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6.02.01 06:37최종 업데이트 16.02.0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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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1년, 딴짓하기

전혀 다른 영역에서 일을 시작한다는 건...




여전히 첫 문장의 시작은 어렵다.

 
뉴스 창간 1주년.
 
데스크에서 1년간 기자로 좌충우돌한 내용을 써보라고 권유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는데, 첫 문장이 떠오르질 않아 고민이다.
 
글을 쓴다는 건 어렵고, 그것이 숙제가 되면 즐겁지도 않다.
 
 
 
원래 기자는 제약의사를 원했는데, 구직에 실패했다.
 
실패 당시엔 환경을 탓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준비 부족이었다.
 
문득 일자리 정보를 얻기 위해 들락날락하던 메디게이트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한 번 뽑아보지 않을래요?"
 
기자는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원했고, 메디게이트는 의사와 함께 뉴스를 만들고 싶었다.
 
연봉 협상이 채용자와 구직자 간 간절함을 증명하는 싸움이라면, 더욱 간절한 건 기자였다.
 
여느 회사나 의사 고용 땐 비용이 고민이란 걸 기자는 잘 알고 있었다.
 
 
작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의사의 공통된 미션은 회사 PR을 위해 자기를 도구화하는 것이다.
 
규모가 클 리 없는 헬스케어 회사에서 의사의 존재는 엄청난 PR 요소다.
 
회사는 나를 '의학전문기자'라고 붙여줬다.
 
전문지 최초의 의학전문기자... 라고 했다가 최초는 이미 계셔서 '취재도 하는 전문지 의학 전문기자'로 바꿨다.
 
기사를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의학전문기자 말이다.
 
나는 '의학전문'이란 수식어는 빼고 '기자'만 적혀 있는 명함을 요구했다.
 
 

<사진 출처 : www.thedailybeast.com>


글 쓰는 데 감각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보통은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창간 한 달도 되지 않아, 내가 처음 썼던 기사를 우연히 읽고 이불킥을 날렸다.
 
그리고 이불킥을 날리는 횟수는 더 늘어났다.
 
발행됐던 내 기사를 데스크 몰래 삭제할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이런 기사가 내 이름을 달고 인터넷에 떠다니는 게 너무나 창피했다.
 
글 쓰는 데 받는 스트레스는 늘었고 그 스트레스 정도를 가늠할 순 없었는데, 단골집 미용실 주인이 알려줬다.
 
미용실 주인은 기자에게 거울로 뒤통수를 보여 주며 원형 탈모 진단을 내렸다.
 
질환을 진단받는 게 이런 기분이었구나!!
 
매체의 규모가 크든 작든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엄청난 특권이다.
 
그런 특권을 나는 어떻게 해버린 거냐??
 
 
전공의 때부터였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었다.
 
따뜻한 볕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뉴스 창간 후 어느 날, 기사를 작성하지 못한 채 기자는 집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아침 6시.
 
등골이 싸늘해지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어째 익숙한 느낌이다 싶더니, 주치의 때 오더 하나 안 내고 잠들어 아침 회진 시간에 눈을 떴던, 그때의 데자뷰였다.
 
전화엔 처음 들어본 데스크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렸고, 기자는 씻지도 않고 지하철을 탔다.
 
3호선 끝자락 백석역에서 전철을 타고 회사가 있는 청담행 7호선을 갈아타는 고속터미널역까지의 1시간.
 
이 60분이 기자에겐 생사의 갈림길이다.
 
기자는 지하철에 올라 노트북을 열고, 주제와 관련해 떠오르는 모든 문장을 집어넣었다.
 
좋은 기사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완성된 기사 하나가 어떻게든 필요했다.
 
급하게 기사를 써 게재했는데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의사협회에선 관련기사를 포스터로 만들어 병·의원에 전파하고 싶다고 했다.


한의사들은 영상의학을 만만하게 보나?

 
어리둥절했다.
 
기분은 좋았는데, 뭔가 찝찝했다.
 
기사 하나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온갖 생각을 정리하고, 문장 구성에 조사 하나까지 신경 쓸 정도로 잔뜩 힘을 줬던 기사들은 독자에게 외면당했는데…
 
한 시간 만에 급하게 쑥딱 쓴 글에 이런 과한 반응이라니...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글 쓰는 건 정말 내 의지대로만 되는 게 아니다.
 
나는 여전히 첫 문장을 못 떼고 있다.

#창간 #딴짓 #기자 #메디게이트뉴스

김두환 기자 (dhkim@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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