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06.05 08:13최종 업데이트 21.06.05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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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늬만 '협상'인 수가협상…언제까지 매년 '재방송'만 반복할까

밴드 결정 재정소위 영향력 절대적…거부권 없는 공급자 단체 결렬 선언도 '무의미'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16시간 30분. 2022년도 유형별 수가협상의 마지막 날 협상의 마무리까지 걸린 시간이다. 5월 31일 오후 4시, 대한병원협회가 스타트를 끊은 협상은 다음 날 통이 트고도 한참이 지난 다음날 6월 1일 오전 8시 30분 무렵 종료됐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를 감안하더라도 예년에 비해 유독 길어진 마라톤 회의였다. 의료계로서는 긴 회의 끝에 만족할만한 수확이라도 있었다면 그나마 나았을테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4년 만에 협상 타결이란 결과를 이끌어낸 대한의사협회 수가협상단도, 2년 연속 결렬을 선언한 대한병원협회 수가협상단도 어두운 표정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의원급 수가 협상을 담당한 김동석 의협 수가협상단장은 “코로나19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을 분담하는 대승적 차원에서 타결을 결정했다”면서도 “인상률은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송재찬 병협 수가협상단장은 협상 결렬 직후 “공단 측에서 제시한 인상률은 병협이 합리적으로 판단한 수준에 한참 못 미쳤다”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협상을 끝내고 불만과 아쉬움을 표하는 공급자 단체들의 모습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이처럼 매년 수가협상 후 풍경에 기시감이 드는 것은 현행 제도가 공급자 단체들이 협상에서 별다른 카드를 제시할 수 없도록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수가 인상의 폭이 어느 정도가 될지는 전적으로 가입자 단체로 구성된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소위의 결정에 달려 있다.

재정소위가 허용한 밴드 내에서 공단은 각 유형에 인상률을 제시하고, 공급자 단체들은 마지못해 해당 인상률을 수용하거나 결렬을 선언한다.

하지만 결렬은 선언적 의미만 가질 뿐 실제로 수가 협상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 공단이 최종적으로 제시한 인상률은 공급자 측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이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공급자 단체가 다양한 근거를 기반으로 인상률을 제시하는 의미가 무색할 수밖에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협상 테이블에 앉지만 사실상 최종 결정은 재정소위가 내린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올해 수가협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틀에 걸친 협상에서 공급자 단체와 공단 측이 마주 앉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유형별로 6차 혹은 그 이상 협상을 진행한 곳도 있었지만 협상 매차수 마다 걸린 시간은 길어야 10분에 그쳤다. 짧은 경우는 채 1~2분도 지나지 않아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공급자 단체도 있었다. 나머지 시간동안 공급자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장장 16시간 30분이 소요된 수가협상 대부분의 시간은 결국 재정소위에 할애됐다. 협상의 키를 쥔 재정소위에서 얼마 만큼의 밴드를 수용하느냐는 절대적 요인이었다.

이에 의료계에서는 가입자로 구성된 공단 재정운영위원회에 공급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필수 의협회장은 수가협상 시작을 앞두고 있었던 공단과의 상견례에서 “공급자가 배제된 재정위에서 밴드를 설정한 후 명목만 협상인 ‘제로섬 게임’ 방식의 수가 인상률 통보가 이뤄지고 있다”고 수가협상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다른 나라들에 비해 부족한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율 인상 등 수가협상 외부에 있는 요인들을 통해 변화를 도모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무늬만 협상’인 현재의 수가협상을 협상다운 협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수가협상은 ‘밤샘’과 ‘버티기’ 끝에 공급자 단체들이 볼멘 소리를 하는 ‘재방송’이 매년 반복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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