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1.12 21:28최종 업데이트 23.11.1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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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사 개인 판단에 의사 형사소송 '실형'...필수의료 위기 이대로 괜찮나

소장폐색 환자에 보존적 치료한 의사에 '실형' 선고에서도 감정의 의견, 재판 결정에 '결정적' 역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필수의료 의사들이 고난도 고위험 환자들을 기피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로 '형사 처벌'의 두려움이 꼽히고 있다. 

선의의 의료행위여도 좋지 않은 결과를 이유로 의사를 형사 고소하고 사법부도 이에 동조해 해당 의사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며 더욱 필수의료 의사들의 불안과 위축이 심해지고 있다. 

형사 소송은 범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으로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목적인 만큼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범죄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하지만 '의료'는 전문 의학 지식이 있어야 판단이 가능한 만큼 재판부의 판결에 감정의사의 의견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소장폐색 환자에 보존적 치료를 한 의사가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 역시 재판부가 '감정의사'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면서 유죄 판결이 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의료 사고 시 의사의 업무상주의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해당 사건에서도 의사들마다 본인의 경험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해당 의사의 과실 여부를 다르게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의료계는 의학적 전문지식이 없는 사법부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감정의에게 의존하는 만큼, 감정을 할 때 개인의 경험만이 아닌 동료 의사의 종합적 의견 검토 과정을 거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장 괴사로 소장절제술한 환자…환자 측 민사 승소 후 형사 소송 제기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8월 31일 대법원이 소장괴사로 소장절제술을 해 신부전 등 후유증을 앓게 된 환자가 해당 의사를 상대로 민사 소송에 이어 형사 소송까지 제기한 사건에 금고 6개월 집행유예 2년형을 확정 판결했다.

의료계는 악결과만을 문제 삼아 의료인의 과실을 형벌화하는 경향이 고착화된다며 반발했고, 외과계를 비롯해 의료계 전체가 우리나라의 의료사고 형사처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해당 사건은 이미 2018년 2월 환자 측이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2019년 원고 일부 승소로 사건이 확정 판결을 받았음에도 2020년 재차 의사를 상대로 형사고소를 진행해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이 별도로 진행된 사례였다.

사건은 54세 여성 환자인 A씨가 2017년 11월 21일 발생한 복통으로 응급실에 내원하면서 시작됐다. A씨는 우측 난소 거대 낭종을 절제한 과거력을 갖고 있는 환자로, 응급실 내원 후 내과에 입원해 CT 검사를 받아 닫힌창자막힘(closed loop obstruction, 장 폐쇄) 소견으로 외과로 전과됐다.

외과로 전과된 이후 A씨는 경제적 이유 등으로 본인 스스로 보존적 치료를 원했고, 의료진 역시 과거력의 상황을 고려해 보존적 치료를 실시했다.

당시 A씨는 간헐적 두통과 미열 증상을 보였으나 염증 수치가 상승하다 감소하는 추세였고 선홍색의 변을 봤으나, 외과 의사인 B씨는 항생제 투여 및 치질약 처방 등 보존적 치료만 시행하고 추가 CT 등은 지시하지 않았다.

결국 입원 8일째부터 A씨에게 혈압 감소, 빈맥, 염증 수치 상승 등의 소견을 보였고, B씨는 A씨에게 응급으로 유착박리술 및 소장 부분절제술을 시행해 괴사된 소장 80cm를 제술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A씨는 회복하다 수술 9일 뒤 의식 저하, 혈압 85/55mmHg, 산소포화도 80%로 떨어져 심폐소생술을 시행했고, 회복된 후 시행한 복부 CT 검사 결과 복강 내 농양이 발견돼 2차 수술(복강내 세척술) 후 중환자실을 거쳐 회복해 병원을 퇴원했다.

A씨는 수술 이후 패혈증 소견으로 급성신부전가 발생했고, 회복된 이후에도 약간의 신장기능이 감소된 상태였다. A씨와 보호자 측은 치료과정에서 불만을 갖고 의사 B씨를 상대로 민사 소송 및 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외과 의사의 '보존적 치료' 결정, 환자 피해와 인과관계 규명이 핵심…감정의 '의사 과오' 의견 제출

해당 소송의 쟁점은 의사 B씨가 환자의 교액성 장폐색으로 인한 소장괴사를 의심하지 않은 채 보존적 치료만 한 것이 실제 환자의 피해와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였다.

이에 대해 의사 B씨는 CT 검사 결과 처음 입원했을 때 교액성 장폐색이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나 소장 괴사를 시사하는 증상이 없었고, 닫힌창자막힘이라고 해서 무조건 수술을 해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환자 A씨는 보존적 치료 이후 통증의 정도가 많이 완화됐고, 통증의 빈도 역시 간헐적이며 입원 4일째부터 백혈구 수치, 아밀라아제 수치 등도 정상 범위였고, 염증수치(CRP) 또한 감소 추세였다.

B씨는 A씨에게 혈변 증상이 나타났다고 해도 다른 검사 수치가 정상이거나 회복되는 추세였고, 변 색깔이 선홍색인 것은 괴사가 나타나는 검붉은색 변과 구별되며 호전되는 양상이었다. 이에 적정한 수술 시기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입원 8일째까지 항생제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염증수치(CRP) 등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으며, 입원 중 수술을 고려해야 할 부분이 보였음에도 추가 CT를 찍거나 하는 등의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고 B씨의 과실을 지적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진료기록 감정의는 감정의견 및 법정 증언을 통해 "닫힌창자막힘은 장관의 양쪽이 모두 막혀 있는 상황으로 장관의 교액성 변화가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다"며 "닫힌창자막힘은 교액성 장폐색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경과도 빠르기 때문에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감정의는 또 "교액성 장폐색으로 진행하는 소견으로는 복통 양상 변화, 빈맥, 발열, 소변량, 압통이나 반발통, 혈액검사소견으로 이러한 증상이 보이면 바로 수술적 치료를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감정의가 "장이 죽어가면서 염증반응에 의한 틍증만 있으면 통증 정도가 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백혈구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고 CRP 수치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 것은 항생제 때문이고 소장 괴사 등이 있다 하더라도 아밀라아제 수치는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주장, 재판부는 이를 반영해 B씨의 주장을 무력화했다.

감정의는 법정 증언을 통해 "장폐색의 경우 상태를 면밀히 보면서 장을 자르기 전에 폐색된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외과의사의 목표다. 그 시점을 정확히 할 수 없어 장폐색으로 장을 자르는 수술을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장이 괴사돼 천공된 상태까지 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그 환자가 응급실에 내원해 찍은 CT 결과를 보았다면 나는 바로 수술을 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역시 진료기록 감정의견을 통해 "혈변이나 CRP 수치 증가 소견을 보이는 시점에서 수술적 치료를 고려했어야 한다"며 "수술시기가 지연돼 피해자에게 장천공 및 복막염, 패혈증, 소장 괴사 등이 발생한 것으로 사료된다"고 기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감정의는 피해자에게 난소 낭종 제거라는 복강 내 수술 과거력이 있는 점, 단지 외과 전과 이전에도 복통과 미열, 빈맥, 높은 염증 수치를 보인 적이 있다는 사실 및 혈변이 지속되지 않은 사실 등만을 들어 장폐색으로 인한 소장 괴사일 가능성이 없다고 과신했다"며 "이에 나머지 입원 9일째, 유착박리술 및 소장 부분절제술 수술치료를 할 때까지 의사가 환자에게 항생제 투여 및 치질약 처방 등 보존적 치료만 지속해 악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재판부는 의사의 오판으로 환자의 소장 괴사의 범위 및 그에 따른 피해가 확대되지 않도록 장관절제술을 일찍이 시행하지 못한 업무상 과실이 있다며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해 확정됐다.

형사소송의 엄중함 고려해 개인 감정의 대신 집단 감정을 통해 전문성, 객관성 갖춰야 주장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료계에서는 죄의 유무를 결정 지어 피고인에게 처벌이 가해지는 형사 소송에서만큼은 전문적인 감정의사가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 의견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아닌 종합병원, 대학병원 개인 의사, 그 밖의 사설 유료 감정업체 등이 감정을 하는 경우 동료평가 등의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모 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이번 판결의 자문의사는 환자 상태를 파악했을 때 곧바로 수술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지만, 이 적절한 시기를 판단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며 "의사마다 경험이 다르다 보니 판단이 달라질 수 있으며 누가 옳았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당시 상황에 비춰 내린 의사의 전문적 판단의 적절성 여부를 감정의 1인의 의견만을 반영해 무 자르듯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사실 감정 업무라는 것이 굉장히 부담되고 힘든 일이다. 의사 개인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업무상 과실 여부를 가리는 형사사건의 경우 감정을 맡길 때 전문학회 내 집단 지성을 활용해 다양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한외과학회도 의료 감정을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으로 일원화해 보다 전문적인 감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교육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대한외과학회 제75회 추계학술대회 ACKSS2023에서 학회 의료심사이사인 경희의대 외과 송정윤 교수는 "의료소송은 복잡하고 중대한 케이스가 많기 때문에 별도의 교육을 받지 않은 개인 감정의가 단독으로 감정을 할 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단독으로 감정을 할 경우 편견 등이 걸러지는 절차가 없기 때문에 취약점이 있다"며 의료 감정을 제공할 때 동료 평가 등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외과학회 의료심사위원인 한림의대 외과 신동우 교수도 "미국 사법제도는 의사에게 형사 책임을 물으려면 원칙이 있다. 고의적이거나 무모하게 의료 행위가 이뤄졌는지가 입증돼야 형사 소송이 발생하는데, 우리나라는 너무 쉽게 형사 소송이 진행되는 것이 문제다"라고 우려했다.

신 교수는 "의사는 누구나 의료 감정을 할 수 있지만 감정이 판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충분한 교육을 받고,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감정을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의견을 밝혔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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