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0.01.07 16:09최종 업데이트 20.01.0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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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평원 전산 심사자료 표준화 강행, 국민 앞세운 재량권 남용이자 폭거

[칼럼] 박상준 경상남도 대의원·신경외과 전문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해 12월 30일자로 ‘요양급여비용 심사·지급업무 처리기준’ 시행을 확정‧안내했다. 앞서 심평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복지부 고시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심사 관련 자료 제출에 대한 세부사항 제정 공고(안)’에 대한 의료계 의견수렴을 진행해왔다. 개정안에서는 요양기관이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심사 자료를 제출하고자 하는 경우 심평원 심사자료 제출 전용 시스템을 통해 심사평가 표준서식·별도서식을 제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도록 했다. 

그동안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가 계획 철회를 요구했으나 심평원은 결국 강행을 결정했다. 의협은 “심평원이 제시한 표준서식 자체는 광범위한 환자의 진료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심사와 무관한 진료의 모든 명세를 제출하라고 했다. 이는 사실상 심평원이 의료의 질 평가라는 명목하에 심사의 범위와 권한을 확대하고 의사에게는 규격화된 진료를 강요하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추후 분석심사에도 이용될 수 있다”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심평원은 처음부터 ‘전산 심사자료 표준화’ 강행을 전제하고 요식적으로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함으로써 의료계를 기만했다. 분석심사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며 뻔뻔스러운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평원이 추진하는 정책 과정을 살펴보면 당위성과 진정성이 결여된 부분에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심평원은 의료의 공공성을 악용해 진료비 심사와 관련해 공급자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수요자인 환자 동의가 없었다. 일방적으로 심평원의 편의와 정보 이용을 위해서만 추진한 ‘전산 심사자료 표준화’ 강행은 국민을 앞세운 재량권의 남용이자 폭거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손님이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 치르는 계산서에는 음식값이 얼만지, 몇 명이 먹었는지, 추가로 주문한 음료수가 몇 병인지 등이 적혀 있고 이것을 기준으로 손님은 비용을 판단하고, 식당 주인에게 값을 치른다. 아무리 손님의 권리가 강화되는 추세라 해도 음식에 들어간 재료가 유기농인지, 어느 시장에서 사들인 것인지, 고기의 부위를 사용했는지 명세서에 어디에도 기록하지 않을뿐더러 손님에게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물론 관심이 많은 손님에게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고, 음식의 비법이 아닌 부분은 공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국가가 나서 식당주인에게 이 많은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전산으로 손님에게 제공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이렇듯 심평원은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발생한 의료비용 지급과 관련해 단지 보험자의 위탁 심사자에 불과한데도 지나친 자료를 요구하고 표준화를 주장하는데,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의사와 의료기관은 환자 진료가 최우선적인 업무다. 그런데도 이렇게 복잡하고 많은 정보를 작성해 제출하기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심평원의 의도를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도를 넘은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현재 의료계는 넘쳐나는 규제와 의무의 강요로 질식하기 직전 상태다. 여기에 더 보태 의사 업무량을 증가시키는 심평원의 ‘전산 심사자료 표준화’에 동의하기 어렵다. 더구나 심평원이 ‘하향 평준화 의료 공급’이라는 정부의 의료 정책 방향성 설정을 위한 도구로 악용할 가능성이 있는 요구를 지속한다면 목표를 상실하고 겉돌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심사와 평가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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