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국가가 환자와 의료진의 의료사고 안전망을 구축하고, 사법리스크 등으로 인한 필수의료 기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사고 배상보험료 지원에 나선다. 이에 의료계에서는 환영의 목소리와 함께 지속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보건복지부는 26일 '필수의료 의료진 배상보험료 지원 사업'을 본격 시작하기로 하고, 11월 26일부터 12월 12일까지 지원 대상 의료진의 소속 의료기관이 배상보험의 가입을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필수의료 의료진 배상보험료 지원 사업은 국가의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배상보험료 지원을 통해 의료진의 배상 부담을 완화하고 환자의 신속한 피해 회복을 지원하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위한 주요 사업이다.
정부는 보험사 공모(10월 27일~11월 11일)와 보험사업자 선정위원회 평가(11월 18일)를 거쳐 현대해상화재보험을 2025년 보험사업자로 선정하고, 기존 공모안과 비교해 보험 가입자의 부담, 보장한도 등 보험계약 내용을 보험 가입자에게 유리하게 확정했다.
보험료 지원 대상자는 ▲병·의원에 근무하는 분만 실적이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소아외과·소아흉부외과·소아심장과·소아신경외과 전문의 ▲수련병원에 근무하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응급의학과, 신경외과, 신경과 소속 레지던트(전공의)다.
전문의의 사업 배상보험은 의료사고 배상액 중 2억원까지는 의료기관이 부담으로 하고, 2억원을 초과한 15억원 배상액 부분을 보장한다. 해당 보험료는 전문의 1인 기준 연 170만원이며, 이 중 국가가 150만원을 지원한다. 의료기관은 연 20만원으로 고위험 필수의료 분야의 고액 배상 부담을 덜 수 있다.
전공의의 사업 배상보험은 의료사고 배상액 중 3000만원까지는 수련병원이 부담으로 하고, 3000만원을 초과한 3억원 배상액 부분에 대해 보장한다. 해당 보험료는 전공의 1인 기준 연 42만원이며, 이 중 국가가 25만원을 지원해 병원은 연 17만원으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국가가 민간 의료기관의 배상책임보험료 상당액(약 88%)을 직접 지원하고, 배상 한도를 기존 통상 1~3억원 수준에서 최대 15억원까지 상향 조정한 것이다.
또한 해당 8개 과목 레지던트가 소속된 수련병원은 기존에 가입한 배상보험이 있을 경우, 보험료 지원과 같은 금액인 전공의 1인 기준 25만원의 환급을 선택할 수도 있다. 11월 10일부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해 환급신청을 받고 있으며 12월 5일까지 신청할 수 있다.
해당 보험에 가입하려는 의료기관은 보험사에 가입신청서와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세부사항은 11월 26일부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현대해상화재보험의 필수의료 배상보험 전용 누리집(홈페이지), 콜센터 상담 전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필수의료 의료진 배상보험료 지원 사업은 전문의 1인당 연 20만원의 적은 비용으로 15억원의 고액 손해배상에 대비할 수 있는 제도로 많은 의료기관이 배상보험에 가입하기를 기대한다"며 "앞으로 충분하고 신속한 피해 회복을 전제로 환자와 의료진 모두를 위한 의료사고 안전망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의료계는 정부의 필수의료 전문의 배상책임 국가 보장 시행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같은날 성명을 통해 "붕괴 직전의 필수의료 현실을 엄중히 인식하고 국가 책임을 강화하려는 정부의 15억원 배상책임 보장 및 보험료 지원 대책을 환영한다"면서도 "단 1년짜리 예산이 아닌 법적 제도화와 형사처벌 특례 병행이 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이번 정책은 의료진의 경제적 파산 위험을 방어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며 "과거 의료사고 책임을 온전히 개별 의료기관과 의사 개인에 전가했던 '자력 구제' 방식에서 국가가 위험을 분담하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전액 국가배상제가 아닌 '보험료 지원' 형태라는 점과 2억원이라는 높은 자기부담금 등 현실적인 아쉬움이 있으나,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해 회원의 안정적인 진료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대책이 현장에서 실효성을 거두고 산부인과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자기부담금 제도 개선 ▲필수의료 지원 법적 보장 ▲형사처벌 면책 포함 등을 보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높은 자기부담금은 동네 산부인과에는 여전히 폐업 선고와 같다"며, 일률적인 자기부담금 제도가 아닌 의료기관 규모를 고려한 유연한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어 "이 사업의 예산은 2025년도 신규 사업 예산(약 50억원)으로 책정된 단년도 사업이다. 의료사고 소송은 통상 4-5년 이상 소요되는데, 예산 사정에 따라 지원이 중단된다면 고액의 보험료와 배상 책임은 다시 의사 개인의 몫이 된다"며 "이번 발표가 단순한 시범사업에 그치지 않도록 필수의료 지원을 법률에 명시해 국가의 영구적인 책무로 정착시킬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특히 산부인과의사회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며 "형사처벌 면책 없는 배상 지원은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하다. 의료계가 겪고 있는 가장 큰 고통은 민사상 배상이 아닌 선의의 의료행위 결과에 대한 형사처벌"이라며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종합보험 공제에 가입한 경우, 중과실이나 고의가 없는 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현재 입법이 지지부지한 상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