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5.04.14 06:47최종 업데이트 15.04.1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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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해서 질문 좀 하시지요?"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송형곤 응급의료센터장

 

필자는 지방의 의료원에 근무하고 있는데 2013년 의사협회 대변인으로 근무할 시절에 공공의료기관인 진주의료원의 일방적인 폐쇄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그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의료는 공공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치료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역할을 전국의 공공의료기관인 지방의료원들이 해 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공공의료기관을 일방적으로 없애는 것은 정말 신중히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의료기관 뿐 아니라 여타의 공공기관이 그러하듯이 고용의 유연성이 배재된 상황에서 공공성을 강조하게 되면 그 조직이나 기관은 효율과는 거리가 먼 조직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고용의 유연성과 공공성을 모두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야 하는데 것이 문제이다.

 

그런데 이러한 고민 외에 의료원을 힘들게 하는 일이 또 있다.

며칠 전 필자가 근무하는 의료원에 국회예산처에서 2014년 결산관련 자료요청이 왔다.

2011년부터 2014년 까지 국고지원을 통해 구매한 의료기기 60여 종 하나하나에 대한 사용 횟수를 파악해서 보내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보고 필자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고가의 장비를 얼만큼 썼고 그 장비가 비용 대비 얼만큼의 효과가 있었는지 알기 위한 목적으로 그러한 자료를 요청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도별 환자 침대 이용횟수, 전동 수술테이블 이용횟수, 정맥주사용 폴대의 이용횟수를 파악하라는 것은 정말 행정낭비이다.

 

환자가 침대를 몇 번 이용했느지, 수액을 거는 폴대를 몇 번 이용했는지 그걸 어떻게 파악하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필자는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응급카트와 인공호흡기, 제세동기는 이용 횟수에 상관없이 응급진료를 하는 곳이면 반드시 있어야 할 장비이지 적게 쓴다고 없앨 수 있는 장비가 아니다. 이용횟수로 그 효과를 파악할 수 있는 의료장비는 매우 적다.

 

국회가 국민이 낸 세금이 얼만큼 효율적으로 쓰여졌는지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러한 자료를 보내기에 앞서 각 의료장비가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 장비인지, 어떤 치료를 하는데 쓰이는 장비인지 먼저 최소한의 사전 조사를 한 후에 자료요청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의료장비마다 이용횟수가 체크되는 장비가 있고 그렇지 않은 장비가 있고, 또한 1년에 한번 쓰더라도 병원이라면, 사람을 살리는 곳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장비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용빈도의 파악이 필요한 장비가 있고 그렇지 않은 장비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내용을 전혀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이용횟수를 파악하라는 것은 공부 한자 안하고 수업에 임해 전혀 앞뒤가 않맞는 질문을 하는 학생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의료원의 행정인력이 이러한 준비 안된 자료 요구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해당 부서의 간호사나 의사 또한 환자를 봐야 할 시간에 쓰잘데 없는 서류작업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장비 구매의 타당성이나 그 구매 가격의 적절성은 해당 기관이 아닌 다른 의료전문가의 조언을 거치면 간단히 판단할 수 있다.

그러한 방법이 아닌 주먹구구식의 자료 요청은 말도 안되는 분석을 통해 현실과는 전혀 다른 판단을 하는 근거로 쓰일 수 있다.

 

공공의료기관이 민간의료기관과의 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의료기관의 경쟁력은 인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시설과 장비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다.

의료 장비에 대한 투자는 반드시 그 타당성을 검토하여 신속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구입 후 그 장비가 얼만큼 초기의 구입 목표를 달성하였고 환자 진료에 도움을 주었는지 판단하기 위하여 단순 이용횟수를 파악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요즘 정계를 뒤흔들고 있는 성완종 리스트로 인하여 국민들은 정치인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넘어 무관심을 보이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상황이 이 정도인데 정말 국회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을 위한 공부가 아닐까?

 

#공공병원 #국회 #예산 #지방의료원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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