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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속된 시험, 경주마와 다름 없는 의사의 삶 한국형 호모 이그재미누스(‘Homo Examinus’)

    의사로서 전문 직업성 발휘하도록 전공의 교육 과정 손질해야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기사입력시간 19.07.16 07:10 | 최종 업데이트 19.07.16 07:1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경주용 말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길러진다. 오로지 빨리, 그리고 오래 잘 달릴 수 있도록 특화되어 길들여지고 사육되는 것이다. 물론 아무 말이나 경주용 말이 될 수는 없다. 날 때부터 어느 정도의 신체적 조건을 갖춰야 하고, 성격도 주인의 지시에 순종하는 말이어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요구되는 조건으로는 순간적인 상황 판단이 뛰어나야 하고, 적당한 경쟁심도 있어야 한다.

    ‘좋은 말’의 신체조건이나 명성에 걸 맞는 ‘족보’가 있으면 몸 값은 순식간에 수직 상승 할 수 있으며,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말은 종마로써 그 역할만 잘해도 말 소유주에게는 막대한 이득을 안겨줄 수 있다.  

    좋은 말은 훌륭한 기수가 서로 잘 만나 어울려야 올림픽 마상경기와 같은 큰 경기 출전이 가능하다. 좀처럼 후진국은 말을 이용한 스포츠나 경기에서 메달권 진입도 쉽지 않다. 선수의 훈련에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경마 종목의 뒷바라지를 위한 재벌의 의지와 전직 대통령의 비리로 최근 정치사를 더럽게 얼룩지게 했으며, 그 후유증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의사 진입로 바늘구멍, 초등학교시절부터 극한의 학습과정 밟아야 가능성 보여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부터 열성적인 부모와 선생님에 의해 특별 관리되기 시작해 성적이 매우 뛰어난 학생이 되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학년을 뛰어 넘는 선행학습과 각종 방과 후 사교육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중,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여서 의과대학 입학을 위해서는 전교 1등을 해야 비로소 입시 가시권에 들어온다고 한다. 여하튼 의과대학에 들어올 수 있는 학생은 매년 3050명으로 정원이 한정되어 묶여 있다. 

    옛날에는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지금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천자문을 떼고 기본적으로 몇 편의 유교경전을 익히며 학문이 뛰어난 인재는 16세쯤에 과거급제 했다고 국가적인 화제의 대상이 됐다. 훗날 재상이나 정승 길에 올랐다는 이야기들이 내려오고 있다. 양반이라는 특별한 계급을 유지를 위해서는 최소 4대 내에 과거급제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양반가의 자제들에게 과거시험이라는 굴레를 씌우게 했고, 이런 전통은 지금도 형태를 달리 할 뿐 기본적인 시험체제의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의사나 법조인은 영어로 ‘learned profession’로 표현된다. 우리말로 하면 ‘배운 사람’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학문에 종사할 사람이 아님에도 긴 세월의 수학기간을 거쳐야 하는 직종을 의미한다. 지금도 고등학교 졸업 후 가장 빨라도 의과대학 6년, 인턴 1년, 전공의 4년에 추가로 세부전문의 1~2년, 그리고 군의관 복무까지 마친다면 고교 졸업 후 어림잡아도 약 16년은 지나야 비로소 한 분야의 전문의가 되는 것이다. 법조인에 비해서도 길고, 우리사회에서 가장 긴 시간의 수학과정을 밟고 있다. 

    돌이켜 보건대 의과대학만 졸업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았던 초년병 시절에 알고 보니 끝도 없이 새로운 수준에서 시작을 반복해 다음 단계만 끝나면 다 해결될 것 같아도 여전히 끝없는 시작의 연속이었다.

    일부 특수기능이 요구되는 의사는 전문의 취득과 연구박사의 분리를 통하여 혹은 의과대학과 치과대학, 의과대학과 법과대학이나 전문 경영인 과정, 윤리학박사 등을 취득해 소위 ‘학생 전문 학생’ 신분으로 지루하고 힘든 피교육생의 경로를 지난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는 수학한 만큼의 경제적 보상이나 지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최종 과정 후에 실제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진정한 세계에서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을 종합해 그 능력을 발휘하는 과정이 남아 있으며, 이 과정이야 말로 특화된 전문가로서 진정한 신세계를 맛볼 수 있는 진입로와도 같다.

    선진국 등 장기 수학 직종 개인 부담이 아닌 국가 투자 지원 대상 

    선진국이나 과거 공산권 사회에서는 이처럼 오랜 기간의 수학이 필요한 직업에 대해서는 개인이 아닌 국가에서 직접투자를 해 수학기간에 필요한 대부분의 재원을 투입했다.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의사양성을 국가비용으로 감당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가가 사회를 대신해 전문직을 양성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특화된 전문가들이 중요한 이유는 현대 사회를 이끌어 가는 데는 전문직이 필수적이며, 이들이 추구하는 바는 곧 사회적으로 중요한 ‘보편적 가치’로 창출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수학을 통해서 의과대학생이나 법학전문대학원생이 추구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학문적 수월성이다. 수월성 없이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수월성의 추구가 자칫 지나친 경쟁 심리로 발전할 수도 있다.

    영어에서 ‘practice’란 단어는 의사나 법조인에게 사용되는 단어로 그 의미 속에는 서양철학의 좋은 삶에 대한 인식인 ‘수월성 추구’가 포함돼 있다. 다시 말해, 의학과 법학 모두 1차적으로 내적인 재화(goods)인 수월성을 추구하면 부차적으로 외적인 재화인 자격, 신분, 돈, 힘, 시험합격, 면허취득 등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구조를 갖는 특수한 직업으로 설명하고 있다. 

    동, 서양의 차이에 있어 우리의 문화에 10세기 이후 자리 잡은 과거시험의 문화는 지금도 무늬만 다를 뿐 내용면에서는 유사한 형태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듯하다. 수월성의 추구에 있어 동, 서양이 서로 비슷하나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시험에 통과하는 순간부터 일사천리로 엄청난 외적 재화의 추구를 당연시했으며, 내적 재화의 추구인 ‘수월성’에는 다소 많은 차이를 보인다.

    동, 서양을 비교할 때, 개인주의적이면서 늘 혁신을 외쳐대는 서양문화에 비하여 우리가 전수받은 동양권 문화에는 과거급제 이후의 삶이 급속도로 안빈낙도와 유유자적함 등 안락함을 극대화하는 삶의 가치가 혼재된 채 영향을 미쳤다. 

    유난히 수학기간이 긴 의사들에게 더욱 무거운 짐은 학문이 빠르게 바뀌어 학생시절에 배웠던 지식이 이미 한물 간 ‘고물지식’이 되는 개연성이 매우 높은 직업이라는 사실로 의사는 평생 자기개발을 통해 지식과 술기에서 시대적 동시성을 확보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재미없고 엄청난 의과대학 교육과정 속에서 학문적 재미나 흥미, 호기심 보다는 유급이나 국가시험 탈락보다는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전략이 우선이었고 의미 없이 외워야 하는 지식도 부지기수였다. 그나마 이것도 잊어버리기 위한 학습이어서 일부 선천적으로 타고난(?) 모범학습자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의대공부가 재미있거나 부담이 가벼울 리가 없었다. 너무나 많은 학습량은 여유 있는 사고나 깊이 있는 사고를 요하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시험통과를 위한 정보수집과 단기간 기억력에 의한 생존이었다. 

    고도의 전문교육 받아도 수련과정 입문 시 ‘잡일’부터 낭비적 요소 많아 

    이런 의과대학 생활이 지나면 건설현장의 단순노무자와 같은 인턴생활을 거쳐야 한다. 의사로서의 고등 인지 능력 시험과 적절한 직무가 주어져야 하는데, 아직도 인턴교육은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개선된 급여와 전산화된 의무기록으로 속칭 ‘잡일’이 많이 줄었으나 과연 고졸 후 7년째 하는 공부에 어울리는 과정인지는 아직도 회의적일 때가 많다. 정확하게는 몸으로 때우는 의학교육의 한 과정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전공의 교육은 이제 본격적인 의국의 일원이 돼 소속감이 분명하고 의국과 교수님에게 충성을 다하기로 맹세한다. 일본의 졸업 후 교육에서 일단 입국을 하게 되면 이른바 ‘입국 식’을 거행한다. 우리나라도 입국 식을 하게 되면, 교실 전체 교수와 동문 등이 모여 큰 규모의 회식을 비롯해 때론 음주가무의 행사도 빠지질 않는다.

    일본의 동료가 보여준 입국 식 사진은 주임교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근엄하게 술을 한잔 올리고, 한잔 하사받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을 연상하게 됐다. 영화에서 본 일본의 야쿠자나 사무라이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의식문화가 현대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일본에서 사무라이가 의술을 공부하여 서양식 의사의 효시가 됐을 뿐 만 아니라 경찰, 군인, 법조인 등 전문직 역사에서 사무라이 문화가 전승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사실은 남의 나라 일처럼 보이지만 실상 과거 ‘육법회’ 등 육사출신과 법조인의 모임, 그리고 지금도 보여주는 검찰의 문화나 의료계에 남아있는 의국문화가 결국 알고 보면 ‘후 식민 문화’의 잔영으로 비춰진다. 

    우리나라 현재의 전공의 교육에서 새로 입국한 의국원인 초년병 전공의에게 누가 맹세를 시킨 적은 없다. 그러나 전공의교육이 갖는 수직적 위계질서 속에 초년병 전공의는 의국의 문화와 점차 동질성을 갖게 된다. 문화적 동질성을 찾지 못하면 결국 불행하고 재미없는 전공의생활을 할 개연성이 크다. 이런 가족적 가치에 근거한 집단주의 문화가 전공의교육에서 장점도 있으나 단점도 많이 표출한다. 

    한국형 전공의교육의 요람 ‘의국문화’ 전문직업성 성취와는 거리 멀어

    전통적 의국문화에서 전공의교육기관으로써 의국은 이렇다 할 교육목표가 필요 없었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주임교수를 본받아 상동화하는 것이 일종의 목표다. 아울러 최고의 주임교수나 원로교수의 직무를 수월하게 하도록 열심히 돕는 것이 의국원의 사명이다.

    필자는 동경대학 의국에서 7년 이상 수학한 성형외과 전문의를 전임의로 고용한 적이 있었다. 이후 급증하는 의국의 국제전화 요금이 이상해서 원인 파악을 해본 결과 이 전임의는 지금도 궁금하거나 모르는 게 있으면 수평적 토론이나 상호 논의과정에 의존하기 보다는 일본에 있는 상급자와 상의를 하며 해결책을 찾는 방식을 취했던 것이었다.

    타과 의뢰도 전혀 익숙지 않았다. 타과에 물어 본다는 것을 일종의 자기가 소속한 의국에 대한 수치로 간주하는 문화가 오랜 기간 동안 몸에 배어 있었다. 그리고 신분은 전문의이면서 실제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주임교수가 하는 수술이외는 전혀 실전 경험도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어떤 분야는 우리의 1년차 수준도 안 돼 보였다. 이 같은 현상은 당사자 본인의 무능력 보다는 일본의 의국이 갖는 독특하고 특별한 제도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진정한 전공의교육보다 돈 되는 병원사업에 더 큰 관심과 출혈경쟁이 뼈아픈 현실

    우리나라는 이보다는 전공의 교육에서 최소한 전문과목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임상과별 순환근무나 다수의 수련병원 순환 교차근무로 점차 폭을 넓혀주고 있다. 그럼에도 주임교수나 의국에 대한 개념은 분명하여 전공의교육 기간 내내 모든 관심사는 병원에서의 직무수행과 의국내의 행사로 좁혀진다.

    솔직히 의국을 떠난 병원이나 의과대학 단위의 종합적인 대단위적인 사안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의국과 병원에 대한 충성심의 결과는 여전히 소속 학교나 병원의 발전으로 직결되는 개념이다. 각고의 노력으로 열심히 근무한 덕에 병원의 발전으로 귀결되면서 점차 병원이 대형화되고 현대화 되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이런 노력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단순히 ‘돈 잘 버는 의료사업’ 정도로 인식한다. 병원들도 이 같은 인식에 편승하듯 외형상으로 더 크고 화려한 병원 신축을 위해 의료기관간에 또 대학 간에 무한 출혈 경쟁도 불사하지 않고 있다. 

    이러는 동안에 대형 기관에 소속돼 일을 하는 의사 개인은 의사로서 중요한 가치이자 보다 큰 명제인 삶에 대한 성찰과 의료와 사회 간의 역할, 지구촌의 보건정책과 우리나라와의 관계, 의료와 사회 등 실제 의사로서 삶의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사안은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받을 필요성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의사로서의 여유 없는 삶을 마주하게 한다.

    마치 앞만 보고 들입다 내달리게끔 눈가리개를 씌운 경주마와 같이, 각박한 의업의 현장에서 최적화되도록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표현하여 공부만 잘하고 일만 열심히 하면 의사 개인의 미래는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획일적 사고의 틀에서 형성된 시대착오적 교육의 영향으로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져 체화가 된 듯하다.

    반면에, 전문의를 취득한 나이 정도의 일반 사회인은 이들 보다 색다른 사회적 경험과 다양한 직종과의 왕성한 교류와 근무경험, 그리고 개인의 실속을 위한 사회적 권리추구 등 전공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성숙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이미 선점하는 것이다. 

    피동적 장기 학습자 생활로 주변 상황 인식도 어려워 피폐한 의업 생활의 절규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학습자’ 생활을 오래하여 진정한 의미의 세상에 던져졌을 때 느끼는 것은 심각한 사회적 현실과 의사로서 몸에 밴 학습과 근로 문화에 상충하는 각종 제약에 따른 무기력함과 좌절감의 혼합은 결국 적응하기 어려워 절규하는 의사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앞만 보고 열심히 공부하고 여러 가지 시험을 통과해 세상에 나와 보니 생각한 것과 너무나 다른 세상이 기다리는 것이다. 자신이 전공한 과목으로 생계마저 불가능한 현실과 진정한 의사다운 일로도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의료 현실을 보면서 급속히 변해가는 왜곡된 의료의 정글 속에서 생존의 법칙을 스스로 습득하여 터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유명한 병리학자 Koch는 “넓은 의미의 의학은 곧 사회학이요, 넓은 의미의 사회학은 곧 의학”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 전공의 교육이 좁은 시야의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용 말처럼 키워지거나 인생자체가 시험으로 점철된 속칭 ‘호모 이그재미누스(Homo Examinus)’로 끝나지 않도록 현재의 후 식민 의국주도의 전공의 교육에서 탈피해야만 한다.

    집단주의와 가족적 가치 중심 문화 밖의 진정한 사회 속에서 의료와 전공의가 나타나는 3차원적 좌표를 정확히 파악하고 읽을 수 있도록 지도해 주고, 진정한 삶의 세계로 진입하여 의사의 전문직업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교육 환경의 조성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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