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6.09.26 04:09최종 업데이트 16.09.26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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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협회의 변화를 기대하며

이제 충분히 망했으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칼럼] 배산메디칼내과의원 김홍식 원장

ⓒ메디게이트뉴스
 
의사협회는 우리나라에서 설립된 지 가장 오래되었고 회원 규모도 가장 큰 사단법인이다. 의료 분야가 사회 근간이며 의료를 행하는 의사는 다른 인력으로 대체할 수 없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에 의사협회의 사회 영향력은 대단할 것이다.

하지만 실재 의사협회의 모습은 완전 딴판이다.

정부 정책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고 한의과와 치과 등 다른 분야에서 고유 영역을 침범해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단법인인 의사협회가 왜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일까? 오늘 칼럼에서 의사협회의 모습을 조명해보기로 한다.

의사협회의 위상이 지금처럼 실추된 배경에는 의사협회와 정부의 관계가 좋지 못한 점이 작용했다. 단일 공보험으로 운영되는 의료제도에 관리자인 정부와 공급자인 의사는 갈등할 소지가 많다. 경제지표에 비견할 수 없이 낮은 의료수가를 책정한 것도 의정관계를 악화시켰다.

의사들은 정부의 정책을 신뢰하지 않지만 정부로부터 진료비를 받을 수밖에 없으니 공권력에 눌리면서도 마지못해 끌려가고 있다. 의사협회가 정부의 압력으로 힘을 쓰지 못하자 시민단체도 의사협회의 발목을 잡았다. 보건의료 이슈마다 의사협회와 반대 주장을 하면서 의사협회를 공격했다. 시민단체는 의료를 공공재로 보았고 의사들은 의료를 자본주의 서비스로 생각하니 의료에 대한 근본 인식부터 달랐다.

그뿐 아니라 언론과 방송도 의사들에게 불리한 보도로 일관했다.

의료 공급자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이 곧 국민의 부담과 피해로 이어진다는 우려에 의해 의사협회는 사회의 공적처럼 각인되어 버린 것이다. 단일 공보험 의료제도는 관리자가 공정하지 않으면 공급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의사들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의료공급자를 고립시키고 초저수가로 의료체계를 유지하면 국민에게 유리할까?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의사들은 원가 이하의 수가로 의료기관을 유지할 수 없으니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의사들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분야로 몰려가서 우리나라를 성형공화국으로 만들었고 외과, 산부인과, 내과 같은 필수 의료분야 의사들이 수익성 없는 자신의 전문과 진료를 버리고 비급여 진료로 뛰어들었다.

이런 현상은 전문 인력이 낭비되고 국민의 의료 이용에 문제를 일으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간단한 외과수술이나 임산부 분만조차 전혀 받을 수 없는 지역이 늘어만 갔다. 정부가 뒤늦게 위축되어가는 전문분야의 수련 의사들에게 매달 보조금을 지원하며 부양시키려 했으나 저수가로 발생한 문제를 수가현실화가 아닌 편법으로 해결하려니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힘겹게 전문분야를 고수하는 의사들은 박리다매 진료로 버텨야 했다.

OECD 국가 평균 의사 한 명이 하루 18명의 환자를 진료하는데 비해 우리나라 의사는 하루 60명 이하의 환자를 진료하면 개업의는 파산하게 되어 있다. 의사들은 주마간산으로 환자를 진료할 수밖에 없다. 이는 오진 위험이 있어 국민들에게도 손해이다.

의료 공급자의 손발을 묶는 것은 의사만의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국민에게 피해가 가는 것이다.

의사는 다른 인력으로 대체할 수 없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료가 왜곡되어 국민들에게 피해가 나타나도 정부는 이를 바로 잡을 능력이 없다. 의사협회가 하루빨리 제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의사들은 개별적으로 뛰어난 지능과 판단력을 가진 장점이 있지만 이런 장점도 조직적으로 단결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지도부가 결정한 것을 회원 각자가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에 따라 개별 행동하기 때문이다. 자기인식이 강한 의사 회원들을 조직적으로 이끌려면 지도자가 회원보다 높은 수준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회원을 설득해야 가능한데 의사협회 지도자들이 해내지 못했다. 현재 상황에서 보면 사회적으로 고립된 의사협회에 희망이 없어 보인다.

의사회원들이 의사협회 무용론을 언급하고 있고 회비를 납부하지 않는 등 조직 와해의 조짐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12만 명의 의사를 대표하는 유일한 법정단체인 의사협회를 회생시킬 수 있을까? 이 난제에 대해 필자가 해결책을 제시할 순 없지만 오랜 기간 의사협회를 지켜보며 느꼈던 소회를 바탕으로 의사협회에 필요한 변화를 적어보려 한다.  

우선 필요한 변화는 의사협회의 '내실화(Substantiality)'다.

지금까지 의사협회가 정부의 정책에 끌려 다닌 것은 의사협회가 의료정책에 너무 어두웠기 때문이다. 미래를 대비하는 장기 전략이 없고 의료정책에 관한 매뉴얼도 없었다. 정부의 정책 변화에 의사협회의 대응이 매번 늦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가 의약분업이나 포괄수가제(DRG 지불제도) 도입을 추진할 당시 의사협회의 대응이 늦은 이유도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의사협회의 정확한 판단과 결단이 부실하니 회원들만 정부안 수용여부로 갈등했다.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하여 합심하여 정부 정책에 맞서도 힘든 판국에 단합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정부의 의지대로 의약분업과 DRG 지불제도는 도입되었고 결과적으로 의사들이 힘들어졌다.

필자가 의약분업 관련 강연을 하러 가면 지금도 의사들은 선택분업이 어떤 것인지 질문한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의료 정책에 대해 너무 무지한 것이다. 건강보험제도를 관리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건강보험재정 지출을 억제하고 국민에게 많은 혜택을 주려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정부가 정책목표에 치우쳐 지나치게 의료를 통제하면 이를 막을 단체는 의사협회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협회가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나라를 불문하고 논의된 의료제도들을 모두 조사하고 심의하여 의사협회의 입장을 미리 규정해두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이 의사협회의 정책 매뉴얼이 된다. 매뉴얼을 구축하면 임원의 오판을 줄일 수 있고 누가 회장이 되건 의사협회의 정책에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정부에 앞서 의료정책에 우위를 점함으로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려 할 때 사전에 의사협회의 노력으로 정책을 수정하는 계기도 만들 수 있다. 매뉴얼 구축은 결국 의정협상에서 우월한 조건을 주는 것이다. 의사협회의 구조조정도 필요하다. 단순 업무 인원은 업무 전산화로 줄이고 제도, 법규, 정책, 행정 분야는 인원을 더 늘려서 전문인으로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 매뉴얼을 구축하고 구조 조정을 통해 의사협회를 내실화하는 작업이 가장 먼저 필요한 변화다. 

두 번째 필요한 변화는 의사협회의 '조직화(Systematization)'이다.

민간단체가 공권력을 가진 정부와 대립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제도에는 정권의 정책 목표와 행정부의 자존심이 달려 있다.

더군다나 의사협회는 언론, 방송, 시민단체 등의 우군 하나 없이 고립되어 있어 더욱 힘들다. 그나마 의사협회의 힘이라면 의사는 다른 인력으로 대체할 수 없는 전문인이란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의사들이 결집하면 사회가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이 생긴다. 정부도 의사들의 단결된 집단행동이 가장 부담스럽다. 저수가를 고집하는 정부와 대립하려면 의사단체에 조직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현재의 의사협회는 전문인 단체라기보다 친목단체에 가깝다. 임원선거 및 회계감사 등 내부적인 일에는 매우 적극적이지만 정작 중요한 제도, 법규, 정책, 행정 등의 문제 해결에는 능력이 떨어진다.

지도자나 임원에 대한 검증 시스템도 없고 조직 관리의 기준도 없다. 협회를 운영하기 위한 정관 및 규정만 붙잡고 씨름하며 정작 의사 권익 보호에 필요한 기초적인 준비는 부족하다. 20년 가까이 대정부 투쟁을 펼쳤다.  

하지만 기초적인 투쟁 매뉴얼조차 없다.

어떻게 투쟁을 결정하며 투쟁에 돌입하면 어떤 과정으로 전개할 것인지 규정한 로드맵도 없이 투쟁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늦었지만 조직화를 위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반의사회로부터 의사협회 집행부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달리하여 회원 참여를 올릴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회원 하나하나 접촉하여 설득해야 한다.

의사협회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믿을 구석이라곤 회원의 결집 밖에 없다. 하루 수십 명만이 찾는 의사협회 게시판으로 중지를 모을 수 없다. 최근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SNS나 메일링으로 회원에게 접근하고 있지만 회원들이 관심가지지 않는 의사회 동정이나 회의결과를 전달하는 수준으로는 회원 참여를 바라기 어렵다. 회원이 배고파하는 정보는 자신들이 몸담은 의료환경의 현재와 미래 모습이다.

최근 이슈인 정책과 법규가 무엇인지 그리고 행정과 제도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실시간으로 빠른 정보로 얻고 의사단체의 대응과 전망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나아가 지도부나 동료의사들과 부담 없이 의견을 주고받는 상호 교감의 장을 원하는 것이다. 인프라 없는 장치를 만들어 놓고 회원 참여도만 탓하는 것은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조직화 못 한 의사협회는 극소수 지도자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하는 '저들만의 리그'가 존재했다. 다수 회원의 요구에 반하는 결정을 내려놓고는 뒤늦게 자신의 사견을 회원들에게 주입시키려는 어리석은 지도자가 적지 않았다. 지도자는 자신이 일반 회원들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중지를 모으고 자신의 사견과 정반대 결정이라도 중지로 내린 결정을 공식 입장으로 정해야 한다. 이것은 의사협회가 조직화 되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세 번째로 회원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위기의식(Sens of crisis)'과 '동질감(Sense of belonging)'이다.

적지 않은 의사들이 현재의 상황을 안일하게 인식한다.

하지만 정부가 밀고 가는 통합수가제가 확대되고 동일 군 질환에 대한 중복진료가 제한되면 의사들의 마지막 자구책인 박리다매 식 진료마저 통하지 않게 된다. 그 날이 오면 하루 100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해도 파산을 면키 어렵다. 특별한 기술을 보유한 의사만 살아남을까 박리다매 진료에 의존했던 다수의 의사들은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환자 수로 버티는 지불제도는 언젠가 무너지게 되어 있다. 개원의사가 무너지면 병원의사, 교수까지 전 직역의 의사들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처우를 받게 될 것이다. 정체된 인구증가에 비하여 한해 3,600명씩 과도하게 쏟아지는 의사도 현재 의사들에게 큰 부담이다.

수가현실화가 필요하다.

이것은 이루기 힘든 목표가 아니라 의사들이 살려면 반드시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이뤄야 하는 절박한 것이다. 의사협회는 회원들에게 현실을 제대로 전달하고 의료정책연구소의 기능을 재정립하여 수가 현실화의 당위성과 수가지불제도 변화에 대비하는 명분과 자료를 내놓아야 한다.

의사들에게 '동질감(Sense of belonging)'도 필요하다.

정부가 의료제도를 타이트하게 관리하자 의사들은 각자도생하며 서로를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보고 있다. 소집단으로 나뉘어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다. 전문과별로, 직역별로, 심지어는 연령별로까지 쪼개져 갈등한다. 의사들이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동질감이 없으니 대응 방안도 일치하지 않아 갈등한다. 회원 동질감도 없이 협상이니 투쟁이니 논란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의사들이 내분하여 정부는 의료 정책을 운용하기 수월했고 의사협회는 정부에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의사협회가 내실화되고 조직력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원들이 동질감 없이 반목하면 미래 희망은 없다. 의사들이 동질감으로 결속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사협회의 노력이 중요하다.

의사 회원들은 설득하기 어려운 존재가 아니라 어려움에 처해 있음에도 딱히 도움 받을 곳이 없는 딱한 처지임을 인식하여 열린 마음으로 진솔하게 다가가서 같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회원의 눈에 지도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치면 의사는 몰락한다. 지금 의사를 구할 자는 의사 자신들 뿐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동료들과 동질감을 갖는 것부터 미래의 희망이 시작된다.  

의사협회가 회생하는데 필요한 몇 가지를 언급해 보았다. 이론은 필자가 주문한 것 이상 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실천이다.

위의 요건을 실천하는데 지도자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회원들은 새로운 집행부가 출범하면 즉시 전지전능한 능력을 발휘해주길 바라지만 집행부에 들어간 임원들 역시 일반 회원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의사일 뿐이다. 평소 남다른 식견을 가져 임원이 되었다고 해도 실전에 부딪쳐보면 밖에서 보이지 않던 난제들이 발목을 잡곤 한다. 더러는 의사협회에 임원이 되면서 이전과 사람이 달라졌다며 오해를 받기까지 했다.

12만명의 의사를 대표하는 의사협회가 회장 혹은 몇몇 지도자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친목단체 수준을 넘지 못한다면 의사들에게 미래는 없다.

2000년 의사파업 이후 여러 지도자들이 의사협회를 거쳐 갔지만 대부분 회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도 조직적인 대응보다 인물에 의존한 대응을 하였기 때문이다. 조직력이 없다보니 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의사협회의 정책이 달라지며 일관성이 없었다. 16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우리는 전문인 단체의 기초도 갖추지 못한 채 불세출의 영웅만 기다린 것이다.

의사의 미래를 도모한다면 몇 사람의 판단에만 매달렸던 의사협회를 버려야 한다.

대의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의원회가 집행부의 회무와 회계를 감시하는 수준에만 머물러서는 의사협회를 바꿀 수 없다. 대의원회에서 새로운 의사협회로 거듭나기 위한 논의가 없다면 희망을 찾기 어렵다. 의사협회 개혁을 위한 새로운 기구가 필요하기보다 개혁을 하고자하는 의지를 가진 회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의사협회를 변하게 할 수 있다 생각한다.

2000년 의사파업 이후 16년이 흘렀다.

짧지 않은 16년을 우리가 어떻게 보냈는지 반성해보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절박함이 느껴질 것이다. 의사협회가 멈춰 섰던 지난 16년은 대한민국 의사 전체의 책임이었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두려운 것은 16년 뒤에 또 다시 오늘 같은 반성을 하고 있을 건 아닌지 하는 불안감이다.

오래전부터 동료 의사들은 '의사들은 더 망해야 정신 차린다'는 자조 섞인 말을 자주 했다. 이젠 충분히 망했으니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의사협회의 변화를 기대하며 글을 접는다.   


 

본 칼럼은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의사협회 #의약분업 #김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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