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8.07.30 06:11최종 업데이트 18.07.3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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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품'으로 전락한 전공의

[칼럼]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여한솔 칼럼니스트] 보건복지부가 전국 수련병원에 '외과계 전공의 권역외상센터 파견 시범사업 참여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권역외상센터의 부족한 인력문제를 외과계 전공의를 통해 메꾸는 것을 기정사실로 했다. 필자를 비롯한 전공의들은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증외상센터의 문제를 해결하려 전공의를 개입시키는 바보짓을 하지 말라고 분명히 몇 번이고 글을 쓰고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결국 '시범사업'이란 명목으로 전공의들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복지부는 이 같은 안건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이미 결정된 안건에 대해 애꿎은 넋두리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중증외상환자 수련기회 감소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전공의들을 끌어들인 보건복지부의 얄궂은 꼼수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이를 지적하고자 한다.

5개월 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박인숙 의원이 복지부에 외상센터 지원을 위한 현실적 대안 마련을 지적했다. 당시만 해도 복지부는 외과계 전공의 지원율 하락을 의식해 외상센터 파견 수련시간을 48시간으로 제한하겠다고 공식 서면으로 밝혔다. 하지만 이번 시범사업 공문에는 교묘하게 48시간이 아닌 주 60시간 수련(10시간*6일)으로 늘어나 있었다. 복지부는 48시간에서 60시간으로 늘어난 사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또한 복지부는 파견을 권장하는 취지로 권역외상센터로 3개월 이상 해당 전공의를 2명 이상 파견한 병원에는 외과계(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중 병원이 원하는 1개 과목에 내년도 전공의 정원 1명을 별도로 추가 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상센터의 운영에 필수적인 외과를 일례로 들어보자. 2018년 전공의 모집에서 외과 수련병원 67곳 중 전공의 정원을 모두 확보한 병원은 총 24곳에 불과했고, 전공의를 1명도 확보하지 못한 병원이 17곳이나 됐다. 복지부는 전공의 정원이 부족해서 해당 과에 지원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가 텅텅 비는데도 전공의들이 해당 과에 지원 '안하는' 현실적인 이유를 직시하고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복지부는 전공의 지원 미달의 근본적인 해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해 보인다.
 
필자는 복지부에 이번 시범사업에 대해 3가지 궁금한 점을 묻겠다.
 
첫째, 외과 계열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의 인기과 정원 확보(외과, 흉부외과가 아닌 특정인기과)를 위해 권역외상센터로 던져졌을 때 안 그래도 꽉 차 있는 원래 병원의 업무 로딩은 누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남은 이들이 모두 감당해야 하는가. 몇 명 남지 않은 동기, 혹은 후배 전공의가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대학 교수님들이 해결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자격도 없는 UA(Unlicensed Assistant)를 써서 해결할 것인가. 
 
둘째, 권역외상센터는 전공의에게 중증 외상환자에 대한 어떤 것을 가르칠 것인가. 전공의 교육을 위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있는가. 이제껏 해오던 주먹구구식으로 전공의 인력을 굴릴 것은 아닌가. 
 
셋째, 매년 전공의 TO는 감축시키려는 의지를 갖고 있어도 전공의 TO를 예외적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각 해당 학회들과 충분한 논의가 된 것인가. 논의됐다면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복지부에게 전공의란 어떤 존재인가. 대학병원에 반드시 채워야 할 의료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값싸고 능력 좋은 도구인가, 아니면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면 TO 하나를 더 던져주는 사은품에 불과한가. 
  
국가정책에 있어 재원 마련은 ‘의지의 문제’다. 중증외상으로 시름을 앓는 국민건강과 올바른 전문의 양성에 필요한 재원, 근본적인 저수가를 위한 재원 마련에 핑계만 일삼는 복지부를 필자는 '의지 없음'으로 간주한다.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시행한답시고 각 시군 252개의 치매안심센터 운영에 2135억 원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 전공의 수련환경개선과 수련병원의 현실적 적자, 외상센터의 턱없이 낮은 지원을 문제 삼을 때는 '재원이 부족하다'는 말을 쉽게 꺼내고 있다.

어쩌면 사은품으로 전락해버린 전공의가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통 잠을 이룰 수 없다. 그저 답답하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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