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7.10.12 06:00최종 업데이트 17.10.1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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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이용을 가로막는 연명의료결정법

[칼럼] 서울의대 내과학 허대석 교수

의료현장과 법안의 결정시기 불일치에 따른 혼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윤영식 기자]
이십년에 걸친 오랜 논의 끝에 호스피스 제도화 관련 법안이 2016년 초 드디어 국회를 통과해 올해 8월 4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전담하는 병상을 갖춘 입원형 호스피스가 건강보험수가를 본격적으로 적용받기 시작했으며, 집에서 머무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한 가정형 호스피스와 호스피스 팀이 일반병동에 입원중인 환자를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문형 호스피스도 수가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대상 환자도 확대해 말기 암 환자뿐 아니라, 만성간경화,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후천성면역결핍증환자까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호스피스-완화의료 관련법의 미비가 한국에 호스피스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주요인이라고 생각해온 호스피스 관련 종사자들은 이번 법시행이 우리나라 호스피스 제도 운영에 큰 발전을 가져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법과 제도가 시행된 두 달도 안된 현재 호스피스에 직접 종사하는 의료진들은 말기 환자들이 호스피스를 이용하기가 과거에 비해 더 어려워졌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으며, 이것은 호스피스 관련법의 논의 과정부터 예상된 결과이기도 하다.
 
2016년 통과된 법안은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규정을 함께 담고 있는데, 문제는 호스피스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적용한 반면, 연명의료결정은 임종에 임박한 시기에 이루어지게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연명의료를 유보한다는 결정을 한 뒤 호스피스를 선택하게 되는데, 법안은 호스피스를 먼저 선택하고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은 임종직전에 하도록 정하고 있는 것이 혼란의 원인이다.
 
말기와 임종기를 정확하게 구분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흔한데, 과연 이 규정을 지킬수 있을지 의료진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호스피스-완화의료법의 입법취지는 호스피스 이용을 장려하기 위한 것인데 법이 시행되고 보니 오히려 호스피스 이용을 규제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내년 2월부터 시행 예정된 연명의료결정법이다. 회생시킬 가능성은 없고 단순히 고통받는 기간만 연장시키는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와 관련해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이 법안의 취지이다.
 
기술 집착적인 무의미한 연명의료의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한 임종을 돕기 위해 발의된 연명의료결정법은 법의 악용을 우려하는 의료현장 밖 사람들의 주장이 주로 반영돼 결국은 도움보다 규제가 주가 되는 법안이 돼버렸다.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계획서, 호스피스이용 동의서 등의 서식을 직접 작성해야 하고, 환자 본인의 의사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환자 가족 전원 합의와 담당의사와 전문의 2명의 확인을 요구하는 법안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신이 임종에 임박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관련서식에 서명하는 국민이 1%도 되지 않는 현실과는 큰 괴리가 있다.
 
중환자의 임종 시기는 담당의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연명의료 적용 여부를 불과 몇 시간내에 결정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 2명이 나서서 가족관계증명서를 확인하고 모든 가족의 동의를 받기에는 매우 어려운 시간이다. 과거의 가족 개념이 무너지고 1인 가구나 2인 가구가 전체가구의 50%를 상회하고 있고, 보호자 없이 혼자 병원을 찾는 중환자가 늘고 있다.
 
서식은 많아지고 의사 처벌규정까지 있다 보니, 연명의료를 하는 편이 차라리 편하다는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 의료 현장을 외면한 입법 만능주의로 인해, 법의 취지와는 반대로 오히려 연명의료가 조장될 가능성도 다분히 있다.

말기환자의 연명의료결정은 환자입장에서 무엇이 최선인지에 대하여 환자를 직접 간병하는 보호자와 의료진이 상의하여 결정하고, 복잡한 서식을 배제한 선진국입법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의료기술 발달의 부작용으로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고통을 받아야 하는 임종 환자와 가족을 돕기 위한 법을 기대했으나, 현실을 외면하고 규제로 가득 찬 연명의료결정법은 우리 모두를 잠재적인 범법자로 내몰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의료인과 그 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 원래의 입법취지와는 반대로 의료인들은 방어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고 말기 환자들의 호스피스 이용은 더욱 어려워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칼럼 # 허대석 # 호스피스 # 완화의료 # 연명의료결정 # 연명의료결정법 # 호스피스의 날

윤영식 기자 (column@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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