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오는 12월 24일 비대면진료 본사업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추가로 처방을 제한할 의약품을 보건복지부 고시로 정하도록 남겨두면서 진료과별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비대면 초진 환자의 처방일수를 원칙적으로 7일 이내로 제한한다. 다만 해당 질환의 진료·처방 이력을 확인하고 의료인이 기존 치료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한 차례에 한해 최대 30일까지 처방할 수 있도록 했다.
마약·향정신성의약품과 오·남용 우려 의약품, 비만치료제는 비대면진료를 통한 처방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이 가운데 희귀질환자 등의 치료에 필요한 마약·향정신성의약품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예외적으로 처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밖에 오·남용이 우려되는 의약품은 복지부 장관이 고시로 추가 지정할 수 있다. 어떤 성분과 품목을 제한할지, 초진과 재진에 같은 기준을 적용할지 등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진료과별 비대면진료 시 제한을 요구한 약 목록
진료과마다 다른 제한약 요구…탈모약부터 인공눈물·응급피임약까지
가장 구체적인 제한약 목록을 제시한 곳은 대한피부과의사회다. 피부과의사회는 ▲경구 이소트레티노인 ▲경구 탈모치료제 피나스테리드·두타스테리드 ▲경구 미녹시딜 ▲전신 스테로이드 ▲고역가 국소 스테로이드 ▲경구 항진균제 ▲전신 면역조절제 등을 비대면 초진 처방 제한 대상으로 제시했다.
임신 중 노출 위험과 전신 부작용, 검사·추적관찰의 필요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르는 스테로이드도 처방일수뿐 아니라 약물의 강도와 적용 부위, 총량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가 플랫폼에서 약의 종류와 수량을 먼저 고른 뒤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방식에도 반대했다.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는 ▲전정억제제 ▲이명 치료제 ▲스테로이드 복합 점이액 ▲항생제 점이액 ▲비강분무제 ▲전신 항생제를 비대면 초진 처방 제한 대상으로 제시했다. 이 가운데 전정억제제와 이명 치료제, 스테로이드 복합 점이액은 재진에서도 처방을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의사회는 고막과 비강, 인후두 등을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다른 질환을 놓치거나 항생제·스테로이드가 불필요하게 처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한 대상 의약품은 처방전 발행 단계에서 자동으로 차단하고 우회 처방도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한안과의사회는 히알루론산나트륨 점안제를 비대면 초진 처방 제한 대상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복지부에 전달했다.
일부 플랫폼에서 환자가 '인공눈물 6통 이상'처럼 처방 수량을 먼저 선택하는 사례를 문제 삼았다. 안구건조 증상만 듣고 인공눈물을 반복 처방하면 다른 안과질환을 놓칠 수 있는 만큼, 특정 제품과 수량을 환자가 먼저 정하는 진료 구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응급피임약과 임신중지 의약품을 비대면 처방 금지 목록에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응급피임약을 처방하려면 임신 가능성과 기존 복용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하고, 임신중지 의약품은 복용 전 임신 주수와 자궁외임신 여부, 복용 후 경과를 확인해야 한다는 이유다.
다만 기존 진료관계가 있는 환자의 호르몬 치료까지 일률적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고 봤다. 의료기관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는 지속적인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고위험 의약품과 만성·지속 치료제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과·가정의학과 “처방이력 못 보면 제한약 늘려도 한계”
대한내과의사회와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는 별도의 처방 제한약 목록보다 초진 30일 처방 예외와 처방정보 확인체계의 공백을 우선적으로 문제 삼았다.
내과의사회는 의료기관 간 처방 이력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적 전산망이 없는 상태에서 과거 처방 이력만으로 최대 30일 처방을 허용하면 환자가 의료기관을 옮겨 다니며 받는 중복처방을 막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혈압·당뇨병·이상지질혈증 치료제와 탈모약 등은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을 이용하더라도 개별 의사가 전체 처방량을 파악하기 어렵다.
내과의사회는 “타 의료기관 처방 이력을 실시간 조회할 공적 전산망도 없이 초진 30일 처방을 열어준 것은 약물 쇼핑을 방치하는 꼴”이라며 30일 처방 예외를 삭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정의학과의사회도 과거 처방 이력만으로 현재 환자의 상태를 판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만성질환 치료제를 계속 처방하려면 최근 혈압과 혈당, 검사 결과, 약물의 효과와 부작용 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의학과의사회는 “과거의 처방 이력이 현재의 환자 상태를 보증하지 않으며, 처방의 연속성이 곧 진료의 연속성을 의미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처방 제한 목록을 확대하는 것과 별개로 객관적인 건강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대면진료로 전환하고, 구체적인 전환 기준을 하위법령에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같은 '처방 제한' 요구지만 판단 기준은 제각각
진료과별 요구를 종합하면 비대면진료 처방 제한약을 판단하는 기준에는 차이가 있다.
피부과와 산부인과는 태아 위험과 전신 부작용, 대면검사의 필요성을 근거로 구체적인 의약품을 제시했다. 이비인후과는 직접 진찰하지 않으면 진단을 놓칠 수 있는 질환의 치료제를 문제 삼았고, 안과는 플랫폼이 환자의 의약품 선택과 대량 처방을 유도하는 구조에 주목했다.
내과와 가정의학과는 특정 성분을 제한하더라도 의료기관 간 처방 이력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다면 중복처방과 약물 쇼핑을 막기 어렵다고 봤다.
각 진료과 개원의사회를 아우르는 대한개원의협의회도 초진 30일 처방 예외와 제한약의 범위를 핵심 쟁점으로 꼽았다.
박근태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진료·처방 이력을 확인하려면 환자가 소견서나 처방전, 건강검진 결과지 등 관련 자료를 의료인에게 제시해야 하지만 실제 진료 현장에서 이를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개협은 회원들에게 비대면 초진 환자에 대한 30일 처방을 자제하도록 권고할 예정이다.
박 회장은 “오·남용 우려 의약품의 범위가 너무 넓다”며 “고시가 마련되기 전 정부는 의료계와 협의해 초진 처방 제한약을 어떻게 정할지 결정해야 하며, 이를 위해 협회 내부에서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복지부가 정해야 할 것은 금지약 목록만이 아니다. 제한할 성분과 제형, 초진·재진별 적용 범위, 처방 단계의 차단 방식, 예외 요건과 대면진료 전환 기준까지 구체화해야 한다.
진료과마다 제한이 필요하다고 보는 약물과 판단 근거가 다른 만큼, 고시 마련 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조율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