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1.19 16:13최종 업데이트 26.01.1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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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폭력, 그 오지랖에 대해

[칼럼] 안양수 미래의료포럼 정책고문


[메디게이트뉴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다시 패소했다. 법원의 판단은 명확했다. 공단이 지출한 진료비는 법적 의무에 따른 것일 뿐, 담배 회사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주제넘게 나서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다.

나는 이번 판결을 보며 공단이 그동안 ‘국민의 대리인’이라는 가면을 쓰고 행해온 해묵은 오지랖과 폭력적 논리를 떠올린다. 이들의 논리는 담배 소송이나 진료비 심사 삭감이나 본질적으로 판박이다.

‘정의’를 빙자한 사적 제재

공단은 늘 “국민이 낸 소중한 보험료를 지키는 대리인”임을 자처한다. 하지만 그 ‘대리’라는 명분은 의료 현장에서 의사의 전문적 판단을 부정하고, 환자의 진료권을 제한하는 도구로 돌변한다.

담배 회사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해 두들겨 패려 하듯, 진료실의 의사를 ‘잠재적 과잉 진료자’로 몰아세우며 삭감이라는 매를 든다. 이는 "우리가 정의이기에 누구든 응징할 수 있다”는 비대해진 자아의 발현일 뿐이다.

‘인간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행정 편의주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공단이 환자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주체'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담배 소송: 개인이 유해성을 알고도 선택한 '자기 결정'의 영역을 무시한다. 환자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과 환경적 요인, 그리고 그들의 선택권을 지워버리고 오직 통계적 수치만으로 배상을 요구한다.

심사 삭감: 환자의 특수성과 임상적 판단(Black box)을 무시하고 오직 규정 수치로 진료비를 깎는다. 이는 환자가 최선의 진료를 받을 선택권마저 공단의 행정 잣대 아래 종속시키는 행위다. 결국 이 두 행태는 인간과 질병의 복잡성, 그리고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 행정적 오만에서 비롯된다.

조직 논리가 만든 ‘가짜 정의’

공단이 패소가 예견된 소송을 밀어붙이고 삭감에 열을 올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 건강권 수호인가, 아니면 조직의 통제력 강화인가? 

소송에서 이기면 ‘재정을 지킨 영웅’이 되고, 삭감을 많이 하면 ‘유능한 관리자’가 된다. 그 과정에서 정작 존중받아야 할 개인의 선택권과 의료의 질은 철저히 뒷전으로 밀려난다. 

“누군가 죄가 있다면 아무나 나서서 때려도 된다”는 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전문가의 통찰과 환자의 실체적 고통은 숫자에 가려 소외될 뿐이다.

법원이 지적한 공단의 ‘오지랖’은 단순히 소송 하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의료 시스템 전반을 좀먹고 있는 공적 조직의 자아 비대화에 대한 엄중한 질책으로 읽어야 한다. 국민은 공단의 관리 대상이기 전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권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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