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5.12.08 05:23최종 업데이트 15.12.08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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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유행 통제를 위한 정보공개 윤리 원칙

이 글은 제주의대 배종면(예방의학교실) 교수가 2015년 11월 대한보건연구 41권 4호 pp. 15~20에 게재한 논문으로, 저자의 양해 아래 게재한 것입니다. 

[2015년 메르스 유행에서 감염병 유행 통제를 위한 정보공개와 관련한 공중보건 윤리 원칙들 정립]

 

Ⅰ. 서론

예상치 않은 감염병의 유행은 지역사회에 위기를 가져온다.
 
2015년 5월 20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환자가 첫 진단된 이후 한국 사회는 공중보건학적 위기에 빠졌다.
 
예상 밖으로 전파력이 높은 상황이 전개되면서 세계보건기구는 5가지 이유-보건의료 당국의 MERS에 대한 경각심 부족, 병원내 감염 대응 미흡, 부적절한 응급실 진료 상황, 의료쇼핑의 의료서비스 남용, 불필요한 문병 방문–를 제시하였다.

이중 국가적인 재난위기로 번지게 된 가장 주된 이유는 첫 감염자를 제때 격리 치료하지 못한 상황에서, 방역당국이 초기에 투명한 정보공개를 하지 못한 것이다.
 
방역당국이 감염자가 입원치료를 받은 의료기관명을 초기에 공개하지 않은 이유로 “일반 주민들이 이들 병원을 외면하여 병원 측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비공개로 인하여, 의료인들은 감염원과 밀접접촉을 한 대상자들에 있어 자가격리 조치를 능동적으로 할 수 없었고, 일반인들도 정보 비대칭으로 불신과 공포가 증폭되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권선택 대전광역시장, 남경필 경기도 도지사, 안희정 충청남도 도지사는 6월 7일 "메르스 차단을 위해 서울·대전·경기·충남 등 메르스 발생 지자체와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중앙-지자체간 실무협의체를 구성하겠다"며 "지자체와 보건당국의 역할분담, 정보 공유를 통해 메르스 퇴치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첫 확진 진단 후 19일째인 6월 7일에 의료기관명을 공개하였다.

반면 성남시는 MERS 1차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의심환자의 직장과 거주지, 자녀가 다니는 학교 실명 등 개인정보를 사회연결망(SNS)에 공개하였다.
 
그런데 관련 당사자들은 다음날 2차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이에 대하여 대한의사협회는 ‘병원과 환자 관련 정보를 환자를 진료할 의무가 있는 의료인에게 줘야한다는 것이지 모든 사람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처럼 MERS가 지역사회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환자 및 의료기관의 정보 보호 차원과 방역조치를 위한 정보 공개 차원 간에 충돌이 생겼고, 이에 따라 사회적 갈등이 있었다.
 
이는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 유행했을 때, 개인정보 보호(privacy), 자유 보장(liberty), 공중보건 수호 의무(the duty to protect the public health)의 3가지 윤리적 가치(ethical values)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하여 환자 찾기(detection), 환자 격리(isolation), 밀접접촉 건강인 자가격리(quarantine), 감시신고(notification) 등이 이루어져야 하는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관련 정보들의 공개 결정에 관련한 윤리 원칙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 원칙들의 정립을 통해, 정보공개를 둘러싼 두 가지 상황을 평가하여, 향후 피할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을 없애고, 불필요한 피해를 줄이는 것이 본 논고의 목적이다.
 

Ⅱ. 본론
 
1. The Faden-Shebaya framework

1979년 발표된 벨몬트 리포터(Belmont Report)는 4가지 의료윤리 원칙–자율성(Autonomy), 선행(Beneficience), 악행금지(Non-maleficence), 정의 (Justice)-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감염병 유행이 생길 경우 방역감시로 인해 개인 정보 보호(privacy)가, 환자 및 건강격리로 인해 개인의 자유 존중(liberty)이, 강제적 조치로 인해 개인의 자율성 (autonomy)이 각각 침해될 수 있다.
 
Phua는 앞서 4가지 원칙은 환자-의사간의 관계개선을 위한 개인 차원의 윤리원칙이며, 감염병 유행인 경우 공중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Faden-Shebaya 체계의 9가지 원칙처럼 사회 차원의 윤리 원칙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9가지 원칙들에 따르면 사회 전반의 이익이 된다면(overall benefit to society),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해도(liberty-limiting continua) 방역에 관련한 다각도의 조치(collective action)를 적극 추진할 수 있다 (paternalism)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조치가 개인에게 신체적, 정신적, 물질적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하며(harm principle), 사회로부터 낙인(stigmatization)되어서는 안된다(social justice)는 점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방역당국의 병원명 비공개는 사회 전반의 이익을 위해 다각도의 조치를 적극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선 문제가 된다.
 
굳이 비공개의 이유를 원칙에 따라 해석하자면, 해당 병원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환자들이 해당 병원을 낙인 시킬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방역이 성공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투명성(transparency)과 신뢰성(trust)을 상실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공개로 인하여 MERS와 무관한 의료기관들이 피해를 받았고, 어떤 병원이 문제가 되었는지를 모르는 일반 환자들은 정상적인 병원진료를 미루는 혼란이 생겼기 때문이다(social justice).
 
또한 국제적으로 정보교류가 안되면서 인근 국가 간 갈등까지도 생겼던 것이다(global justice).

한편, 1차 검사 양성으로 의심자 상태에서 성남시가 개인정보를 공개한 것은 개인에게 신체적, 정신적, 물질적 해를 끼쳤으며, 사회로부터 낙인이 되도록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공개를 한 것은 사회전반에 이익이 되며, 방역을 위한 다각도의 조치를 적극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들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다.
 
그러나 성남시가 최종 판정이 나기 전에 개인 정보를 공개하였고, 그 다음날 음성으로 최종 판정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공개를 둘러싼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불필요한 위해를 방지하고 낙인을 만들지 않도록 한다는 윤리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truthabouttrade.org 홈페이지에서 사진 인용


2. 선제적 대비 원칙(The Precautionary Principle)

새로운 댐을 건설할 경우 주변 환경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유전자변형농산물(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등을 판단할 때처럼, 불확실성 (uncertainty)이 큰 경우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위협에 대비하여 지역주민을 보호하는 원칙이다.
 
감염병 유행의 공중보건 위기 상황이라면, 공중보건의 안전 보장(security)을 위하여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관련한 방역활동을 강구하는 것이다.
 
MERS 141번 양성 확진자가 잠복기 동안 제주도를 여행한 것이 뒤늦게 확인되었을 때 잠복기 동안은 감염력이 없다는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방역당국은 이 원칙을 적용하여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감시활동을 벌인 것이 그 예에 해당한다.
 
반면, 중앙방역본부는 MERS가 지역사회로의 확산이 없다는 가정을 우선시 하면서, 선제적 대비 원칙을 적용하지 못한 것이 국가적 위기를 부르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초기대응의 실패원인은 병원명 미공개보다는 선제적 대비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 원칙을 적용할 때는 개인에 대한 낙인, 집단 따돌림, 생존력 훼손 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2003년도 SARS 유행시 최소 제한, 사회정의, 투명성을 견지하면서 이 원칙을 적용하였다.
 
반면 성남시의 개인정보 공개는 해당 원칙을 적용하여 지역 주민들이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음성 확진을 받은 자와 그 가족에 대한 불필요한 낙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원칙 적용의 오용으로 볼 수 있다.
 

3. 시라쿠사 원칙(The Siracusa Principle)
 
WHO는 1984년 4월 30에서 5월 4일간 이탈리아 시라쿠사에서 가진 회합에서 인권 보장을 위한 국제사회 원칙을 결정하였다.
 
주된 내용은 국가의 조치가 타당하더라도, 인간 존엄(human dignity)과 자유(freedom)는 존중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행정당국의 제재 조치는 불합리하거나 강요되어서는 안 되며, 최소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감염병 유행시 환자 및 건강 격리조치는 가능하다면 자발적인 동의하에서 최소한의 제한이 이루어지며, 격리 동안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개인의 자유를 억제하는 조치를 취하려면 위험 회피 원칙(harm principle)을 우선 고려하고, 상호호혜 (reciprocity)에 따라 자발적 구속에 있는 개인을 사회는 지원해야 한다.

이렇게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최소한의 제재 조치가 이루어 져야 한다는 시라쿠사 원칙에 따르면, 성남시의 개인정보 공개가 실제로 방역에 도움이 되었는가?란 질문에 합당하게 답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1차 검사 후 하루 만에 최종 결과가 나오는 상황에서, 최종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공개한 것은, 불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혼란과 불신을 가져와서 공공선(public goods)에서 유해하였다.
 
즉, 위험회피 원칙을 우선시 하지 않은 것이 된다.
 
또한 자녀의 학교명까지 공개했다는 것은 '최소한의 조치'를 벗어나는 것이다.
 

Ⅲ. 결론 및 제언
 
감염병 유행은 개인과 공중간의 이익 충돌을 필연적으로 야기한다.
 
더군다나 신종 감염병 유행일 경우 의사결정에 있어 불확실성을 가지면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취하는 방역 조치 내용들은 공중보건학적 근거에 따라 효과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조치 결정에서 꼭 견지해야 할 윤리 항목은 공중보건 위험에 있어 지역사회와의 소통(Risk communication)을 통해 투명성과 신뢰성을 갖고 선제적 대비를 하면서도, 개인의 존엄성 확보와 상호 유대를 지켜내는 것이다.
 
즉, 방역조치를 위해서는 근거(evidence), 효과(effectiveness), 윤리 (ethics)란 ‘3E’를 확보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향후에 있을 감염병 유행을 대비하기 위하여 보건의료 체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이들 윤리 원칙들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15년 MERS 유행에서 일어난 병원명 비공개와 1차양성자 개인정보 공개에 있어, 공중보건 윤리 원칙, 선제적 대비 원칙, 시라쿠사 원칙의 잣대로 검토해 보았다.
 
두 상황 모두 윤리 원칙에서 벗어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로부터 얻은 교훈이라면, 위기 상황에서 윤리 원칙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합당하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의사결정을 위한 윤리 체계를 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MERS 사태로 대한보건협회가 맡게 된 새로운 시대적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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