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2.15 06:10최종 업데이트 23.12.1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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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서 대동맥박리 진단 못한 의사, 대법원도 실형 선고…"잠재적 살인자 된 응급의학 의사"

흉부 CT 추가검사 안해 환자 뇌병변 발생,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의료계 "응급의료 종사자 이탈 초래할 것" 강력 반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대법원이 응급실에서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한 의사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이번 판결이 향후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붕괴와 응급의료 종사자들의 이탈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하며 반발하고 있다.

14일 대법원이 업무상과실치상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시 응급의학과 전공의였던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최종 선고했다.

응급실 내원 환자에 흉부 CT검사 등 추가 진단검사 안한 것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판단

앞서 원심인 서울고등법 역시 A씨에게 업무상과실치상과 의료법 위반 유죄를 인정한 바 있다. 

사건은 당시 전공의였던 의사 A씨가 2014년 9월 11일 안면부 감각 이상과 식은땀, 흉부 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내원한 환자에게 심전도와 심근효소 등 검사를 실시했으나 별다른 이상 소견을 확인하지 못해 해당 환자를 경증인 '급성위염'으로 진단하면서 시작됐다.

A씨는 환자에게 진통제만 투여한 채 퇴원 조치를 했는데, 같은 날 해당 환자는 대동맥박리로 양측성 다발성 뇌경색을 일으켰다. 가족들은 A씨의 오진으로 환자가 뇌병변장애가 됐다며 민사 소송에 이어 형사 사건으로도 기소해 A씨에게 책임을 물었다.

원심 재판부는 A씨가 피해 환자에게 발생한 흉통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흉부 CT검사 등 추가적인 진단검사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특히 A씨는 B씨가 퇴원한 지 13일이 지난 뒤 미비기록을 경과기록서에 작성했는데, 여기에 A씨는 환자 보호자에게 간헐적 통증으로 흉부 CT 검사에 대해 설명했다고 기록했으나 이에 대한 진술이 보호자와 엇갈린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보호자가 해당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로 상당한 의학지식이 있었기에 A씨로부터 흉부 CT 검사 권유를 받았다면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며, 퇴원계획서에 '경증의 의학적 문제만 있는 환자, 치료 후 상태 호전 시 귀가'라고만 기재돼 있어 A씨의 경과기록서가 허위 사실을 기재했다고 봤다.

결국 재판부는 A씨가 흉부 CT를 실시하지 않아 B씨의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해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상실하게 한 것이 B씨의 악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고, 자신의 업무상 과실을 숨기기 위해 B씨에 대한 진료기록부에 허위 사실을 기재했다며 죄질이 불량하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응급실에서 완벽하게 환자 진단 요구는 '비현실적'…환자 살리려는 의사 '잠재적 살인자' 됐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즉각 성명서를 내고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라며 "매일 환자들의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현장에서 노력하는 전국의 모든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잠재적 살인자이니 지금 당장 우리 모두를 먼저 처벌하라"고 강력 반발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응급실은 응급처치를 시행하는 곳이고, 대동맥박리와 같이 진단하기 어려운 병을 100% 완벽하게 찾아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검사했으면 진단할 수 있었다는 논리는 응급실 현장을 전혀 모르는 사법부가 결과가 나쁘면 의사가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투사한 잘못된 예단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의사회는 특히 "응급실은 진단하지 못해도 치료부터 하는 곳이고, 외래나 후속진료로 환자들을 연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판결대로라면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료진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환자가 나빠지면 무조건 범죄자가 될 수 밖에 없다"며 "향후 연간 100만명이 넘는 흉부관련 증상을 가진 응급환자들은 모두 CT촬영을 해야 할 것이고 그 결과 진료비의 폭증을 불러올 것이며, 대동맥박리 수술이 불가능한 병원에서는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환자를 거부해야 할 것이다. 상급병원의 과밀화와 방어진료가 더욱 심화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특히 의사회는 법으로 의학적 진단기준을 정하는 사례는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다며 향후 모든 책임은 사법부에 있다고도 강조했다.

의사회는 "단지 진단검사를 시행하지 않았다고 민사소송에서 배상을 받았음에도 다시 형사소송으로 전공의 1년차를 10년간 소송의 굴레를 씌우고 결국 면허를 취소하게 만드는 것이 지금 이 나라의 사법정의라고 주장한다. 생명을 살리는 보람이 아닌 진료 중 사망하면 감옥에 가는 전공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료계는 그간 필수의료 의사 부족 사태가 의료 사고에 대한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이 크다고 설명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완벽하게 환자를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사에게 형사처벌을 한다면 우리나라 필수의료는 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의사회는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는 직업으로, 절대 완벽할 수 없고 특히 응급의학과는 응급상황에서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매일 다루고 있다. 의도를 가지고 타인을 해치는 형사범죄와 의료행위 중 발생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동일하게 취급되는 현재의 상황이 너무나도 개탄스럽다"며 "과도한 법적 책임과 무리한 판결이 우리나라의 필수의료를 죽이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둔 채 과연 어떻게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것인지 그 진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의사회는 사법부와 정부당국이 진정으로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싶다면 응급의료행위의 적절성은 법원의 판단이 아닌 전문가적 견해를 바탕으로 판단돼야 하며, 응급의료 제공 시 형사책임 면책을 위한 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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