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5.04.29 06:37최종 업데이트 15.04.3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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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 CT 판독 부탁합니다"

안세홍 사진작가, 기자에게 도움 요청

영상의학회 김승협 회장 기꺼이 판독

얼마 전 기자는 지인의 부탁을 통해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메일을 보낸 분은 안세홍이라는 사진작가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록을 담고 있었다.

 


안세홍 사진작가 <출처 : divetostreet.tistory.com>

 

중국에 생존해 계신 세 분의 위안부 할머니를 촬영하기 위해 현지를 자주 방문한다는 안 작가는 '의학적인 도움'을 청했다.

이메일에는 최근 현지 할머니 CT 영상이 첨부되어 있었고, 안 작가는 판독을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는 왜 중국 의사에게 판독을 의뢰하지 않고 한국에 부탁하는지 이유를 묻자 중국 의사들 스스로 판독에 자신이 없어서 한국 의사들에게 부탁하는 게 어떠냐고 먼저 제안을 했다고 한다.

 

주권을 찾은 지가 70년이 되었으니 생존하신 할머니들 나이도 어느덧 80~90 이상 되셨으리라.

같이 첨부된 파일엔 할머님들 소개가 있었고, 그중 한 분을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박차순 할머니(안 작가의 소개글)

7년 전 처음 할머니를 만났을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도 더 깊이 들어간 시골 마을에서 혼자 살고 계셨다. 지금은 양딸과 사위, 손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추운 초겨울 날씨에 두터운 외투와 털모자가 할머니의 왜소한 몸을 더 왜소하게 보이게 한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를 하지만, 가족을 통하지 않고서는 알아듣기가 어려울 만큼 사투리가 심하다.

 

할머니는 1923년에 태어났지만, 자신의 고향이 어디인지 잊어버렸다. 다만 외할머니 손에 전주에서 소녀 시절을 보냈다. 집안이 어려워 중국으로 오기 전인 17살까지는 식당과 남의 집일을 하며 살았다. 광주에서 술통에 술을 떠서 파는 곳에서 점원을 했는데, 점점 빚이 생겨 주인이 경성 매음굴에 팔았다. 또다시 거기서 중국까지 팔려 오게 되었다. 1942년 후난성으로 왔지만, 어디인지는 모른다. 단층 건물에 방이 여댓개 있었다. 군인들 중에는 일본 군복을 입은 조선인도 있었다.

 

2년 정도 있다가 군인들과 함께 난징으로 갔다. 그러나 두 달 만에 우한 우창으로 왔다. 커가란 호수가 있고, 장제스 동상도 있었다. 방이 모자라 한 방에 두 명의 여성이 가운데를 천으로 가린 채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다. 일본인 관리자가 모든 물품을 배급하고, 외출도 같이해야만 할 정도로 생활이 엄격했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 조계에 여성을 한군데 모아 두었다. 간혹 도망치는 여성이 잡히면 맞아 죽는 여성도 있었다. 할머니도 어떻게 될지 몰라 목숨을 걸고 탈출에 성공하였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도 부모님도 안 계시고, 위안부 생활을 부끄럽게 생각해 돌아가지 않았다.

 

조선족들과 떨어져 사는 할머니들의 경우 오랜 세월을 우리말을 쓰지 않아 50대 전후로 해서 우리말을 잊어버린 경우가 절반이나 된다. 할머니에게 고향을 물어보지만, 한국의 지명만 대답할 뿐이다. 같이 간 우에다 상이 아이폰을 통해 눈물 젖은 두만강, 아리랑을 들려주니 조금씩 따라 한다. 여러 노래를 들려주니 할머니는 우리말을 잊었어도 노래는 기억하고 있었다.


 

'기구하다'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일회성이 아닌 꾸준하게 도움을 줄 방법을 구상하던 중 안 작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차순 할머니가 갑자기 컨디션이 악화해 현지 병원에서 내시경을 했는데 위(Stomach)에서 종양이 보였단다.

 

부탁했던 CT를 급하게 판독해 주는 게 도움이 될까 싶어, 일면식이 있던 한국원격영상의학원 허감 원장과 대한영상의학회 김승협(사진) 회장께 상황을 설명한 후 부탁했고 두 분은 흔쾌히 도와주셨다.

 

첨부된 파일엔 뇌(Brain) CT, 복부(Abdomen) CT, 척추(Spine) CT가 각각 달랑 한 장의 사진(JPEG) 파일로 되어 있어 정상적인 판독이 가능한 퀄리티가 아니었지만 일단 이메일로 보냈다.

 


안세홍 작가가 이메일을 통해 건네준 박차순 할머니의 CT 사진들

 

당장 결과가 올 것을 기대하고 부탁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김 회장께서는 한 시간 후에 바로 전화로 결과를 알려주셨다.

해당 전문 분야 영상의학과 교수들과 같이 사진을 보면서 판독을 하셨다며 급하게 알려주신 거다.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들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감사드린다.

 

판독 결과를 다시 메일로 안 작가에게 전달했고, 안 작가는 판독을 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메일을 보내왔다. 

 

 

작은 에피소드는 생각 하나를 남기고…

 

의사에 대한 대중들의 부정적인 인식은 갈 데까지 가서, 사실 어디서부터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의사들이 '사회성을 높일 기회를 잃고', '본인의 20대 전체를 바치면서까지' 할 줄 아는 유일한 것이 진료고, 그렇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환자를 눈앞에서 가만히 놔두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무턱대고 의사가 선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들의 '기대치'보다 '환자 진료에 대한 의사의 본능'이 제법 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꽤 많은 의사들은 기회가 된다면 좋은 뜻을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

(표현이 좀 까칠해도) 이유 없이 도움을 거절할 의사는 거의 없고, 어떤 집단에서나 그렇듯 과한 오지랖이 긍정의 에너지를 뿜게 하는 의사도 적지 않다.

 

이제는 여러 의사 단체에서 더 적극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일선의 의사들이 '실력 발휘'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몸에 밴 유일하게 잘하는 것' 하나를 통해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 일만큼 의미 있는 것도 없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통해 의사들이 대중들에게 점수 좀 땄으면 좋겠다.

의사가 어떤 말을 내뱉더라도 '밥그릇'이라는 단어가 먼저 튀어나오는 상황은 의사에게도 책임이 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의사 스스로 노력할 수밖엔 없다.

 

마지막으로 안 작가가 서울대 영상의학과 교수들께 전한 감사 메일을 공개한다.

 


의사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 사진을 찍고 이미 70년이 넘은 일이지만,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그분들의 한 맺힌 고통을 '겹겹프로젝트`'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안세홍입니다. (중략)

 

지난 3월 중순에 중국 샤오간(내륙)에 계신 할머니를 방문하면서 한 달 넘게 치료도 없이 침대에만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며, 현지 가족들이 방치하는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급히 할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켜 검사를 하였지만, 정확한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의료기록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와 여성가족부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선생님들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기뻤습니다. 그러나 월요일 밤에 중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것입니다. 중국병원에서는 위에서 종양이 발견되었다며, 2개월 정도밖에 못사신다며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식사도 어제(화요일)서야 겨우 죽을 드셨다고 합니다. (중략)

 

할머니에게 무엇을 갖고 싶냐고 물었을 때 할머니는 '엄마'라고 대답하십니다. 1940년대 한국을 떠난 이후로 가족도 없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평생 아무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타국에서 살아가시는 박차순 할머니도 한국에서 이렇게 자신을 기억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기뻐하실 것입니다.

 

저는 지난해 아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동티모르 등 5개 나라에서 현지의 일본군'위안부'피해자 60여 분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분들도 고령이고, 힘든 상황에서 살아가시고 있습니다. 대부분 피해자들이 약품과 같은 의료지원을 호소하셨습니다. 8,9월 서울과 도쿄에서의 사진전을 통해 피해자들의 현실을 알리고, 공론화시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생각입니다.

 

선생님의 도움과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안세홍

 

 

*한국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에게 매달 150만원을 지원해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 개인 사정상 이 돈이 할머니한테 전부 전달되지는 못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중국에 거주 중인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료를 약속했다. 하지만 할머니들이 한국으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아 아쉽게도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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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환 기자 (dhkim@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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