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02.03 06:21최종 업데이트 21.02.03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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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최선의 진료환경을 보장받아야 더 많은 환자를 살린다

의사 형사처벌 면책하는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으로 의사·환자 모두 안심할 수 있는 환경 필요

[칼럼] 이필수 전라남도의사회장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2020년 모대학병원 교수가 대장암이 의심되는 장폐색 환자에게 장 정결제를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 대해 법정 구속되고 54일간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2018년 10월에는 8세 소아환자의 사망으로 의사가 법정 구속됐으며, 2017년에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감염 사망 사건으로 소아과 교수가 구속되기도 했다.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불행한 결과들로 의료진이 법정구속되는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에 대해 유족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이 의료진에 대한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것은 법리적 관점과 사회 상규를 따르는 도덕적 관점에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법의 탄생은 사회의 형성과 관계돼 있다. 법은 사회상을 반영하는 도덕과 관습이 투영되면서 만들어지고 발전해왔다. 도덕과 관습은 다수의 공통인식을 반영하는 묵시적 함의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성문화돼 법률로 진화했다. 최초의 법률은 역사의 발전, 문화의 향유, 사회의 진보, 철학적 돌파, 그리고 법리적 완성을 통해 현재로 발달됐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범죄의 성립요건 역시 우연이나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피의 역사와 치열한 법리적 투쟁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범죄의 성립요건 중 ‘고의성’이 조각되는 의료 사고에 대해 형사 처벌이 면책되는 것은 법리적 관점에서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법은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으며, 의료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보의 비대칭이 지배하는 의료시장에서 환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의학이라는 전문 지식 앞에 무력한 환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설명의무를 강화하거나, 주의 의무를 주지하게 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일리가 있으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이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의료 사건에서 비롯한 분쟁을 형사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이와는 다르며 바람직하지 않다. 도로에 과속카메라를 많이 설치한다고 교통 사고를 완전히 막을 수 없고 범칙금을 높인다고 해서 사고가 없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의료 사건에 대한 형사 처벌 수위를 높인다고 해도 의료 분쟁의 발생은 필연적이다. 오히려 법정구속과 같은 형사적 처벌은 방어진료를 부추기고 진료비를 높일 뿐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밝히는 것처럼 의료진은 환자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치료해야 한다. 이는 법리적 관점을 떠나 의료진이 부여받은 직업적 소명이며 사명감의 발로이다. 이 소명과 사명감은 자발적인 것이지만, 법적 분쟁과 형사소송 및 법정 구속은 이를 퇴색하게하고 소명의식을 저버리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의료진은 선한 사마리아인들처럼 윤리적으로 당연한 것을 행하지만 불행이도 그에 따르는 책임 소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당연한 선택에서 비롯된 짐을 져야한다면 선한 사마리아인들은 점점 사라져갈 것이다.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나 구명정 상황처럼 냉혹한 의료진이 늘어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법과 환자들은 책임감에서 벗어나 윤리적 선택을 하는 의료진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법이 필요한 이유이다. 

환자들의 권리는 법적으로 보장돼야 하고, 발생한 의료 사건에 대해 법은 치유와 화해를 유도해야 한다. 치유와 화해는 인신 구속과 같은 형사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갈등 조정과 합의를 통한 해결이어야 한다. 환자들의 권리가 강화되는 것이 당연하다면 의료진이 최선의 진료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고, 최선의 진료 환경이 환자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법은 최소한의 윤리적 표현이어야 하지만, 잇따르는 의료진에 대한 법정구속은 '법이 윤리를 유린'하는 법을 통한 관리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환자들의 권리와 의료진의 권리는 상호 배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환자들의 권리는 의료진의 진료 환경 보장에서 빛을 발하고 의료진의 권리는 설명과 주의의무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환자들의 권리와 의료진의 권리는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적인 것이며, 환자들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만큼 의료진에게는 형사적으로 면책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여야한다. 의료진 모두가 자연스럽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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