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3.09 05:57최종 업데이트 26.03.0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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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추락한 NHS 신뢰 회복의 관건…일차 의료 강화 영국 의료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서 밝혀져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최근 ‘Health Foundation’은 영국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와 사회적 돌봄 체계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Fixing the Front Doors? Public perceptions of the NHS and general practice’ 제목의 보고서는 NHS의 ‘정문(front door) 역할’로 기능하는 일차 의료에 대한 국민 인식과 접근 경험을 중심으로 NHS 전반에 대한 신뢰 저하 및 서비스 접근성 악화 문제를 분석한 연구다.

영국은 강력한 등록 기반 주치의 일차 의료체계를 운영하며, 전문의 진료 및 병원 서비스 이용은 대부분 주치의(GP) 의뢰를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주치의 접근성은 NHS 전반의 효율성과 국민 신뢰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영국 4개 왕국 전체(UK)의 NHS 지출은 지난 24~25 회계연도로 볼 때, 한화로 약 40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되며, 그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왕국인 인구 5800만 명의 NHS England 지출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350조 원 규모로 파악된다.

우리보다 월등히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는 영국에서 최근에 이뤄진 조사 결과에 따르면, NHS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 비율은 역사적으로 볼 때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분석돼 보고됐다. NHS 서비스의 질이 과거보다 악화했다는 평가가 높아졌고, 특히 진료 대기 시간 증가에 대한 불만 확대와 향후 의료서비스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약화했음을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 영국의 조세 바탕 의료 전달(이용) 체계는 코로나 감염병 사태 이후에 누적된 대기 환자, 인력 부족, 재정 압박 등 구조적인 문제가 크게 부각되면서 NHS와 의료제도에 대한 영국 국민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차진료 중심 국가 영국, 헬스 파운데이션 국민 인식 조사 주치의 접근성 개선 꼽아

 
이번 조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결과는 주치의 예약의 어려움을 들 수 있다. “주치의 예약이 쉽지 않다”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고, 전화 연결 지연과 대면 진료 접근 제한에 대한 불만, 그리고 원하는 시간과 진료 방식(대면/전화/온라인)을 선택하기 어려운 점을 들면서 영국 국민은 병원의 서비스보다 ‘주치의 접근성 개선’을 더 우선적인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영국인에게 일차 의료가 의료체계의 출발점이자 조기 개입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차 의료가 중심이 아닌, ‘환자의 직접적인 선택에 의한 결정적 치료’가 최우선 고려 사항이다. 신속한 의료가 장점인 우리나라에서 영국에서 일상이 된 초진 예약의 어려움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주치의 위주의 의료제도에서 어려운 일차진료 접근성의 문제로 영국인은 웬만큼 아파도 주치의를 찾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고서는 기술하고 있다. 주치의 예약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사실과 대기 시간이 길 것으로 인지하고 판단해, 사소한 문제로 주치의 진료를 이용하는 것이 부담된다는 생각이 확산한 탓이다. 영란(England)에서 주치의 수가 약 3만 8000명을 상회하는데, 이는 결코 작은 규모는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주치의 예약이 힘든 상황이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악성 민원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주치의 예약의 어려움은 환자 스스로 자가 치료에 의존하거나, 질환이 악화된 후 응급실 이용을 증가시키거나, 조기 예방과 관리 실패로 이어지는 등 악성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고방식으로는 영국식 주치의 문지기 의료제도의 문제점이 어디에서 오는지 자못 궁금하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점은 영국 국민 다수가 여전히 주치의를 가장 신뢰하는 의료 전문가 집단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제때 접근할 수 없다”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는 구조다. 이는 단순한 의료서비스 질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가 인지하는 접근성(access)과 체감 가능성(perceived availability)이 신뢰 형성에 핵심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영국 국민은 이런 문제를 의사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간주하지 않고, 의료의 제도적 문제로 인식하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보고서는 영국에서 주치의 접근성을 문제로 보는 것은 주치의 수의 증원 속도가 의료 수요에 대한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즉 영국 정부가 의대 정원을 대폭 확대했으나, 이와는 별도로 해외로의 인력 유출과 조기 은퇴 등 공급과 수요가 여전히 일치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 차이를 유발하는 것이다.

물론 인구 고령화와 복합 질환을 지닌 환자의 증가, 의료진의 소진도 주치의 부족 현상과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팬데믹 기간에 확대된 비대면 방식의 전화 및 온라인 진료는 접근성을 다소 높인 측면도 있으나, 일부 국민은 오히려 대면 진료 감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보였다. 이는 ‘디지털 전환’이 항상 접근성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의사 수와 재정 규모 우월적 조건 지닌 영국 의사 수 증원보다 시스템 개선에 역점
 

NHS 전체에 대한 신뢰 회복의 관건으로 정책 우선순위는 주치의 예약 시스템 개선, 대면 및 비대면 진료 선택권 확대, 취약계층의 접근성 보장 등 여전히 ‘일차 의료 강화’를 추구한다. 그리고 일차진료의 형태가 주치의 단독 의존 모델에서 벗어나 다양한 보건의료 인력을 활용한 ‘팀 기반 진료’로 전환해 만성질환 관리의 다학제적 접근, 지역사회 기반 통합 돌봄 강화를 도모해 주치의 업무 부담을 완화하고 접근성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다.
 
영국 사례는 NHS 개혁 논의의 출발점이 ‘병원’이 아니라, 일차 의료(General Practice)라는 ‘정문(front door)’임을 누누이 강조한다. 일차진료 중심인 나라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주치의 접근성의 악화는 단순한 불편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NHS 전체에 대한 신뢰 저하와 의료체계 비효율의 원인이 된다. 영국에서 우리보다 많은 의사 수와 높은 의료비 지출의 우월적 조건에서도 초진 예약이 잘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문제의 복합성을 시사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복잡한 의료문제’를 단순히 밀어붙이기식의 의사 수 증원과 선택적 주치의제도로 해결하려는 것이 과연, 정부가 원하는 대로 정책적 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까? 강한 의구심부터 앞선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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