로 제재를 할 수도 있다. 부득이하게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시대 흐름에도 적합하지 않다"며 "진료거부 금지를 법률로 규정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하지만 처벌 규정은 한국에만 있다. 일본은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나설 필요도 없고 그에 따른 법적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법률로 정한 진료 거부가 가능 사유가 현실에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의사와 간호사 등 병원 직원들은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거나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람에게도 치료를 계속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형사처벌 조항 대신 전문가 단체의 자율규제를 활성화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국민에게 최선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징계 수준이 올라가야 하고 전문가 단체의 윤리위원회가 심사 이후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독일에서 의사는 자유전문직으로서 진료 거부권 행사  

독일은 자유전문직으로서 의사의 직업활동을 인정해 제한된 범위 외의 상황에서는 계약 자유의 원칙에 따라 의사가 진료를 거부할 수도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좋은의사연구소 김기영 연구교수는 "의사는 전문자유직으로서 원칙적으로 계약자유가 있다. 응급상황과 같은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진료를 인수할 것인지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며 "하지만 이미 개시한 진료는 계속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계약적 자율성은 건강보험 의료에도 적용된다. 독일은 건강보험이 80~90%고 민영보험이 10% 정도 된다. 건강보험공단 소속의사로서 요양급여계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위반하면 징계를 받는다"며 "대신 형사처벌이 아니다. 징계는 공단 소속의사의 협회에서 자율규제로 받는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독일은 의사를 자유전문직으로서 직업활동을 보장한다. 의사는 독립적인 직업 활동과 자기 책임 하에 계약의 자유를 가진다"며 "다만 진료를 이미 시작했거나 인수한 경우에는 중단할 수 없다. 또 응급상황이나 응급위험이 있으면 진료를 중단해서 안된다. 유기치사에 관해서는 엄격하게 규정돼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배, 섬, 항공기 등 공간에서는 응급상황에 의사가 진료를 해야하지만 길거리에서 발생한 사고는 의사가 지나간다고 해서 무조건 진료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독일은 건강보험법에 따라 건강보험의사가 원칙적으로 의사가 요양급여 수가가 낮다는 이유로 진료거부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 교수는 "건강보험의사가 요양급여로 인해 진료를 거부하는 것은 건강보험체계 서비스에 참여하는 기본적인 법적 및 계약상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며 "예외로 의사가 추가로 환자를 받는 것이 이미 진료계약을 체결한 환자의 치료를 침해하는 경우에 의사는 추가 환자를 받을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또 환자가 의사 앞에서 녹음을 하겠다는 경우 등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가 상실되거나,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경우에 의사는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며 ""독일에서 의사가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려면 정당한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열악한 의료현장에 형사처벌까지 부담... 의료진 기본권 지켜줘야

의료현장에 있는 의사들은 진료 거부권이 의료진의 기본권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이혁 보험이사는 개원의로서 겪는 수가 정책으로 인한 어려움에 더해진 형사처벌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혁 보험이사는 "개원의들은 낮은 수가 때문에 과도한 업무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환경으로도 모자라 진료를 거부하면 형사처벌을 받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최선의 진료를 위해서는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근무시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보험이사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할거면 형사 면책권을 줘야 한다. 원가 보장도 안되고 개원의로서 감당할 수 없는 환자가 와도 거부할 수 없다. 그런데 요즘엔 형사처벌까지 받는 판결이 늘고 있다"며 "의사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10년 했으면 나갈 수 있는 자율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응급의학회 이경원 섭외이사는 응급실 의료진 폭행 처벌법과 더불어 응급실 내에서도 진료 거부권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섭외이사는 "법에 규정된 진료 거부 가능한 기준을 보면 응급실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 실제 응급실 와서 의료진을 위협하고 다른 환자들의 진료를 방해하는 사람들 중에는 만취자가 많다. 이들은 술에 취해서 넘어져서 타박상을 입어도 외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응급이라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이 섭외이사는 "하지만 이들은 119 구조대에 실려올 때부터 구급대원에게 폭언, 폭력을 행사하고 응급실에 와서는 의료진에게 성희롱, 성추행, 폭력을 행사한다"며 "형사처벌 규정은 이들이 보건소에 민원을 넣으면 경찰이 수사하도록 만든다"고 토로했다.

이 이사는 "최근 통과 앞두고 있는 응급실 폭행 처벌법으로는 한계가 있다. 만성적으로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의료진이 폭력에 노출돼 있다. 특히 간호사들이 폭력 위험에 가장 많이 시달린다. 응급환자가 아닌 이들을 의료기관도 거부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며 "진료 거부권은 의료진의 기본권의 또 다른 말이다"고 말했다. 

국민들 관점에서 '진료 거부권' 오해할 수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의사의 진료 거부권에 대한 논의가 미래 의료의 어떤 측면에서 필요한지 먼저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진료 거부권'이라는 용어가 자칫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연세대 의료법윤리학연구원 김소윤 원장은 단일보험자, 전체국민 가입이라는 한국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진료 거부' 논의가 왜 지금 이 시점에 진행돼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독일 사례와 비교할 때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전체국민 가입의 단일보험자라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며 "따라서 의료법만 가지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문제는 전국민 보험 가입이기 때문에 건강보험의사의 진료거부권은 국민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의사들이 단체 행동을 위해 진료거부 조항 의견 내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며 "국민과 의료계의 신뢰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왜 지금 이 시점이 이 논의가 있어야 하나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물론 진료거부 금지는 의사의 기본적 권리로 당연하다. 하지만 이 논의가 미래 의료에 어떤 포지셔닝을 할 수 있는지 공감대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시민모임 엄명숙 서울지부 대표는 의사만의 관점이 아닌 국민과 환자의 입장에서 최선의 진료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 대표는 "대한민국 의료보험제도가 세계 1위다. 이 이면에는 의료보험 과정에서 수많은 의사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다"며 "제도 도입 과정이 매끄러웠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사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고 상당한 문제점이 누적된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엄 대표는 "적어도 의사만의 관점이 아니라 국민과 환자 입장에서 최선의 진료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라며 "의사 관점에서는 환자를 고르는 것이 최선일 수 있으나 다른 관점에서는 과잉진료일 수 있다. 평가기관 입장에서는 적정 수가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서로 달리 볼 측면이 많다"고 덧붙였다.

엄 대표는 "높은 윤리 수준으로 요구해야 할 사항을 형사처벌로 다루는 것은 개인적으로 후진적이다고 본다. 다만 개선 방향을 말할 때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관점에서 다뤄줬으면 한다"며 "의사들이 국민과 환자도 생각한다는 공감대가 있을 때 개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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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연 기자 (dyjeong@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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