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알테오젠, 에이비엘바이오, 큐로셀, 오가노이드사이언스 등 국내 주요 바이오기업을 이끄는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K-바이오가 글로벌 경쟁력을 이어가기 위한 다음 과제를 논의했다. 각기 다른 기술로 사업을 시작해 임상과 제품화, 기술수출과 글로벌 진출까지 이어온 과정에서의 선택과 시행착오를 공유하고, 첫 성과를 넘어 다음 성장을 만들기 위한 전략을 제시했다.
28일 2026 글로벌 바이오 콘퍼런스(GBC 2026)에서는 'GBC 스페셜 K-바이오 혁신 리더스 토크'가 진행됐다. 행사의 좌장은 연세대학교 박윤주 교수가 맡았으며, 알테오젠 박순재 의장(회장), 에이비엘바이오 이상훈 대표, 큐로셀 김건수 대표, 오가노이드사이언스 유종만 대표가 패널로 참여했다.
플랫폼은 무조건 성공한다? "시장 타이밍 읽고, 임상에서 증명해야"
글로벌 제약사와 잇따라 기술이전을 추진한 알테오젠과 에이비엘바이오는 '플랫폼' 기술 자체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적절한 시점에 개발하고 실제 임상에서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순재 의장은 현재 알테오젠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피하주사(SC) 제형 플랫폼에 앞서 두 개의 플랫폼 기술을 개발했지만,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언급했다.
박 의장은 "플랫폼 기술을 추구하는 회사가 꼭 성공한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같은 플랫폼 기술이라도 당시 시장이 요구하는 상황에 맞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회를 포착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플랫폼의 기술적 가능성만으로 글로벌 제약사와 곧바로 계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플랫폼을 적용한 제품이 적어도 임상 1상이나 2a상 정도까지 진행돼 실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 뒤에야 다른 제약사의 기술 도입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개발 시점에서 '현재' 시장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알테오젠은 2017년 말 SC 제형 기술 개발에 나설 당시 단백질 치료제가 정맥주사에서 피하주사로 이동할 가능성을 내다봤고, 이후 시장 변화와 개발 시점이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박 의장은 "플랫폼 기술을 개발했을 때 앞으로 4~5년 뒤 시장이 요구하는 상황과 이게 일치하는가를 예측해서 개발해야만 상업적으로 성공한다"고 말했다.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사업화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알테오젠은 경쟁사가 특정 타깃에 플랫폼 사용 권리를 독점적으로 부여했던 것과 달리 여러 제약사가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비독점(non-exclusive) 방식을 선택했다.
박 의장은 이를 통해 동일한 타깃의 의약품을 개발하는 여러 제약사에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는 사업 구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비독점 전략이 모든 플랫폼에 적용되는 해법은 아니며, 기술과 시장 상황에 따라 사업개발 전략을 달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상훈 대표도 플랫폼의 최종 검증 무대는 임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플랫폼 회사가 글로벌 빅파마한테 검증을 받으려면 동물실험이 아니라 실제로 임상에서 좋은 데이터를 보여줘야만 그 플랫폼이 진정한 플랫폼으로 성공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BBB 셔틀을 바라보는 글로벌 제약사의 인식이 바뀐 배경도 설명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에이비엘바이오가 사노피에 기술이전한 2022년만 해도 BBB 셔틀은 있으면 좋은 'nice-to-have' 기술이었다. 하지만 2024년 로슈·제넨텍의 관련 임상 데이터가 나오면서 글로벌 빅파마들이 BBB 셔틀 확보에 나섰고, 'must-have' 기술로 위치가 달라졌다.
이에 이 대표는 기술이전에서는 기술력뿐 아니라 상대 기업이 원하는 포트폴리오와 개발 시점이 맞아떨어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사노피와 계약을 체결하는 데 정확히 1년이 걸렸다"며 "계약이 성사될 듯하다가 다시 멀어지는 과정을 반복했고, 최종적으로는 에이비엘바이오가 제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노피가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언급했다. 이어 당시 사노피가 파킨슨병과 알파시누클레인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점도 계약 성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연구실 기술이 실제 치료제로 이어지기까지…제품화 과정에서 만난 또 다른 벽
연구기술을 제품화, 상용화하는 과정에서는 임상개발 외에도 다른 과제가 뒤따른다. 이에 큐로셀과 오가노이드사이언스는 상업화를 염두에 둔 생산 인프라와 새로운 치료기술을 받아들일 규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건수 대표는 큐로셀이 2016년 창업할 당시 글로벌 관점에서는 CAR-T 개발의 후발주자였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미국 FDA는 2017년 8월 '킴리아(Kymriah)'를 첫 CAR-T 치료제로 허가했다. 이에 큐로셀은 단순히 CAR-T를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차별화된 기술을 더하는 전략을 택했다.
큐로셀은 CAR-T 세포의 면역관문수용체 PD-1과 TIGIT 발현을 억제하는 OVIS 기술을 적용해 기존 치료제의 한계를 개선하고자 했다. 다만 국내에 관련 경험이 충분히 축적돼 있지 않았다는 점은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김 대표는 "국내에서 처음 하는 CAR-T이고 처음 개발하는 물질이다 보니 인력이나 경험이나 인프라나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가 활용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며 "처음부터 차곡차곡 공부해가면서 허가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상업화를 목표한다면, 임상개발과 동시에 생산시설 구축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큐로셀은 임상 1상을 진행하던 단계에서 상업용 생산시설의 설계와 투자를 시작했다. 김 대표는 "당시 임상 1상 단계에서 상업용 공장에 투자하는 것이 이르다는 고민도 있었지만 전체 개발 일정을 고려하면 상업화를 위해 필요한 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임상이 성공한 뒤 생산시설을 준비하는 방식으로는 제품 허가와 상업화 일정을 맞추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는 CAR-T 치료제의 전달 과정과도 연관된다. CAR-T는 일반적인 의약품과 달리 생산 이후 환자에게 전달되는 과정까지 관리해야 한다. 환자의 면역세포를 채취해 공장에서 치료제를 제조하고 이를 다시 해당 환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만큼 제조뿐 아니라 세포 채취부터 생산·공급까지 전체 과정의 안정적인 운영이 중요하다.
김 대표는 "CAR-T는 일반적인 의약품과 다르게 손이 많이 가는 치료제"라며 "환자에서 면역세포를 채취해 공장에서 만들어 다시 환자한테 보내는 전 과정이 굉장히 신뢰도 있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과정을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이며 신뢰성 있게 운영하느냐가 환자의 성공적인 치료와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오가노이드 분야는 새로운 기술의 활용 가능성을 신약개발 현장에 알리는 단계부터 시작했다.
유종만 대표는 불과 3~5년 전만 해도 오가노이드를 신약개발에 활용해보자고 제안하면 제약사들이 기술 자체를 낯설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후 글로벌 빅파마를 중심으로 오가노이드를 포함한 첨단 대체시험법 활용이 확대됐고, 미국 FDA도 이를 규제 체계 안에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구체화하면서 환경이 달졌다.
오가노이드사이언스는 신약개발 평가기술과 함께 오가노이드 자체를 치료제로 활용하는 재생치료제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기존 치료제가 질환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면, 손상된 조직 자체를 복원하는 영역이 향후 새로운 치료기술의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유 대표는 "기존 치료제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손상된 조직이나 장기를 직접 재생시켜줄 수 있는 재생치료제 영역이 결과적으로 마지막 남은 영역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오가노이드 재생치료제를 실제 치료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규제와 생산이라는 두 가지 허들을 넘어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형태의 치료제를 기존 인허가 체계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복잡한 3차원 조직을 일정한 품질로 생산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상업화 단계에서는 복잡한 오가노이드를 일정한 품질로 대량생산하는 것이 과제라고 부연했다. 유 대표는 이를 위해 생산 공정의 자동화와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실제 상업화 단계에 갔을 때는 대량생산이 가능해야 되고, 자동화가 돼야 되고 표준화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개발환경에 대해서는 강점도 있다고 평가했다. 과거 세포·줄기세포치료제를 허가하고 임상을 진행하면서 쌓은 경험과 관련 인프라가 있어 새로운 재생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연세대학교 박윤주 교수, 알테오젠 박순재 의장(회장), 에이비엘바이오 이상훈 대표, 큐로셀 김건수 대표, 오가노이드사이언스 유종만 대표
성과 이후, 다음 과제는?…적용 범위·개발 단계 넓힌다
이어 패널들은 현재 확보한 기술과 사업 기반을 다음 단계로 어떻게 확장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제시했다.
먼저 알테오젠은 SC 제형 플랫폼에 이어 한 달에 한 번 투여하는 장기지속형 제형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박 의장은 기술이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우선 비만치료제에 적용하고 이후 다른 분야로 확장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신규 항체와 새로운 항암 타깃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초기 단계에서 기술을 이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더 후기 임상까지 개발하는 방향을 준비하고 있다.
이 대표는 덴마크 젠맙(Genmab)이 플랫폼 기술이전과 로열티 수입을 기반으로 직접 개발과 상업화 영역을 넓혀온 사례를 언급하며, 에이비엘바이오 역시 파트너사에서 로열티가 유입되면 초기 임상에서 기술이전하던 방식에서 나아가 후기 임상까지 개발한 뒤 기술이전하면서 선급금과 마일스톤, 로열티를 확대하는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BBB 셔틀 역시 기존 기술에 머물지 않고 차세대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항체 전달과 siRNA 전달에 필요한 셔틀의 형태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연구를 통해 2세대·3세대 기술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큐로셀은 현재 상용화된 글로벌 CAR-T와 미국·유럽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기보다 아직 CAR-T 시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지역에서 사업 기회를 찾는 전략을 세웠다. 중동과 남미, 동남아 등 글로벌 CAR-T 기업의 진출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시장을 우선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후속 기술로는 고형암 CAR-T를 개발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고형암 CAR-T 분야에서 많은 실패가 축적돼 있지만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계속 새로운 기술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가노이드사이언스는 신약개발 평가기술과 재생치료제 두 영역을 함께 확대한다. 유 대표는 기존 치료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손상된 조직과 장기의 기능을 직접 회복시키는 영역에서 재생치료제의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 세대 K-바이오, 살아남으려면"…투자·M&A·규제 생태계 숙제로
다음 세대 바이오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기술과 전략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투자·회수시장과 규제 환경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박순재 의장은 국내 벤처캐피털이 투자 후 일정 기간 안에 IPO나 M&A를 통해 자금을 회수해야 하지만 IPO 시장이 어려워지고 국내 제약사의 M&A도 활발하지 않으면서 초기 바이오기업에 대한 투자가 막히고 있다고 진단했다. 투자가 IPO 직전 메자닌이나 전환사채(CB) 등에 집중되면서 위험이 높은 초기기업은 자금조달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에 박 의장은 위험이 큰 초기 단계에는 정부자금이 보다 체계적으로 들어오고 이후 개발이 진전되면 민간투자가 이어지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IPO에만 의존하지 않고 유망한 자산을 중심으로 별도 회사를 만든 뒤 임상 1상이나 2a상까지 빠르게 개발해 글로벌 제약사에 매각하는 뉴코(NewCo) 방식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앞으로 4~5년 이런 식으로 가면 초기 바이오업계가 거의 생겨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며 "초기에 아주 리스크가 큰 분야는 정부가 투자를 하고, 조금 발전 단계로 가면 민간 투자업계가 마중물 역할을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훈 대표도 초기기업보다 이미 성과를 낸 상장 바이오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투자자 입장에서는 위험이 낮고 수익을 확보하기 쉽다며 초기 단계로 자금이 들어갈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형 제약·바이오기업의 M&A가 활발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았다. 이 대표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M&A를 통해 성장해온 것과 달리 국내에는 이 같은 구조가 부족하다며 대형 제약사들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바이오산업의 빠른 성장에 대한 위기 의식도 공유됐다. 동시에 중국의 개발 역량과 인프라를 활용해 협력 기회를 찾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 의장은 "요새 중국을 쳐다보면 너무 두렵다. 발전 속도가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이어 동일한 타깃을 여러 회사가 개발하는 상황을 예로 들며, 국내에서도 특정 분야에 대한 획일적인 '선택과 집중'보다 다양한 기업과 연구자의 도전을 허용하고 투자와 규제 환경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훈 대표는 중국을 경쟁자로만 보기보다 공동개발과 임상역량 활용, 뉴코 설립 등 협력할 수 있는 영역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김건수 대표 역시 CAR-T 관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새로운 기술 상당수가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며, 적극적인 투자와 개발 친화적인 규제환경이 기술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한국도 세포치료제의 임상 진입을 앞당길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