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6.25 09:47최종 업데이트 23.06.2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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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혈관중재학회 "소송이 일상 된 심장내과…젊은 의사들 기피"

과실 아닌 불가항력적 상황임에도 '묻지마' 소송…적절한 치료한 의사에겐 책임 면제해줘야

대한심혈관중재학회 배장환 보험이사, 최동훈 이사장, 박덕우 학술이사.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소송이 들어온다. 교수들이 소송을 당하는 모습을 보는 젊은 의사들은 심혈관중재 분야를 더욱 기피할 수밖에 없다.”
 
대한심혈관중재학회 교수들은 2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송 부담이 심혈관중재 의사들이 사라지고 있는 주요 이유 중 하나라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심혈관중재 전문의 줄며 응급시술 불가 지역 증가…'소송' 부담이 주요 원인
 
학회에 따르면 심혈관중재 시술을 하려는 전문의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이에 심근경색증 환자에 대한 응급시술이 불가능한 지역은 늘고 있다. 이미 응급시술 병원이 없어진 강원 영동 지역에선 지난 3월부터 환자들을 영서 지역으로 이송 중이다. 전남(광주 제외)과 충북 지역도 7년 후면 심근경색 환자에 대한 응급시술이 불가능해진다. 한밤 중에 환자가 생기면 촌각을 다투는 상황임에도 권역 외로 이송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형 병원들이 몰려있는 서울도 일부 지역은 ‘빨간불’이 켜졌다. 실제 서울 노원구나 상계구 지역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응급 심근경색증 시술을 할 병원이 문을 닫아 환자가 종로구나 성북구, 심지어는 서울을 벗어나 의정부로까지 이송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심근경색증 응급시술 공백은 신규 중재 전문의 인력 유입 부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학회 교수들은 주 80시간 이상 근무로 인한 번아웃, 당직비조차 지급되지 않는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등과 함께 잦은 소송이 젊은 의사들이 이 분야를 기피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불가항력적 일인데"...소송 당한 교수도 지켜보는 전공의도 '트라우마'
 
심혈관 분야의 경우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하더라도 환자가 사망하거나 합병증을 얻게 되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환자나 보호자들은 묻지마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학회 배장환 보험이사(충북대병원 심장내과)는 “내과계에서 가장 많이 소송을 당하는 게 심장내과”라며 “심장내과 교수들 중에 소송 1~2개씩 안 걸렸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심근경색 환자의 경우 적절한 치료를 한다고 해도 일정 비율은 병원 내 사망을 피할 수 없다. 100명 중 3명 정도는 뇌졸중도 발생한다”며 “그럼에도 의료분쟁조정중재원으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고, 환자나 보호자에게 설명 의무를 다했고 주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의료기관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배 보험이사는 또 “예전과는 소송 패턴도 달라져 형사와 민사를 동시에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래서 형사 쪽에서 무죄가 나와도 민사에서 사건이 이어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소송에 따른 스트레스는 당사자인 교수들뿐 아니라 젊은 의사들에게도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고 있다.
 
학회 박덕우 학술이사(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는 “‘브로커가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환자나 보호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게 보편적인 일이 됐다”며 “요즘 소송은 선택이 아니라 루틴”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 젊은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를 안 하려는 이유 중 하나가 예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에 대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기 때문”이라며 “심장내과도 교수와 선배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며 후학들은 더욱 지원을 하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 인식 변화 위해 정부·언론 역할 중요...환자·보호자도 억지는 안 돼
 
학회는 이와 관련해 국민들의 의사와 의료행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할 수 있도록 정부, 언론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배 보험이사는 “의사가 설명을 충분히 했고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의사에겐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환자나 보호자도 억울할 수 있지만 억지에 가까운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이런 문제로 의사를 한 명 잃게 되면, 연쇄적으로 해당 분야를 지망했던 후보들 3~4명이 없어진다”며 “재판부도 복지부도 원칙대로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회 최동훈 이사장(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은 “이 문제의 저변에는 자기 자식들은 의사가 되길 바라면서도 의사가 돈과 권력을 가진 잘난 사람들이라고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깔려있는 것 같다”며 “여기엔 의사를 나쁜 집단으로 그리는 언론의 영향도 있다”고 했다.
 
이어 “다른 나라 의사들에게 물어보면 이런 분위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 한다”며 “아직 의사에 대한 존경심이 있고, 의료행위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는 나라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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