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3.24 09:52최종 업데이트 24.03.2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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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세대 의사의 일시적 수련정지

[칼럼] 안덕선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세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영국은 의사 양성을 위해 의과대학 학부 교육과 졸업후 전공의 교육의 가교역할을 하는 파운데이션 프로그램(Foundation Program)을 운영하고 있다. 파운데이션 1(Foundation 1)은 의과대학 마지막 학년의 실무바탕 임상 실습이고, 파운데이션 2(Foundation 2)는 면허취득 후 시작하는 우리나라의 인턴과 유사하다.

최근 영국의 새로운 새내기 의사들은 파운데이션 프로그램(Foundation Program)을 수료하고 곧바로 전공의 과정으로 진입하지 않고 잠시 수련의 생활을 내려놓고 자유로은 삶을 추구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 GMC(General Medical Council)보고서에 의하면 2020/21 파운데이션 2(Foundation2)를 수료한 후 70%의 새내기 의사는 전공의 과정으로 진입하지 않고 다양한 자유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2012/13년 F2 수료생의 자의적인 수련정지가 38%였던 것에 비하면 훨씬 더 증가한 것이다.

새내기 의사들의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영국 노팅엄 의과대학이 조사연구를 진행했다. 지난 10년간 파운데이션 프로그램을 마치고 곧바로 전공의로 진행하지 않은 40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의 대다수인 87%가 자발적으로 일시적 수련정지를 선택했고 13%는 원하는 전공과목에 진입하지 못해 수련정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수련정지를 통해 자유시간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임상적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의 관심 분야의 추구, 여행 혹은 여가를 즐기기 위한 목적이었다. 수련 중 평가나 프트폴리오 작성, 시험 준비 등 직무와 학업의 짐에서 벗어나 잠시 일상의 변화를 찾은 것이다. 건강을 위한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상태의 개선과 수련으로 인한 소진(burnout)문제의 해결을 포함한 웰빙의 추구도 중요했다.

그리고 의사 이외의 다른 직업에 대한 탐사의 기회를 찾거나 가족이나 결혼생활을 위해 혹은 주택 구입 등 개인적 사유도 있었다. 일시적인 수련정지를 했으나 응답자의 상당수는 의사로서 혹은 채혈사, 돌보미, 품질검사관, 안경점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일시적 수련정지를 통해 자신의 진로에 대한 대비도 더 잘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이 영국 내에서 자유시간을 보냈으나 호주와 뉴질랜드와 같이 해외 진출도 있었다. 

새내기 의사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자유시간에 대해 대부분 매우 긍정적인 경험으로 평가했다. 특히 자신에 대한 생각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4분의 3은 일시적 수련정지가 자신의 직무에 대해 더 긍정적 견해를 갖게 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재조정해 건강과 웰빙을 추구할 수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는 아니나 응답자의 24%는 일시적 수련정지로 인해 경력 발전이 둔화됐고 동료에 비해 뒤처진 생각도 했고 임상 능력이 상실된 느낌도 받았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의과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재수(N수)가 보편화됐다. 30%가 되지 않는 신입생이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진입한 학생이다. 의과대학이 아닌 타대학의 신입생이나 이미 의과대학에 입학한 학생도 더 좋다는 수도권 대학으로 옮기기 위해 반수도 하고 있다. 의과대학 입학도 힘들고 의과대학 교육과정도 학생들이 학업과 삶의 균형이나 취미생활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고등학교 졸업 후 6년이면 면허취득이 가능하나 이제는 70% 이상의 학생은 최소 7년 혹은 그 이상이 소요된다. 개중에는 고졸 후 10년이 넘어야 면허취득이 가능한 경우도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령화 시대를 맞이해 우리나라도 의사의 생애주기를 다시 한번 돌아볼 때가 됐다. 

영국의 경우 이미 시대적 변화는 의학교육이 갖는 직무와 학업의 연속적 부담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 이미 보편화한 것으로 판단된다. 영국은 우리나라와 졸업후 교육에 대한 제도가 달라 전공의에 진입한다고 해서 소속된 기관에서 전공의 4년간 전체 과정을 수료할 수 있는 제도도 아니다. 전공의 연차가 올라가며 항상 빈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우리나라는 영국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을 의과대학 입학에 소모하고 인턴과 전공의, 그리고 공보의나 군의관으로 연계되는 과정이 길어 일시적 수련정지로 휴식기간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합리적인 주장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전문의가 되기 위해 이미 오랜 시간이 소요됐고 의무 복무까지 염두에 둔다면 일시적 수련정지는 낭비적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이런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많은 우리나라의 의사들도 일시적 수련정지에 대한 공감을 하고 있다. 자신들도 사회적 경제적 여건만 주어졌다면 진작 일시적 수련정지를 해볼 수도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의과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은 진정한 의사의 삶이 무엇인지 모른 채 부모나 선생님의 권유로 의과대학에 입학하고 있다. 이런 교육환경에서 한번쯤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위해 일시적 수련정지는 인간적 성장과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정부의 시대착오적 정책 구상이 향후 전공의 계약이 중도 포기나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 강압적 노무 제도로 전환될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영국의 GMC와 같이 신세대의 시대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수련 관련 현상에 대한 기초 조사 연구를 보며 이들이 보여주는 근거 중심의 의료정책 생성의 접근방식은 우리나라와 매우 다르다는 생각도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새 세대의 의사나 의과대학생은 과거에 비해 높은 수준의 자기 주도적 삶을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대적 요구는 의사 양성을 위한 교육과 수련도 학습자의 자기주도적인 설계와 다양한 자유 선택의 기간이 부여되는 유연한 과정으로 변모해야 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 
 
참고문헌 
General Medical Council. 
The state of medical education and practice in the UK. 
Workforce report 2023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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