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5.07.21 06:14최종 업데이트 15.07.21 06:20

제보

이젠 진짜 재미없다…공보의

[독자 이야기] 3가지 지겨움

공보의 생활 이제 1년 4개월째...

같은 지소에 2년째 있는 바람에 내 생활은 전혀 변화가 없다...

변화가 있다면 계절에 따라, 농사철에 따라 바뀌는 환자수...

지겹다, 지겹다, 지겹다...




'눈앞의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게 내 삶의 신조이고,

얼마나 힘들게 얻은 지금의 자리인데, 어영부영 대충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진짜 어지간하면 싫증을 잘 느끼지 않는 나이지만...

지겹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할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는데, 맨날 고혈압, 당뇨, 감기 재처방이나 하고 앉아있고,

배운 내용들이 서서히 기억 속으로 사라질 때, 나는 과연 살아있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ㅜㅜ

비록 3년의 복무가 끝나고 다시 대학병원으로 갈 것이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나이 들어 있고, 머리에 든 건 없고,

나태함만 가득할 것 같아서 무섭다...ㅠㅠ

지겨움에 대해 구체적으로 풀어 쓰면,


1. 변하지 않는 환자...
의료취약지역 보건지소의 특성상 고령의 만성질환 환자들이 많다. 고혈압, 당뇨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만성질환 병들은 약을 잘 드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생활습관 변화가 중요하다.

쳐 지나가는 공보의 입장에서 약만 줘서 보내면 끝이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올 때마다 열심히 생활교육을 한다.(물론 70대 이상의 고령환자분께 꼬박꼬박 규칙적인 운동을 하라는 것은 넌센스이다.) 

운동은 힘들어도, 적어도 식습관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드린다.

문제는 전혀 듣지 않는다는 거...

심지어 거의 90%가 내가 했던 말을 기억 못한다...

그리고 동네에서 들은 유언비어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

슬프다..

2. 변하지 않는 요구...
일년이 넘도록 일관되게 요청 받는 것이 바로 대리처방.

빠서 시간 없으니 동네사람 대신 보내고, 부모나 자식이 대신 와서 약을 달라고 한다. 

에 약이랑 똑 같은 거 그냥 주면 되지 왜 안되냐고 화를 낸다..

당연히 안된다. 

대리처방은 의료법상 불가일뿐더러, 사람의 몸은 항상 상태가 바뀌는데 무엇을 근거로 약을 그대로 준다는 말인가...

아무리 설명하고 교육해도 인식이 잘 안바뀌는 것 같다.

그래도 대리처방은 절대 불가하고 vital은 꼭꼭 체크한다.

중복처방도 엄청나다. 읍내나 다른 병원에서 진료받아 처방 받고, 다시 보건소로 온다. 

다른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이 맘에 안든단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약의 성분이 같다... 

성분이 같은 약은 처방된 기간이 다 지나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처방이 안된다.

예를 들어 타이레놀을 3일분 처방 받으면 그 3일이 지나야 다시 타이레놀을 처방 받을 수 있다.

아마 예전에는 안그랬던 것 같다. 

중복처방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받으신 약 다 드시고도 안 나으시면 다시 오시라고 소리 높여 설명해도, 돌아오는 건 욕...

날엔 해줬는데 지금은 왜 안해주냐며, 그냥 좀 해줘~협박 아닌 협박을 받는다...

나라 법이 그렇다고 설명해도 자기는 안걸린다(?!)면서 괜찮단다...

걸리고 안걸리고 문제가 아니라, DUR에 떠서 아예 처방을 할 수 없다니깐요ㅜㅜ


그리고 주사 주사 주사....

여기 사람들은 주사를 너무 즐긴다ㅜㅜ

감기도 주사, 속 안좋아도 주사, 잠이 안와도 주사, 밥맛 없다고 주사...

우리 지소에는 NSAID는 없고, 페니라민, 덱사, 에피, 알기론 정도만 주사가 준비되어있다...

그야말로 필요한 환자에게만 주고 있다.

감기나 심각하지 않은 질병이라도 배운 대로, 다른 큰 병의 가능성을 생각해서 문진하고 약을 처방한다.

그러나 본인들은 주사를 맞지 않으면 뭔가 덜 치료받았다는 생각이 든단다. (과거에는 ‘주변 미용실에서 파마, 염색 후 보건소’ 라는 코스가 있었다. 싸고 독한 저질의 파마약, 염색약을 사용해서 두피에 접촉성 피부염이 생겨 소양감이 생기는데, 보건소 가서 주사한방 맞으라고 자연스럽게 그랬다고 한다..물론 나는 안준다.) 

이건 진짜 보건진료소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된다.(보건진료소란 보건지소보다 더 의료취약지역에 있는 진료소인데, 상주하는 공중보건의사는 없고, 간호조무사 출신의 행정직원이 약주고, 주사 주고 한다..특히 NSAID 계열의 진통제를 엄청 남용하고 있다.)

00보건진료서에서는 약도 주고, 주사도 주고, 달라는거 다 주던데 여기는 왜 그러냐? 라는 말을 들으면 힘 빠진다...

도대체 나는 여기 왜 있는가...





3. 가끔 오는 진상환자...
여기도 일종의 서비스업종이라 진상을 부리는 환자는 있다.

약을 더 처방해달라거나 부작용 등의 컴플레인은 자제하고, 정성 어린 설명을 통해 잘 극복하고 있다. 

런 분들은 설명을 들으면 납득하고 돌아간다.

그러나 더러 말이 안통하는 사람이 있다..아니 많다...

대리처방, 중복처방 등의 문제로 설명하면, 귀가 안들려~하거나, 멍 때리거나 하면서 안듣고 있다가, 결국 다시 똑같은 말을 한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2~3번 더 설명해도 역시나 벽보고 이야기하는 거....ㅠㅠ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하고 안된다고 하면 화를 낸다...

나도 언젠가 늙어서 노인이 되겠지만 저렇게 될까 두렵다...

마지막으로 최악의 케이스...

신질환자 혹은 알콜리즘...

골에는 의외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꽤 많다.

가볍게 말해서 동네당 한 두명은 있다고 봐야 한다. 한달에 한두 번은 꼭 온다. 

어떤 사람은 얌전히 진료받고 처방 받고 돌아가지만,

진짜 최악의 환자도 있다. 

정신지체에다가 알콜리즘에 무면허 음주운전, 전과 등등 화려하다. 

근데 이 환자는 올 때마다 시비를 건다. 소리지르고, 욕하고 그것도 이유 없이...

그래서 이 환자가 올 때마다 옆 파출소에서 경찰아저씨를 부르지만 사실 경찰도 딱히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동네의 골칫거리인 것이다. (늘 술에 절어서 경운기나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데 정말 위험하다...)

나는 아직 마음공부 덜된 혈기 넘치는 열혈남아라서 이 환자를 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아직은 잘 참고 있는데, 우리 지소 여사님들 위협하고, 밥 주는 고양이들 위협할 땐 정말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었다.

스트레스다....ㅠㅠ


휴~~~ 삶의 넋두리도 참 길다.

메르스 때문에 고생하신 의료진 분들이나 큰 병원에 있는 선배들, 동기들 입장에선 공보의가 안좋다고 말하면 안된다...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앞으로 더 큰 세계에 나가서 진료하고 공부하면 지금보다 더 어려운 일이 많을 테니 미리 연습하는 것이고,

장차 더 미래에 내가 개업을 하게 된다면 그때 어떻게 진료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중이라고...


은 시간이 또 하루하루 지나간다...

빨리 시간이 지나가고 대학병원으로 가고 싶다...ㅠㅠ


#공보의 #메디게이트뉴스 #성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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